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ary of Childhood
2025년 3월 24일 월요일 저녁 7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는 시간이 올 줄이야...
올해부터 다이어리에 수기로 일기를 쓰고 있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한 번도 일기를 써 본 적 없는 나인데.
지난 1년간 내게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직 40을 갓 지났지만 나에게는 가장 힘들고 충격적인 시간들이었다. 한데 이 모든 것들이 내가 태어난 그날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1983년 9월 부산에서 태어났다. 아빠는 밀양 출신, 엄마는 창년 출신.
몇 번의 만남으로 결혼이 성사되고 그렇게 둘은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부친은 밀양에서 가난하게 살며 조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람을 받지 못한 채로 성인이 된 사람이다.
솔직히 아빠라는 단어는 나에게 아주 어색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엄마와 대화 중에도 줄독 XXX 씨라고 이름을 부른다. 엄마도 익숙해졌는지 그러한 나의 행동에 별도의 제지를 하지는 않는다.
부친은 따뜻하게 자본적도, 배불리 먹어본 적도, 깔끔하게 입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지금도 40년 전의 해진 옷을 아무렇지 않게 입고 다닌다. 아까워서, 미처 그 해진 부분을 알아차리지 못한 탓이다.
부친은 자신의 부모에게 살갑게 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찾아가 보지도, 맛있는 음식을 공수하는 것도, 선물을 드리는 것도, 같이 식사를 하는 것 등등 내 기억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보고 배운 게 그것이라 나 또한 부친을 봐도 데면하게 대하고 대화하려 들지는 않는다. 어쩌면 남보다 못한 사이인지도,,,
나는 3살 터울의 남동생 하나가 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사이가 좋지가 않다. 아니다. 그 녀석이 나를 일방적으로 싫어한다고 말하는 게 맞을 듯. 하지만 난 도무지 그 연유를 알 수가 없다. 유년 시절에 나로 인한 나쁜 추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녀석은 독립을 했으나 무슨 일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기별도 거의 없고 엄마는 하나 있는 아들 때문에 여간 속을 앓는 것이 아니다.
우리 부모는 서로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어려서부터 이를 보고 자란 나는 하교 후 집으로 돌아가기가 너무 싫었다. 그리고 우리 남매는 기억이 있는 순간부터 많이 맞았다. 지금 사람들이 보면 학대의 수준으로 말이다. 효자손과 방망이 등으로 허벅지, 손, 엉덩이 등 머리를 빼고는 다 맞아본 것 같다. 어리디 어린 자식들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렇게 몽둥이 질을 해댔는지 지금도 나는 알 노릇이 없다. 부모 둘 사이가 좋지 않으니 남매가 제물이 되지 않았을까 의심해 볼 뿐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동생이 아직 학교를 들어가기도 전이었는데 부모 둘 다 야간 직장을 나갔다. 부친은 공장, 모친은 도로 하나 건너 있는 방앗간에서 떡을 만들었다. 부친은 엄마가 방앗간 직원과 바람이 나서 돌아다닌다고 내게 얘기한 적이 있었다. 사실인지 여부를 알 수 없으나 자식에게 이런 얘기를 굳이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아마도 의처증 증상이 아니었을까. 엄마가 열심히 야간 방앗간을 다닌 덕분에 가세가 늘어갈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외식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그 돈이 아까웠다고 본다. 엄마는 부친 눈치를 보느라 그랬을 터이고. 하지만 엄마의 음식 솜씨는 가히 상급의 수준이라 우리 가족을 항상 맛있는 식사를 하였다. 그러나 여행 한 번, 외식 한번, 가족사진 한 장 없는 우리 가정은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다소 어려운 부분은 있었다.
중학교 시절, 부모는 재산을 증식시켜 보고자 모뎀으로 천천히 구동되는 386 컴퓨터로 주식을 시작하였다. 엄마는 주식에 대한 이해가 모자랐다. 부친이 회사에서 전화로 지시를 하면 그때마다 매매 주문을 넣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느 하루는 일이 잘못되었는지 둘 사이 큰 싸움이 일어났다. 밥상을 뒤엎고 물건들이 날아다니거 엄마에게 손찌검을 하는 장면까지 목격하였다. 이는 내 인생에 가장 큰 충격이었던 듯하다.
이 시기 엄마도 부친의 핍박과 구박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는지 한 번도 먹지 않던 소주를 연일 마셔댔다. 눈은 풀려 있었으며 나는 언제라도 엄마가 죽어버리거나 집을 나가버릴까 봐 학교 공부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당시 아주 많은 방황을 하였다. 불량 친구들과 맨날 소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나를 한 없이 시궁창 속으로 밀어 넣고 싶었다. 집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난생 처음 여자 학생과 몸싸움을 하다 교복이 모두 찢어져 버리고 말았다. 피 묻은 교복을 세탁기에 던져 넣었는데 엄마는 그걸 보았음에도 내게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중3 고등학교를 정하는 시기에 엄마를 위해 꼭 성공한 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남동생도 학교 생활을 하는 둥 마는 둥이었기 때문에 나마저 엄마의 희망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다행히 인문계 고등학교에 합격하였고 그 당시 엄마가 조금은 기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등학교 내내 새벽같이 열심히 공부했지만 대학교는 내 실력으론 무리였다보다.
내 가치관, 내 성격, 내 자아... 그 어디에도 부모가 영향을 주지 않은 부분이 없다. 긍정적인 영향이 아닌 부정적인 영향이다.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꼬인 것일까? 부친이 엄마와 결혼을 하지 않고 나를 낳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엄마는 이제 나이 들고 허리고 아파서 절뚝거리며 걷는다. 집 밖에 몰랐던 사람이나 취미하나 없고 자식 눈치, 남편 눈치 보느라 뭐 하나 맘대로 하는 것이 없어 안타깝다.
부모 집에는 연일 물이 새고 있다. 장판 바닥은 곰팡이와 습기로 인해서 새까맣게 변해 있고 천정은 내려앉기 일보 직전이다. 그 아래에서 음식을 하고 있는 것을 보자니 가관이다. 각종 먼지와 곰팡이들이 두 사람이 폐를 썩게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지 아는지. 보일러실 문은 어디 갔는지 시꺼멓게 그을린 창고가 가스레인지 옆에 그대로 개방되어 있다. 참 불쌍한 사람들이다. 인생을 이렇게 밖에 살지 못한다는 것이...
두 사람이 싸우는 꼴이 보기 싫어서 주방에 있는 식칼을 들고 부친에게 달려들려고 한 적이 있다. 물론 죽일 마음은 없었으나 동생의 강력한 힘에 제지를 당했다. 이후에 듣자 하니 동생도 부친과 무력으로 싸웠다고 한다. 최근에는 엄마가 부친의 가혹한 말과 행위에 무력으로 대항하였다고 한다. 참 불쌍한 가족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부친이 내일 당장 죽어도 슬프거나 아쉽지 않다. 오히려 우리 남은 가족들이 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갈망한다. 부디 엄마가 부친보다 하루라도 더 이 생에 있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혹여 엄마가 부친보다 이 생을 빨리 마감한다면 나는 부친을 찾아볼 생각이 전혀 없다. 그의 유산에 일체 관심이 없다. 그가 알아서 기부를 하던 다 써 버리든 나와는 무관하다.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 된다면 요양원 시설로 보낼 생각이다. 엄마면 몰라도 부친에게 내 정력을 쏟을 마음을 전혀 없다. 우리의 인연이 가급적 빠른 시일 내 종료되어 엄마가 남은 여생을 조금이나마 본인의 의도대로 편안히 지내기만을 희망할 뿐이다.
1년 전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어린 시절 부친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불면증, 강박, 불안 등 모두 그로 인한 상처들이다. 학원 한 번 과외 한 번 시켜 준 적도 없고 문제집 살 때로 눈치 보며 돈을 받아갔던 그 시절 부친은 다른 가정의 자식들과 우리 남매를 자주 비교하였다. 의사니 선생이니 약사니.... 알고 보니 그들은 모두 유복하고 화목한 가정의 아이들이었다. 나는 매일 욕과 비방이 넘쳐나는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던가? 그 마음의 상처는 누가 치유해 준단 말인가. 다른 부친들은 매일 자식들을 따뜻이 안아 주고 이쁜 옷들을 입혀 주지 않았던가? 그 당시의 나는 옷을 하나 사러 가도 부모 눈치를 보느라 점원 앞에서 눈물이 났다. 내가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닌 가장 저렴한 것을 선택했던 아이다. 맛있는 거 사달라고 졸라본 적이 없다. 그럼 엄마가 힘들어했고 경제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흔이 넘었는데도 나는 샤워를 하며 종종 부친 얼굴이 떠오르고 그때마다 샤워부스 안에서 각종 욕을 하며 뇌 속에서 지우고 떨쳐 버리려고 발악을 한다. 이처럼 아직까지 부친의 극악한 행위들이 내 인생의 곳곳에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본인은 자식들이 이와 같은 심정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아는지, 아니 아예 자신 인생 외에는 관심이 없다고 봐야 무방할 듯하다. 부친과 조부모와의 관계, 형제관계, 친지관계 등을 보면 인생의 패배자와도 같아 보인다. 어떻게 하면 저토록 무의미한 인생을 살 수 있는지...
하루빨리 이 굴레에서 우리 가족들이 벗어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