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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terking Jan 05. 2025

나의 학창 시절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을 때 나의 학창 시절은 다사다난했다. 내가 나온 중학교는 질이 안 좋기로 소문난 학교였다. 그곳에서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농구"덕분이었다. 


공부, 인간관계로 받은 스트레스를 전부 운동을 통해 건강하게 해소하였고, 농구부라는 소속감이 나를 안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다 함께 땀 흘려 즐겁게 운동하는 행위 자체가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질이 안 좋은 학교였기에 유난히 튀었던 나는 결국 학교 폭력을 당했다. 이유 없는 폭행에 저항하려고 유리창을 몇 개씩 깨면서 나를 괴롭혔던 애들에게 경고를 준 적이 있었다. 문제는 유리창을 깬 게 교과서나 몽둥이가 아닌 내 주먹이라는 점이었다.


아직도 내 오른쪽 손등에는 큰 흉터가 두 개 있다. 그날 이 유리창 사건 이후로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은 없었으며, 심각함을 느낀 아버지가 동네 복싱장을 끊어줘서 열심히 다녔다.


그때 같이 복싱장을 다닌 2명의 친구가 있는데 이 둘은 같은 농구부 출신이면서 내가 힘들 때 항상 곁에 있어준 귀한 사람들이다. 복싱장을 다니면서 갑자기 커버린 키와 복싱을 배운다는 소문이 학교에 돌면서 나는 그 누구에도 무시당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유난히 나를 괴롭혔던 남자애 한 명을 내가 괴롭히기 시작했다. 방식은 똑같았다. 선생님께서 나눠주신 종이를 뒤로 넘길 때 바닥에 던지면서 넘긴다든가, 지우개 똥을 모아 수업 도중 머리에 던진다든가.


내가 전부 당했던 것들을 다시 되갚아 줄 때는 통쾌하게 느껴졌다. 그 남자애는 항상 웃는 상에 개구쟁이 느낌이 강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웃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덩치 큰 애들이 장난을 빙자하여 그 남자애의 어깨를 주먹으로 치는 순간들이 많았다.


아마 이때부터 나는 때리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서 놀리고 괴롭히는 것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개월이 흐른 어느 날 그 남자애는 전학을 갔다. 그 순간에는 그렇게 통쾌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저 나는 내가 받은 상처를 되갚아 주었다고 생각하며 나의 행동을 합리화시켰던 것 같다.


불행히도, 그 남자애의 괴롭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시 유행했던 "카카* 스토*"를 통해 그 남자애는 전학을 간 뒤에도 지속적으로 욕을 먹었다. 결국 그 남자애의 어머니가 난리를 치면서 우리 전부를 카페로 모이게 하셨고,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내셨다.


나와 괴롭힘을 주도했던 덩치 큰 애들 몇 명을 대표하는 어머니 한 분과 괴롭힘 당한 그 남자애의 어머니는 카페에서 큰 소리로 싸우셨다. 우리 쪽은 괴롭힘 당한 그 남자애가 과거에 많은 이들을 괴롭혔기에 본인도 당하는 거다라고 하셨고, 그쪽 어머니는 그래서 전학도 갔는데 지속적으로 연락해서 욕하는 건 아니다. 법적 대응하겠다의 입장이었다.


어떻게 결론이 지어졌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렇게 흐지부지 끝이 났다. 나는 아직도 그 친구의 이름이 기억난다. 그 남자애는 나를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나는 정말 질 낮은 중학교를 다니면서 "농구", "폭력과 무시당하지 않는 법", "2배로 돌려주는 법"을 배웠다. 사실 이 외에도 여자 8명에게 둘려쌓여서 심하게 욕을 먹고 학원 선생님께 sos를 요청했던 적도 있다. 당시 받았던 상처는 아직도 그 여자애 이름 한 명, 한 명 기억날 정도로 선명하다. 


나는 아이들의 수준이 높은 고등학교에 가고 싶었다. 반 학생들의 절반이 담배를 피는 이곳 말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착한 친구들이 많은 곳으로 가고 싶어 강남 8 학군 중에 한 곳을 1 지망으로 썼다. 운 좋게도 1 지망 학교에 합격한 나는 매일 버스를 타야 했지만, 항상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다.


고등학교에 갔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한 반에 담배를 피는 학생이 5명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이 전부 착해 보였다. 며칠 지내다 보니 정말 다 착한 애들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왜 학부모들이 좋은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를 보내려고 그렇게 노력하는지 알 거 같다.


난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애, 운동을 좋아하는 애, 조용하지만 착한 애, 성격이 비슷한 애 등등 친구들을 정말 폭넓게 사귀었다. 매일 같이 밥 먹는 무리가 달라질 정도로 폭넓게 친구를 사귀어 매일 즐겁게 학교를 다녔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중1보다 고1을 선택할 정도로 나의 중학교 시절과 고등학교 시절은 상극이었다. 당연히 학교 폭력 같은 건 아예 없었다.


물론, 친구와 별 거 아닌 이유로 싸웠던 적은 있지만 주먹이 서로 왔다 갔다 한 적은 없다. 고등학생 시절은 마냥 화목하게 즐거웠어서 별로 쓸 말이 없네.


만약 내 자식이 중학교를 입학할 시기라면 나는 이런 말을 꼭 전해줄 거 같다.

1) 축구 농구 야구 무엇이 되었든 운동은 꼭 하나 해라. 동아리에 들어가라.

2) 괴롭힘을 당하면 싸워라. 상대가 너보다 더 강해 보여도 싸워라. 대신 선생님이 계실 때 싸워라.

+ 나는 실제로 선생님이 계실 때만 싸웠다. 다른 애들이 봤을 때 "와 선생님 앞에서 싸우네. 패기 대박.."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진심으로 "말려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 싸우기 위함이었다.

3) 감당하기 힘든 일은 무엇이든, 언제든 부모님께 말씀드려라.


나는 중학생 때 돈도 3-4번 정도 뜯겨봤고, 옥상에 끌려가서 나이 많은 새*한테 맞아본 적도 있다. 사실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부모님한테 말씀드리는 게 정답 같다. 나는 옥상에서 맞은 사실만큼은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말씀드리진 않았다.(다행히 반복적으로 일어난 일은 아니고 딱 1번)


정말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내가 스스로 느끼기에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던 건 그저 농구 덕분이었다. 농구를 하면서 많은 친구들을 사귈 있었고, 거기서부터 나오는 소속감이 깊은 안정감을 주었다. 학교 폭력을 당했을 때도 친구들이 대신 나서서 이것저것 알아봐 주었고, 자기 일처럼 도와주었기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이제는 농구를 2시간 정도하고 나면 온몸이 쑤시고 아픈 상태가 되었지만,

농구는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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