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꿀 수 있는 하나의 희망이 되어라
많은 자들이 이 세상에 왔다가 떠났다. 많은 자들이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했고 그 정신이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자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차지한 한 페이지 한 페이지는 모두의 가슴속에 각인되어 잊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잊히지 않은 자들보다도 훨씬 더 많은 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한 명 한 명 잊혀져가고 있다.
천 년, 백 년, 심지어 십 년 전에 있던 자들 가운데 누군가는 항상 모두에게 잊혀져 가고 있다. 우리가 다시 불러올 수 없는 누군가가 있으며 우리 중에도 대부분은 결국 잊혀질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슬픈 사실인가! 그대와 나 또한 수백 년, 수천 년이 지나 만 년이 되면 결국에는 까맣게 잊혀질 운명이 아닌가? 만일 죽음보다도 무서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잊혀지는 것이리라.
잊혀진다는 슬픔은 죽음의 고통조차도 아득히 뛰어넘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다. 그대가 죽어 썩어가고 있을 때, 그대의 묘비에 글을 새길 자조차 없다는 것, 그대의 이름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 그대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것, 그것이 잊혀지는 것 아니겠는가?
많은 자들은 죽음을 가장 무서운 것으로 여기나, 그것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대가 인생의 황혼에 접어들었을 때 그대를 추억하고 기억하는 자가 단 한 명도 없는 것이다. 이는 매우 고독한 경험이면서도 고독과는 전혀 다른 고통을 가져다준다. 외로움이라 하여도 되나 그것으로는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잊혀지는 것이다.
그대들이 이토록 성공에 집착하는 이유, 그대들이 아직도 냉혹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유, 그대들이 여전히 살과 뼈를 깎아내며 달리고 있는 이유가 잊혀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아닌가? 그대가 기뻐할 때도 슬퍼할 때도 무의식의 깊은 곳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가 지금 이 순간이 잊혀질까 하는 두려움이 아닌가? 만일 아니라고 대답하는 자가 있다면, 그자는 분명 가슴이 빈 자이리라.
결국 그대에게는 그대를 위한 의무가 하나 있다. 바로 잊혀지지 않는 것. 그대들이 잊히기 않기 위한 방법은 단 하나, 바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 개미 한 마리가 강산 전체를 뒤바꿀 수 있겠는가! 어찌 물고기 한 마리가 바다를 가를 수 있겠는가! 그것이야말로 당랑거철의 신세가 아니겠는가? 그대가 세상을 뒤엎기 위해서는 강산만 한 거인이 되어야 하고, 바다를 가를 수 있을 정도의 초인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대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쥐어줄 수는 없지만, 그대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을 가르쳐주겠다.
이 세상은 누군가에 의해 항상 변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어떤 순간에도 변해왔으나, 세상은 여전히 부조리함으로 가득 차 있고, 앞으로 몇 번을 바뀌더라도 그 부조리함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평등을 외치고 그들 가운데 극소수가 바로 세상을 바꾸는 자이다. 그들은 행동하는 자들이며 의지가 있는 자, 달리는 자들이다. 그들은 강한 의지를 가진 약자들이었으며 피나는 노력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자들이 된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뼈를 깎아가며 달린 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함이었지만, 그들이 그러한 직접적인 원인은 힘을 가지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함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능력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바로 힘으로부터 온다. 그대는 힘을 가져야 한다. 오직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며 그대의 외침을 온 세상에 퍼뜨리는 방법이다.
그대는 귀뚜라미의 울음소리에 반응하는가? 그러나 만일 사자나 곰이 그대 옆에서 포효한다면 그대는 공포심과 두려움에 휩싸이리라. 그대는 개울이 말라붙든 넘쳐나든 신경 쓰지 않지 않은가? 그러나 만일 해일이 덮쳐온다면 그대는 공포에 떨고 있으리라.
그대가 힘이 없다면 아무도 그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인생이란 처절한 경주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일 후발주자가 그대에게 이 경주를 멈춰야 한다고 외치면 그대 또한 그의 말을 무시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앞설 대로 앞선 자가 외치는 소리에는 모두가 귀를 기울일 것이 아닌가?
결국 그대는 힘을 가져야 한다. 그대가 구름 사이를 날아다니며 살고 싶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든, 어쨌든 간에 그대는 힘을 가져야 한다.
그대는 가장 앞서서 달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희망은 그가 이 경주를 멈출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 가장 앞선 자는 이 냉혹한 세상의 부조리함을 막을 능력이 충분히 있으며 그럴 의무가 있다. 평등을 외치던 그 뜨거운 가슴을 마음속 깊이 어딘가에 가지고 있는 그가 이 부조리함을 변화시킬 희망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이 여전히 부조리한 이유는 무엇인가? 평등을 외치던 그들이 어째서 이 세상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그들이 평등을 외치던 본질이 무엇인지에 달려있다. 그들은 절대 이타적이지 않다. 그들이 평등을 외친 이유는 그들 자신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구름 위에 살고 있게 된 지금, 그들이 더 이상 바랄 게 어디 있겠는가? 이 세상이 바뀌는 과정은 결국 성형수술과도 같다. 오직 외모만 바뀔 뿐, 그 사고방식과 뇌는 변하지 않는다.
본질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으며 불평등은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에게 결과의 평등은 별로 와닿지 않으나, 그들이 원하는 것은 기회의 평등이다. 힘을 가진 자들은 그들의 요구를 성취해 줄 만한 힘을 가지고 있으나, 구름 위에서 내려오지 않으려는 그들의 의지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어디에도 없다.
오늘날에 예수와 같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줄 성인은 없으며, 자신이 메시아라고 외치는 자들은 자신의 살을 불리기 위해 움직일 뿐이다. 이타적인 자는 거의 없다. 그러한 극소수는 있더라도 힘을 가지지 못한다.
그대는 지금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는가? 세상을 뒤집어 보겠다는 의지로 불타오르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대는 행동하여야 한다. 그대가 백만 명 가운데 한 명이 되어 힘을 가져야 한다. 그대의 뜨거운 가슴이 그대의 원동력이 될 것이며 그대가 가장 앞선 자가 될 때까지 끝까지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그러나 힘을 가지면 그대의 그 뜨거운 가슴은 결국 차갑게 식어버릴 것이다. 그대의 그 차가운 가슴은 지금 힘을 가진 자들보다도 더욱 차가워 온 세상을 얼려버릴 것이다. 그대의 식어버린 가슴의 한기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대는 구름 위에서 내려오려 하지 않을 것이며, 밑에 있는 자들은 모두 그대를 비난할 것이다. 그대는 그대를 욕하는 자들을 비웃으며 뜨겁던 그때의 시절을 완전히 망각할 것이다.
그래, 그것이 그대가 원하던 세상인가? 그대를 위해 온 세상이 허리를 굽히며 머리를 숙이는 것이 정녕 그대가 원했던 세상인가?
그대는 힘을 가져야 하는 만큼 힘을 가진 후에도 뜨거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대가 그대의 그 열정을 잊는 순간 그대는 결국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한 번 세상을 바꿔보리라고 외쳤던 그날을 잊어서는 안 되며 그대의 한낮에 가졌던 열정을 일몰이 다가오면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의 부조리함에 의해 그대까지 검게 물들어서는 안 된다. 이 냉혹한 세상에 순응하더라도 뼛속에는 이 세상을 바꾸겠다는 글자가 깊이 새겨져 있어야 한다.
그대의 승리는 그대를 더욱 검게 물들일 것이다. 그대의 성공 하나하나는 그대의 타올랐던 시절을 잊도록 만들 것이다. 그대가 높이 올라갈수록, 그대가 누군가를 앞지를 때마다 그대는 점점 그대가 외쳤던 다짐을 잊어갈 것이다. 슬프게도 그것이 세상이다.
그러나 그대는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 그대의 가슴은 영원히 불타오르고 있어야 한다. 이 차가운 세상의 추위에 굴복하여 차갑게 식어서는 안 된다. 그대의 불타는 심장이 밤의 세상을 낮보다도 밝게 비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그대의 원동력이 될 것이며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