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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Jul 25. 2023

개냥이 테리

공원고양이들 / 개냥이 테리 3-1

 지난해 9월, 테리는 한 달 된 아기로 공원에 나타났다.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아마도 옆의 중학교 쪽에서 온 것 같다. 거기에는 중학생들이 밥을 주는 급식 터가 있었고, 중성화되지 않은 고양이들이 몇 마리 있어 보였다.

 테리가 처음 왔을 때,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애기라서 귀엽기도 했지만 짙은 회색 고등어태비로 눈과 귀가 컸다. 꼬리가 풍성하고 끝부분이 말려있어 다람쥐꼬리 같았다. 엄마도 없이 혼자 나타나 어떻게 잘 적응할까 싶었는데 역시 한 달 때 공원에 와서 이제 한 살이 된 밸리가 아빠처럼 테리를 돌봤다. 겨우 내내 겨울 집에서 같이 자고, 같이 다녔다. 


 공원에 온 지, 4개월이 지나면서부터 테리는 누구에게든지 머리를 비볐다.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었는데. 나는 공원 바로 옆 오피스텔에 사는 사람들을 의심했다. 공원에는 밤마다 산책 오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그들 중 몇 명이 테리에게 간식을 주고 쓰다듬은 모양이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간식을 주었겠지만, 테리가 유독 사람을 따르게 된 것이다. 

 착해서였을까? 순해서였을까?

 공원에 손을 타는 고양이들이 늘고 있었다. 공원 급식이 안정적으로 공급될수록, 중성화가 잘 진행될수록, 그래서 고양이들의 모습이 더 깨끗하고 귀여울수록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고양이와 접촉하려 했다. 달이 갈수록, 해가 갈수록 고양이들이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개냥이들 테리, 카레, 예치, 그중에서도 가장 손을 타는 고양이는 테리였다. 

 점심시간, 공원에 갈 때마다 사람들이 테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지나갔다. 사람들을 말릴 수도 없고 말을 듣지도 않았다. 나는 항상 불안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숨을 쉬는 것뿐이었다. 

 두부 사건이나 폐 양어장 사건 등 유명한 고양이 살해사건들, 그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 학대 사건들은 사람과 친근한 동물들을 겨냥한 것들이다. 사람과 친근하지 않다면 일단 잡기가 힘들었으므로 타깃이 되기 어렵다. 범죄자들은 연쇄살인범처럼 쉽게 잡을 수 있는 대상을 골랐다. 무서운 일이었지만, 그 대상은 유아나 여성처럼 애기 고양이거나 개냥이다. 

 예쁘고 귀여운 테리지만 입양할 사람이 없을 건 분명했다. 그동안 몇 번의 실패 끝에 나는 현실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첫 번째 입양 실패(공원 근처 캣맘 파양 사건)로 우리 집에 온 다온이(강치), 그리고 구청에 살던 개냥이 루나까지 우리 집의 여섯 번째 고양이가 된 이상 이제 나도 E님처럼 입양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테리는 어쩌면 루나보다 더 개냥이였다. 루나는 그래도 자기에게 호의를 보이는 사람만 좋아했지만, 테리는 공원에 오는 누구나 좋아했다. 강아지처럼 아무에게나 가서 비비고 뒹굴었다. 집고양이라면 사랑받을 일이지만 길고양이라면 너무도 위험한 일이었다.


〔 테리, 이번에 중성화하면서 입양공고 내보는 게 어떨까요? 안될지도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봐야 할 것 같아서요. 미친놈들이 언제 나타날지 몰라서〕

 테리의 나이가 6개월이 되어 중성화를 시켜야 할 날이 왔다. 나는 동아리 임원진 단톡에서 또다시 이렇게 말했다. 테리를 불안하게 지켜보는 것보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용기를 내야 한다고. 

〔 고양이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걱정하지 말아요〕

 **과의 과장님인 동아리 회장님이 답했다. 회장님은 집에 두 마리의 고양이를 지극정성으로 키운다. 회장님은 먼저 개냥이인지 확인해 보고 사진도 다시 찍자고 했다. 개냥이가 아니면 파양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머어머! 세상에 강아지 보다도 더 하네요!”

 테리는 최상급 개냥이였다. 개냥이 테스트를 가뿐히 통과했다. 회장님을 처음 봤는데도 부르자마자 달려와서 그냥 안겼다.  회장님은 이쁜데, 또 이렇게 개냥이라니 입양은 무조건 될 거라고 빨리 공고하자고 했다. 

 그날 포획 틀도 필요 없이 손으로 잡아 중성화병원에 보냈다. 중성화하는 동안, 내가 안고 있는 모습으로 사진도 예쁘게 넣어서 입양공고를 했다. 우리는 또 한 번의 기적이 테리의 묘생역전으로 이어지기를 마음 가득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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