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속으로

- 날아가는 새는 폭풍우를 피하지 않는다 제 1편-

by 설하


“민희도 책 샀니? 이번 주는 「거꾸로 읽는 세계사」 읽어오는 거, 알지?”

“네. 지금 샀어요.”

홍 선배를 학교 앞 서점에서 우연히 만났다. 나는 빳빳한 표지의 새 책을 들어 보였다.

“방학인데도 학교에 매일 오는구나?”

“네. 어차피 매일 출근하니까 집에 가는 길에 들리는 거죠.”

홍 선배는 미소 짓는다. 내 어깨를 툭툭 치더니 선배는 사라졌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편집부장인 홍 선배의 권유로 과 독서모임에 들어갔다. 홍 선배는 내 사정을 알아서 주말에만 나오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주말마다 엠티와 독서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해 5월에 3박 4일의 독서모임 학습 엠티를 갔다. 나는 사무실에 하루의 휴가를 내서 주말이 포함된 3일간의 엠티를 갈 수 있었다. 엠티를 간 곳은 동기, 혜림의 이모 댁이었는데 버스가 하루에 두 번밖에 다니지 않는 산골이었다. 혜림의 이모님은 감사하게도 7명의 삼시 세 끼를 모두 시골 반찬으로 손수 해주셨다.

혜림은 오리엔테이션 때 정장 노란색 투피스를 입고 와서 단연 눈에 띄었다. 허리까지 닿는 숱이 많은 머리는 끝에만 파마를 해서 걸을 때마다 찰랑거렸다. 누가 보아도 부잣집 막내딸 같아 보였다. 게다가 혜림은 해맑고 솔직했다. 동기들은 혜림이 홍 선배를 좋아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어쩌면 홍 선배도 알 것 같았지만 전혀 반응이 없다. 누군가 혜림이랑 잘 지내보라고 농담처럼 던졌는데 홍 선배는 지나가듯이 말했다.

“나는 자선사업가가 아냐.”

모두들 웃어버렸다. 혜림만이 실망한 듯 고개를 돌렸다. 솔직히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예쁘고 착한 혜림이 좋아한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는 프린트 물과 책을 읽고 토론했다. 그리고 사이사이에 게임을 해서 진 사람이 설거지 당번을 하기로 했다. 나는 곧 게임의 여왕(*반어적 의미)으로 불리며 삼 박 사 일 동안 설거지를 도맡았다.

같은 과 동기들은 하나같이 활달하고 말도 잘했다. 이들은 정치외교학과를 적성대로 택한 사람들이었다. 외교관이나 정치가가 정말로 장래희망이었다. 당당하고 활달한 친구들 사이에서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독서 토론을 할 때도 그렇고 평상시에도 동기들은 자기 의견을 논리적으로 잘 말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내 차례만 오면 두근두근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그렇지만 활달한 성격이 아니어서 힘든 것과 별개로, 학교를 다닐수록, 나는 학교가 좋아졌다. 원하던 학과가 아니었음에도, 오히려 무언가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혀 모르던 세상, 그동안 배웠던 것들이 어떤 것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심지어 보이지 않는 진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모임을 통해, 사회과학 책과 토론을 통해 알게 되어갔다. 나는 공휴일, 방학도 없이 학교에 갔다.


나의 아침은 일곱 시, 자명종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나는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을지로 3가 역에 내려서 인테리어 겸 부동산 사무실로 출근한다. 사무실에는 사장이 한 명 있고 사장 친구들이 세네 명 왔다 갔다 했다.

지난해, 재수 아닌 재수를 할 때 일했던 유통 상가 사무실은 일도 많지 않고 사람들도 좋았다. 하지만 7시에 끝나는 데다 학교와는 반대 방향이라 너무 멀어서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다. 그 전자 부품 사무실 사장이 친구가 운영하는 사무실로 나를 소개해 주었다.

을지로 3가 역에서 내려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후미진 회색빛 고가도로가 나오고 그 옆 바래가는 건물의 3층에 사무실이 있다. 사무실은 간판도 없이 유리창에 「** 인테리어」라는 글자만 적혀있다. 하지만 거의 사장 친구라는 부동산 중개업자 몇 명의 놀이터였다. 강 사장, 조 사장, 김 사장 등 모두 사장으로 불렸지만 업체를 운영하거나 사무실이 있거나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이곳에 매일 출근해서 화투를 몇 시간씩 쳤다. 점심은 주로 중국 음식을 먹거나 1층 칼국수 집을 애용했다. 근처 사무실이 많아서 점심시간에는 칼국수집이 배달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빴다.

1층이니까 3층인 우리 사무실에서 내려가기만 하면 되었지만 화투를 하게 되면 사람들은 절대로 움직이려들지 않았다. 결국 내가 칼국수를 3층까지 날라 왔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국물을 흘리지 않으려 조심해서 걸었다. 그러나 힘들어도 좋은 것은 화투의 여유 돈으로 내 점심값까지 내준 것이다. 게다가 나에겐 타고난 체력이 있다. 고3 때 반에서 우연하게 벌어진 팔씨름에서 나는 1등을 했었다.

나는 청소하고 전화받고 손님이 오면 커피를 탔다. 가끔은 서류를 어디에 갖다 주라는 심부름도 많았다. 나는 일을 하다가도 오후 5시만 되면 시계를 쳐다보았다. 사장은 화투에 심각하다. 그는 다리에 이어 혀도 마비되었는지 고개만 끄덕였다.

“내일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나는 드디어 학교에 간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가방을 메고 나온다. 지하철을 타고 30분만 가면 학교다. 집에서라면 2시간 가까이 걸리지만 사무실에서는 가까웠다.

지하철을 내려서 후문을 지나 커다란 호수를 옆에 두고 한참을 걸어간다. 나는 호수를 계속 바라보지만 걸음은 늦추지 않는다. 교내 박물관을 지나 계속 걸어가면 잔디밭이 나오고 그곳 중앙에 있는 황소 상 앞의 5층짜리 커다란 건물이 사회과학관이다.

1층에는 중앙에 매점이 있고 오른쪽 끝에 단과대(정치대) 학생회 실이 있다. 그리고 계단 옆 귀퉁이에 정치대 사물놀이패 동아리 실이 있다. 동아리 실 문 양옆으로 왼쪽에는 「백두에서 한라까지」, 오른쪽에는 「통일되는 그날까지」라고 세로로 크게 쓰여 있다.

나는 동아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특히 탈춤이나 사물놀이패를 하고 싶었다.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탈춤을 잠깐 배운 뒤로 국악에 흥미가 생겼다. 아빠 때문에 유교나 동양 사상은 싫었지만 문화는 다른 이야기였다. 그러나 나의 시간은 아르바이트와 강의로 이미 가득 차 있다.

“갱개갱 개개갱 개개개개 개개갱”

5시 반쯤 학교에 도착할 때마다 동아리 실에서는 장구 소리, 꽹과리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강의실로 향하며 조심스레 귀 기울였다.

수업이 다 끝나면 10시다.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민희는 선재랑 같이 가면 되겠다. 선재도 그 방향이잖아?”

보험회사에 다니는 은화 언니가 나와 같이 나오다가 뒤를 돌아본다. 약간 통통한 체격에 얌전해 보이는 남학생이 손을 흔든다.

1시간 50분 후 나는 집에 도착한다. 이미 12시가 다되어 부모님은 잠든 지 오래다. 언니와 동생들도 잠들어있다. 나는 조용히 들어가 씻고, 알람을 설정한 후 언니와 동생들 틈에 끼어서 잠이 든다. 작은방에 우리 네 자매의 크고 작은 이불 산이 가득 찬다.


아침에 출근하려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선재가 보였다. 그는 어차피 방학이라도 할 일이 없어 학교 도서관에 간다고 했다. 우리는 1학기 내내 수업 후 같이 집에 갔다. 하지만 그가 아침에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학교는 나랑 반대방향이잖아. 40분이나 더 걸리는 데. 왜?”

“돌아가도 돼. 같이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선재는 나와 함께 지하철을 탔다. 무언가 이건 아니었다. 선을 그어야 했다. 그동안 선재는 갑자기 카페 가서 음료수도 사주고 다른 학교 축제에도 가자고 하며 나에게 호감을 표시했다. 나는 바쁘기도 했지만 선재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가장 큰 문제는 나와 선재의 가치관이 너무 다른 것이었다. 나는 사회과학에 관심이 많고 학생회 행사나 시위에도 적극적인 반면 선재는 나에게 급진적이라며 이 모든 것에 거리를 두었다. 우리는 갈 길이 달라 보였다.

「선재야, 나 지하철 탔으니까 기다리지 마. 이제부터 나 혼자 갈게」

다음날, 나는 노트의 귀퉁이를 찢어 잘 보이도록 지하철 벤치에 꽂아놓는다. 선재가 이것을 보아야 한다. 못 보고 한참 동안 나를 기다리면 안 되니까. 하지만 이것을 본다면 그는 더욱 실망할 것이다. 나는 지하철을 탄다. 종이는 지하철의 바람에 흔들렸지만 잘 붙어있다.

그날 선재는 내가 지하철 벤치에 꽂아놓았던 쪽지를 본 것 같다. 더 이상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조금 미안하기도 했지만 바빠서 잊어버렸다. 나는 방학 내내 사회과학 공부와 독서모임으로 정신이 없다.


서점을 나온 후 나는 단과대 열람실로 간다. 방학이라 한산하다. 나는 이번 주 모임 책,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펼친다. 처음 책을 펼칠 때 기분이 좋다. 무언가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느낌이다.

국가권력에 의해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들이 죽어나가고(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미명 하에), 무기의 판매경쟁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고(명분은 만들어진다), 무기가 없다는 이유(자본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몇 천 년이나 살아가던 땅의 원주민은 쫓겨난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 이런 일들이 몇 천 년이나 인간의 역사에서 수없이 이어져왔다. 이럴 수는 없다.

나는 막차시간이 다가오는 것도 잊은 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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