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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Jul 25. 2024

아연 소년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 문학동네

아연소년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문학동네 


 나는 평생을 군인으로 살았어요……다른 삶에 대해선 오로지 이야기로만 들어서 알았죠…… 

진짜 군인들에겐 그들만의 심리가 있어요. 정당한 전쟁이냐 정당하지 못한 전쟁이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지시를 받아 싸우러 가는 곳이면 거기가 바로 정당한 전쟁이고 필요한 전쟁이니까요. 그래서 명령에 따라 우리가 참전한 이 전쟁은 정당한 전쟁인 거예요. 우리는 그렇게 여겼어요. 그래서 내가 병사들 가운데 직접 나서서 우리의 남쪽 국경을 지켜야한다고 강조하고 병사들을 사상적으로 무장시켰죠. 정치수업이 일주일에 두 번 이었어요. 


……사람을 죽이는 꿈을 꿔요. 어떤 사람이 땅에 무릎을 꿇고……엎드려 있어요. 고개도 들지 못한 채료. 얼굴은 가려져서 안보이는데, 보니까 팔도 다리도 없이 얼굴뿐이에요…… 나는 침착하게 그 사람을 총으로 쏘고 그 사람이 피 흘리는 모습을 지켜봐요. 잠이 깨면 이 꿈이 떠오르고 나는 비명을 지르죠……


 얼마 전에 친구가 세상을 떴어요. 에티오피아에서 복무한 친구였죠. 그곳의 더운 기후를 그 친구 신장이 견디질 못했어요. 이제 거기서 그 친구가 쌓아온 경험들까지 모두 사라지게 된 거죠.  또 어떤 친구는 자기가 베트남에 가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더군요. 그리고 1956년에 앙골라, 이집트, 헝가리로 파병된 사람들, 1968년에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복무한 사람들도 만났어요…… 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이제 다들 다차에서 흰 무나 키우며 살더라구요. 낚시나 하면서요. 나도 이제 연금을 받으며 살아요. 장애연금으로. 카불 병원에서 폐 한쪽을 제거했는데……이제 나머지 폐도 말썽이네요…… 나는 정말 리듬이 필요해요! 할 일이 필요하다구요! 흐멜니츠키 근교에 병원이 하나 있어요. 그곳에 가족이 돌보기를 거부하거나 본인이 집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한 부상자들이 입원해 있죠. 그 부상자들 중 한명이 가끔 나한테 편지를 보내요 “팔도 다리도 없이 누워있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나는 사람일까? 동물일까? 어쩔 땐 야옹하거나 멍멍거리고 싶은 마음마저 들어요. 그래서 이를 악물죠……”그 병사에게 한번 다녀오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 일을 찾는 중이라서요.


……섬광…… 분수처럼 쏟아지는 빛줄기……그리고 의식을 잃었어요……

정신을 차리니 밤이……캄캄한 암흑……한쪽 눈을 뜨고 더듬더듬 벽을 따라 기어요. 여기가 어디지? 병원에서 …… 확인해봐요. ‘두팔은 제대로 붙어있나?’ 휴, 다 있군. 이제 몸 아래쪽을……두 손으로 더듬어요……아, 내 다리는 어디 있지? 내 다리!


좀더 일찍 철이 들었더라면…… 하지만 누굴 탓하겠습니까? 눈이 먼 사람한테 눈이 멀었다고 죄를 물을 수 없잖아요? 우리는 피를 흘린 후에야 제대로 뜨였지요……

 저는 1980년에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났습니다(잘랄라바드, 바그람). 명령을 수행하는 게 군인의 의무니까요.

 그때, 1983년에 카불에서 처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 전투비행대 전체를 공중에 띄워서라도 이 산악 국가를 지구에서 쓸어버려야해. 그렇게 많은 우리 병사들을 땅에 묻고도 성과가 없잖아!” 내 친구 입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다른 사람들처럼 어머니가 계시고 아내가 있고 아이들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친구의 말을 통해, 우리가 머릿속으로 이미 그 땅의 어머니들과 아이들과 남편들에게서 자기네 땅에서 살 권리를 빼앗았다는 게 드러난 셈이었지요. 그들의 “사상”은 우리와 달랐으니까요.

 ‘아프간 전몰 용사들’의 어머니가 ‘볼륨’폭탄이 뭔지나 알겠습니까? 카불에 있는 우리 군 지휘소엔 모스크바와 바로 통하는 정부 직통 연락망이 있었습니다. 그 연락망을 통해 볼륨폭탄을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기폭장치가 작동하는 순간 첫 번째 장약이 가스주머니를 떠뜨렸습니다. 가스가 뿜어져 나오며 틈이란 틈은 전부 가스로 가득 찼지요. 가스주머니는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계속 폭발했습니다. 그 일대에서 살아남은 생명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람의 장기들이 터져 나오고 눈알이 튀어나왔습니다. 1980년에 우리 공군은 또 처음으로 수백만 개의 자잘한 바늘들이 박힌 로켓탄을 사용했습니다. 이른바 ‘바늘로켓탄’이지요. 이 로켓탄의 사정권 안에 들면 무슨 수를 써도 피할 수가 없어요. 사람이 촘촘한 체로 변해버립니다. 

 우리네 어머니들한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 한 사람이라도 아프가니스탄 어머니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아니면 “아프간의 어머니들은 당신들보다 못나고 열등한 어머니들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한가지 몹시 염려되는 게 있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에만 매달린 채 자기성찰도, 상대방 입장에 서보려는 노력도 없이 더듬더듬 어둠속을 헤맬까!’

 과연 우리는 의식이 완전히 깨어있는 사람들일까요? 만약 우리가 아직도 눈을 뜨게 하는 이성을 무시해버리는 걸 배우고 있다면 당신과 나, 우리는 과연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평소처럼 행군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몇 분간 말이 안 나오는 거예요……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면서……‘멈춰’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입이 안 떨어졌어요. 계속 걸었죠.…… 쾅! 그리고 어느 순간……한동안……의식을 잃었어요.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폭탄 구덩이 속에 누워 있더군요. 기었어요. 통증 같은 건 전혀 없었어요……다만 기어가는 게 너무 힘에 부쳤죠. 다들 나를 앞질러갔어요…… 400미터 정도를 기어가는데, 모두들 나보다 저만치 앞에 가더라고요……400미터를 기어갔어요……잠시 후 누군가 “앉아도 되겠어. 이제 안전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나도 앉으려고 했죠. 다른 사람들처럼…… 그런데 세상에, 보니까 다리가 없는 거예요, 두다리 모두 다……나는 자동소총을 끌어다가 나한테 총구를 들이댔어요. 순간, 죽어버리지 싶었거든요! 병사들이 달려들어 소총을 빼앗았어요. 누군가 “소령님이 다리를 잃었어……소령님이 안됐어……”하는데, ‘안됐다’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엄청난 통증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어요…… 얼마나 지독하게 아프던지 비명을 지르며 울기 시작했죠……


…… 거기서 뭘 깨달았냐고요? 선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이요. 세상의 악은 줄어들지 않아요. 사람은 무서워요. 하지만 자연은 아름답죠……그리고 먼지. 늘 입안에 흙먼지가 가득했어요. 말도 못할 정도로……

 우리 부대가 마을을 수색하게 돼서…… 병사 한명과 짝이 되어 함께 수색에 나섰어요. 내 짝이 된 병사가 어느 오두막 집 문을 발로 밀었는데, 미는 것과 동시에 바로 앞에서 기관총이 그 병사를 향해 불을 뿜었어요. 모두 아홉발이었죠…… 그런 상황에서는 증오심이 이성을 마비시켜요…… 우리는 숨이 붙어 있는 건 모조리 총으로 갈겨버렸어요. 가축들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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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군인들과 그 어머니들의 이야기- 아연소년들-입니다. 인간만이 이토록 잔인해지고 참혹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슬프네요. 정말 왜 그러는 걸까요. 우리는 왜 좀 더 겸손한, 다정한 존재가 되지 못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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