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하는 말은 하나같이 똑같다. "힘들면 쉬어라. 쉬고 달려도 늦지 않다." 힘들 때 쉬는 것은 이후에 주저앉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들 한다. 힘듦으로부터 오는 고통은 사람을 미치게 하며, 한 인간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든다고들 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고통을 원하는 이는 누구도 없으며,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 중 하나는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냉혹한 세상은 그들의 말을 묵살한다. 그들의 말이 통하는 곳은 그들의 철학이 만들어내는 이상세계뿐이며 그 어느 곳에서도 그대를 위해 방석을 깔아주지 않는다. 그대가 넘어지더라도 손을 건네주는 자는 어디에도 없으며 그대가 쓰러져 죽어가고 있어도 그대를 도와줄 '착한 사마리아인'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대가 고통으로 인해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줄 귀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대에게 가르침을 줄 스승은 세상 끝까지 찾아가도 보이지 않는다.
그대가 가장 높은 곳에 있더라도 그대를 위해 박수를 쳐줄 사람은 없고, 그대가 지구 가장 깊은 곳에서 신음하고 있으면 모두가 그대를 피해 갈 것이다. 세상은 참으로 냉혹하다.
그대가 도운 자가 악인이라면 당신을 비웃을 것이고, 선인이라면 그대의 은혜를 갚지 못할 것이다. 그대가 주저앉아 울고 있더라면 영악한 자들은 그대의 슬픔을 밟고 올라가며 어리석은 자들은 가만히 멀뚱멀뚱 보고 있을 것이다. 세상은 참으로 냉혹하다.
그대의 고통은 타인들의 기쁨이며, 그대의 슬픔과 힘듦은 타인들의 기회가 된다. 타인의 눈물을 먹고사는 자들은 떵떵거리고 살며 타인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는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 세상은 참으로 냉혹하다.
거의 모두가 이상세계를 원하지만 힘을 가진 자들은 그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점점 커지고, 그들은 아무런 변화를 원치 않는다. 그대의 삶은 편리하고 행복을 충족하고도 남을 것들로 가득 차 있지만, 그래도 그대는 불행하다. 그것이 세상이다.
나는 그대에게 가르침을 주고자 한다. 그 가르침은 이 냉혹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어떠한 마음을 먹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이 가르침이 그대에게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는 모르지만, 그대는 이 가르침을 통해 강인한 자가 될 것이다. 그대에게 다가오는 이 냉혹함은 변치 않겠지만, 나는 그것을 초극하는 자세를 알려주고자 한다. 그대는 강인한 자가 되어 그대 앞에 있는 모든 벽을 뚫고 갈 정도의 힘과, 세상의 추위를 견뎌낼 정도로 두꺼운 피부를 얻게 될 것이다.
강인한 자는 고통을 피할 능력이 있는 자가 아니라, 고통과 싸워 이길 의지가 있는 자다. 승패 여부는 상관없다. 그것과 싸운 그 사실이 그들이 승리하였다는 증거이다. 그들은 고통을 피할 능력이 있더라도 그 고통을 피하지 않으며, 언제나 고통에 대한 증오를 외친다. 그러나 그들의 증오는 평범한 자들의 고통에 대한 증오와는 다르다. 그들의 고통에 대한 증오는 고통과 싸워 이기고자 하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며 적에 대한 증오심과도 같은 증오심이다.
인생은 마라톤이라고들 한다. 백번 맞는 말이다. 아니, 마라톤보다도 더 처절하고 고통스럽다. 목적지가 어디인지조차 모르며, 출발선조차도 모두가 다르다. 그 끝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수능? 취업? 내 집? 가정? 모두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앞을 향해 달려 나가니 그대와 나 또한 앞으로 달려 나가게 된다. 이 끝없는 경주에서 사람들은 점점 지쳐가고, 그 지침은 고통으로 변한다. 마라토너들이 페이스 조절을 생명으로 여기듯, 이 경주에서는 '고통을 어떻게 다루는가'가 이 경주의 승패를 결정짓는다.
세상이 냉혹하듯 이 경주 또한 마찬가지로 냉혹하다.
그대가 아무리 힘들고,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대에게 눈길 줄 사람 하나 없다. 그대가 너무 힘들어 주저앉아도 같이 앉아 쉬어줄 자는 없다. 모두가 경쟁자 한 명이 줄어든 것을 기뻐할 뿐이다. 그대의 목이 타들어가고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어도 그대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나눠줄 사람은 없다. 그대가 넘어져 그대가 흘리는 피가 강을 이루더라도, 다리가 썩어 문드러져도 그대를 위한 약이나 붕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경주에서 지고 싶은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 경주를 완주할 마음이 있는 자 또한 어디에도 없다. 모순된 말이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그 누구도 찾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목적지가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넘을 자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저 이 경기의 선두에 서기 위해 모두가 발악할 뿐이다. 선두에 서고 싶다는 마음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였으며 이 세상을 바꿔나가고 있다.
누군가는 이 경주의 의미를 잃고 주저앉으며, 누군가는 고통을 못 참고 쓰러진다. 누군가는 선두주자와 자신과의 격차가 너무나도 벌어진 현실에 절망하며, 그에 불구하고 끝까지 달리는 자도 있다. 그렇다면 그대는 이 경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고통을 감내하고도 선두주자에 서는 것이 가치가 있는가?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른다는 것을 외치듯 "그럴 것이다."라고 외칠 의지와 자신이 있는가?
그대는 그럴 자신이 있어야 하고 그럴 긍지와 의지, 그리고 열정이 있어야 한다. 그대는 맨 앞에서 달리겠다는 열정으로 불타올라야 한다. 그대의 그 열기가 모두를 뛰어넘어 태양의 빛과 열기를 가릴 정도로 뜨겁고 빛나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그대는 주저앉을 것이다. 그대의 피와 뼈는 나뒹구며 다른 자들의 거름이 될 것이고 철저히 이용당할 것이다. 그렇기에 그대는 열정을 가져야 한다. 그대가 이 경주를 계속 달릴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은 체력도, 재능도, 재력도 아니다. 오직 열정뿐이다. 그 열정이 그대를 달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대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왜 달려야 하는가? 달리지 않으면 그냥 변하지 않는 것 아닌가? 명예도 없지만 고통도 없다. 고통이 얻는 것보다도 심하다면 그저 가만히 있는 게 낫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대는 극복하기 위해 달리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달리는 것이다."
그대가 가만히 있는 동안 다른 자들은 벌써 그대의 눈앞에서 사라져 있다. 다른 자들이 달려 나갈 동안 그대는 무엇을 했는가? 결국 그들과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그대가 자초한 것이 아닌가? 그대가 그대보다 앞선 자들을 동경하면서 그대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그들로부터 무엇을 배운 것인가? 그들을 앞서기 위해서, 아니, 그들과의 격차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뼈를 깎는 고통을 견뎌내며 달려야 하거늘, 어째서 그대는 멀뚱멀뚱 지켜보고 있을 뿐인가?
결국 그대는 달려야 한다. 앞서기 위해서, 아니, 가만히 있기 위해서라도. 그대의 다리가 아파오면 그대의 다리를 채찍질하며 달려라. 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눈물이 나와 앞이 보이지 않아도 마음속에서 길을 그려내 그 길을 따라 달려라. 그대의 다리가 썩어 문드러지면 팔을 써서라도 달려라. 그대가 고통스럽고 힘들다고 멈춰 줄 사람은 누구도 없다. 그리하여 계속 달리고 있는 자들을 보며 그대는 달려야 한다. 그대의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그대보다 앞서있는 자들을 따라잡기 위해 결국 그대는 달려야 한다.
세상은 이만큼 잔혹하고 냉혹하다. 항상 그대의 목을 죄어오고 있고, 그대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웃는다. 심지어 그대가 달릴 때 발을 걸어 넘어뜨리려는 자들조차 있다.
참으로 부조리함으로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대 또한 다른 모두들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바꿀 의무가 있다. 그대는 이 부조리함을 참아서는 안 되며 오히려 이에 분노해야 한다. 그러나 그래도 달리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된다. 모두의 앞에 서 그들을 막는 것이 이 잔인한 경주를 멈출 유일한 방법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