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슬프지 않은 세상을 위해 -1편
“민혁이가 아직 돈을 못 버니까 천기저귀를 쓰자. 어차피 너는 집에 늦게 오잖니. 내가 다 빨아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네. 어머니.”
결혼한 지 9개월 만에 별이가 태어났다. 시부모님은 민혁이 4대 독자라 남자를 원했지만 딸이었다.
나는 내가 낳은 아기가 천사인 줄 알았다. 어떻게 이토록 예쁠 수가 있을까. 나는 아기를 볼 때면 혀를 꼭 물어야 했다. 아기를 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시부모님도 딸이었지만 첫 손자였기 때문에 바닥에 내려놓질 않았다. 아기를 안아보려면 줄을 서야 할 정도였다. 더군다나 아이엠에프라 일도 없어서 두 분이 애기 보는 것이 주요 일과였다.
나는 시댁에서 두 달의 출산휴가를 보내고 다시 출근했다. 하지만 퇴근시간이 무섭게 집으로 달려왔다. 4시간의 왕복 출퇴근 시간, 9시부터 6시까지 자동차 취득세를 쉴 새 없이 끊고 돌아와서도 나는 별이만 보면 힘이 났다. 저녁 8시에 집에 돌아와서 아무리 빨리 하더라도, 저녁을 먹고 설거지하고 씻고 나면 10시였다.
그때서야 나에게 별이를 볼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방에 들어가서 별이와 놀고 12시가 넘어서야 잠을 잤다. 어느 날은 한참 별이의 손과 발을 주무르고 흔들며 놀고 있는데 웃고 있던 별이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별이의 몸이 축 늘어졌다. 잠이 든 것이다. 시계를 보니 열두 시 30분이 넘어있었다.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별이는 육 개월 만에 엄마라고 말했다. 별이는 나만 집에 퇴근하면 그동안 봐주던 어머니와 아버님에게 더 이상 가지 않았다. 나에게만 안겨 있으려 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민혁은 보이지도 않았다. 내 눈에는 별이만이 보였다. 결혼기념일에도 나는 민혁에게 스테이크를 사 와서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먹자고 했다.
“우리 3년 만인 거 알아?”
집 근처에 있는 냉면집에서 저녁을 먹은 날, 민혁이 말했다.
나는 빨리 집에 돌아갈 생각에 빨리 냉면을 입에 가득 넣고 있었다.
“뭐가?”
민혁은 우리 단 둘이 외식하는 게 결혼한 지 삼 년 만이라고 말했다. 그랬었나. 사실 민혁과 함께 있고 싶어서 나는 결혼을 원했었다.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시댁에 살았고 아기를 낳은 이후로 나는 아기 외에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4살 된 아기가 분리불안증을 앓는 것처럼 별이와 떨어지는 것에 대해 불안해했다. 어떻게 직장생활은 해나갔으나 퇴근 이후에는 결코 별이와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민혁은 병이라고 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했지만 나는 엄마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결혼하던 때는 IMF로 경기가 침체되었다. 시부모님은 작은 가내수공업 신발공장을 하고 있었다. 장사가 되지 않아 공장은 문을 닫았다. 청계천에 납품하는 플라스틱 슬리퍼를 만드는 일이 주였는데 주문이 없었다.
시아버지는 결혼 처음부터 내 급여를 달라고 했다. 나는 같이 살더라도 내 월급은 내가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공무원 생활한 지 5년도 되지 않아 봉급은 많지 않았다. 우리의 생활비도 겨우 감당할 수준이었다. 민혁은 이제 공무원 학원을 다녔다. 아기에 대한 모든 비용과 함께 학원비도 당연히 내가 부담했다.
임신한 지 6개월이 지날 무렵, 아버님은 저녁 식탁에서 나에게 공무원 대출을 받아오라고 했다. 나는 오백만 원을 마이너스로 대출받아 드렸다. 같이 살면서 아버님의 눈총을 피할 방법은 없었다. 몇 달 전에 처음으로 출시된 벽돌 같은 핸드폰도 공무원 이름으로 사면 돈이 덜 든다고 사 오라고 해서 사드렸었다. 명의가 나로 되어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요금도 내가 내게 되었다. 우리 중 아무도 핸드폰이 없을 때였다.
별이가 돌이 지날 무렵부터 신발 공장에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부모님은 별이를 지하 공장에 데리고 다녔다. 유독성 약품과 위험한 기계들이 있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두어 달 후 저녁. 아버님은 공장이 바빠져서 이제 더 이상 별이를 봐줄 수가 없다고 했다. 어린이집에 맡기라고 했다. 청천벽력이었다. 18개월밖에 되지 않아 아직도 분유를 먹고 있고 기저귀를 차고 있었는데 어디에다 맡긴단 말인가. 밤새 울면서 고민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다음날 출근해서 근처 어린이집을 알아보았다. 구립어린이집이 동 주민 센터에서 5분 거리에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그곳에 맡겨야 했다.
이제 시댁에 살면서 아침에 별이를 데리고 출근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근무하는 동 주민 센터는 시댁에서 버스로 30분쯤 걸렸다. 별이를 업고 버스를 탔다. 어린이집에 데려다 줄 때면 별이는 가기 싫다고 울었다. 나도 눈물이 흘렀지만 어린이집 근처를 한 바퀴 더 돌고 겨우 아이를 토닥여서 어린이집에 내려놓았다.
출근해서 어떻게 일을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가기는 했다. 나는 퇴근시간이면 부리나케 어린이집으로 뛰어갔다. 별이를 업고 시댁에 오면 또 할 일이 많았다. 공장이 바빠 어머님이 집안일을 거의 못해서 내가 해야 했다.
결혼 초에는 공장이 바쁘지 않아서 어머님이 빨래며 집안일을 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대학생 시누이까지 여섯 명 대가족이었다. 할 일이 너무 많았다. 7시에 집에 도착해서 새벽 한 시까지 청소며 빨래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나마 민혁이 도서관에서 10시에 돌아와 별이를 봐주었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도 힘든 것이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더욱 힘들었다. 시댁에 살면서 애기를 데리고 출퇴근한다는 것도 힘들었고 집안일도 끝도 없었다. 하지만 시부모님은 일을 하게 되면서 더욱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원래 아버님은 알코올 중독이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집에서 술을 마셨다.
“너는 내가 힘든 게 안 보이냐. 돈을 마련해 와야 하지 않겠니?”
시아버지는 갑자기 밥 먹고 있던 내게 다짜고짜 말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버님은 힘들다고 내게 직접 말한 적이 없었고 말을 했다 하더라도 말단 공무원인 내가 무슨 돈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말을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만약 돈을 부탁한다면 아무리 며느리라도 윽박지르는 건 아니지 않은가.
나는 더 이상 밥을 먹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버님 말을 무시할 수도 없다. 나는 고민 끝에 꾀를 냈다. 다음날 나는 아버님에게 말했다.
“아버님. 엄마에게 돈을 좀 빌렸어요. 엄마가 막내 동생 대학 등록금으로 마련해놓은 돈이 있대요. 3개월 후에 등록해야 해서 그때 주셔야 하긴 하지만 지금은 그것밖에 없어서.”
나는 엄마에게 엄마가 빌려준 것으로 하라는 전화를 했고 적금을 깼다.
아버님은 정확히 삼 개월 후에 우리가 빌려준 삼백만 원에서 30만 원 모자란 이백칠십만 원을 주면서 말했다.
“어떻게 이거 받을래? 아니면 한 달 후에 30만 원 더 해서 받을래?”
“아뇨. 제가 보태서 엄마에게 드릴게요. 고맙습니다.”
나는 최대한 얼굴에 웃음을 지으려 노력했다.
나는 민혁을 달달 볶기 시작했다. 분가하자고,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말했다. 같이 살지 않는다면 아버님이 무슨 말을 해도, 어떤 요구를 해도 그때만 피하면 되지만, 같이 산다면 피할 방법이 없다.
민혁도 동의했으나 돈이 없었다. 민혁은 3년째 공무원 공부를 하고 있다. 제법 시험성적이 잘 나왔음에도 계속 떨어졌다. 삼 년 동안 시댁에 살았지만 혼자 벌고 박봉이고 애가 있어서 돈을 모으지 못했다. 시아버지는 전세 마련할 돈을 줄 리가 없다. 돈을 주기는커녕, 나간다고 하면 나가지 말라고 할 게 뻔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나는 은행에서 전세 자금 대출을 받았다. 시댁에는 또 엄마가 빌려주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대출받았다고 하면 나가지 말라고 할 테니까. 일단 사람이 살고 봐야 했다.
동 주민 센터 근처에 작은 빌라 반 지하 단칸방에 우리의 첫 살림이 차려졌다. 애기 데리고 출근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분가한다고 겨우 허락을 받아냈다. 아버님은 내가 혼수로 해간 큰 텔레비전과 양문형 냉장고 대신에 작은 25인치 텔레비전과 사무실용 냉장고를 사주었다. 아버님이라면 그것만 해도 감사한 것이었다. 난 별이와 민혁과 셋이 살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