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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 Aug 06. 2022

빙수팥 직접 쒀서 홈메이드 빙수 만들어먹기

귀찮지만 굳이 빙수팥을 쒀보는 이유

 


내가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당시 엄마 아빠는 사업으로 바빠 보기가 힘들었고 나는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할머니가 나이가 드셔서 그런건지 원래 그런건지 나는 잘 모르겠으나 할머니 음식은 솔직히 모양도 맛도 형편이 없었다. 당신 주장으로는 예전에는 음식점도 했고 잘 했다고 하던데 글쎄.....  


어느날 학교에서 소풍을 갈거라고 했다. 그 날 학교에서 와서 할머니한테 말하니 할머니가 김밥을 싸줘야겠다고 했다. 즐겁게 친구들과 먹으려고 도시락을 꺼냈는데 친구들이 보기 전에 내가 먼저 열어봐서 다행이었다. 웬 말도 안되는 김치와 짠지무가 잔뜩 들어간 김밥이 도시락 통에 떡하니 있었다. 나는 기겁을 해서 도시락통을 얼른 숨기고 친구들에게 깜박하고 도시락을 안가져왔으니 나눠먹자고 말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 때는 다른 아이들은 엄마가 예쁜 도시락을 챙겨주는데 나는 이상한 도시락을 가져가서 조금 서글펐던 기억이 있다.


할머니의 말도 안되는 요리만 먹다가 초등학교 고학년 쯤 되니 차라리 내가 요리를 해보자 하는 생각에 미쳤던 것 같다. 어차피 키도 크고 겁도 없어서 불을 다루는 것에도 능숙했다.


기본적으로 미식에 대한 욕구가 있었던 나는 라면도 한가지 방법으로 끓이지 않고 인터넷 검색을 해서 해물라면도 끓여보고 콩나물 라면도 끓여보고 그런 식으로 여러가지 요리로 변형해서 만들곤 했다. 김치볶음밥도 김치를 씻어 해보기도 하고 참치도 넣어보고 스팸도 넣어보고... 그런식으로 하다보니 요리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엄마랑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았지만 일주일에 몇 번 정도는 내가 요리를 해서 먹었다. 그 때부터는 인터넷이 보편화 되어서 레시피 보는 것이 아주 쉬웠기에 굳이 요리책을 뒤지지 않아도 되었다. 대학교 때는 자취를 하면서 요리학원에서 요리를 배우기도 했고 웬만한 한식은 거의 만들 줄 아는 실력이 되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어묵반찬 / 내가 좋아하는 갈치 조림


요리는 자주 할수록 실력이 는다. 또한 다양한 조리법을 배워 실제로 써 버릇 해야 진정 내 실력이 된다. 또한 일정 수준에 올라있는 실력이라면 특색있는 한그릇 요리보단 밑반찬이나 김치, 국 등을 자꾸 배워야 한식을 만드는 나만의 노하우가 생기고 내 맛이라는 것이 생긴다. 처음엔 레시피대로 따라하는 것이 좋고 일정 수준이 되면 나만의 방법도 만들어보면 색다른 재미가 된다. 어쨌든 기본적으로 '먹는 것' 을 만드는 것에 흥미가 많아야 요리 실력은 늘게 되어있다. 



아이의 파스타 만들 때는 직접 만든 토마토소스로


나는 가끔 요리를 할 때 터무니 없이 큰 일을 벌이기도 하는데, 가령 사골국을 끓인다거나 하는 하루 종일 걸리는 작업을 괜시리 하기도 하는 날이 있다. 또 사먹어도 되는 잼이나 토마토 소스 같은 것들을 직접  재료를 끓여 만드는 수고를 하기도 한다. 주변에서 왜 그렇게 손 많이 가는 일을 굳이 하느냐 묻곤 하는데 별 이유는 없다. 그냥 내가 만들면 더 맛이 좋기도 하고, 나 자체가 요리에 관심이 많고 끊임없이 요리실력을 키우고 싶어서 그렇다. 


기본 재료를 다루는 법을 알면 재료의 특성에 대해 알게 되어서 나중에 요리할 때 큰 도움이 된다. 가령 얼마 정도 삶고 데쳐야 요리가 맛있어진다 하는 개념 같은 것 말이다.




어제도 또 일을 괜히 하나 벌였다. 우리 아이가 팥빙수를 좋아하길래 그걸 만들어줄까 어쩔까 그런 얘기를 남편과 하다가 빙수팥을 직접 쑤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는 가리는 음식이 거의 없는데 팥은 좀 싫어하는 편이다. 어릴 적에는 팥밥도 먹고 괜찮았는데 어느날 단팥죽을 먹고 그 단맛이 굉장히 역하게 느껴진 이후로 팥이 들어간 모든 음식들을 좀 꺼린다. 하지만 내 아이는 팥떡, 팥 아이스크림도 좋아하고 팥빙수도 좋아하기에... 앞으로 팥에 대한 기피도 좀 없앨겸, 또 내가 만들면 그 시판 빙수팥 특유의 느글거리는 맛? 이 없어서... 나도 조금 먹을 겸 직접 빙수 팥을 끓였다. 



빙수팥을 직접 만든다하면 굉장히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데 실은 굉장히 쉽다. 팥을 불리는게 원칙이지만 굳이 불리지 않고 씻어서 바로 끓여도 상관없다. 팥을 일단 물에 씻으면서 위에 뜨는 못난이(?) 들은 버린다. 한번 팔팔팔 끓여서 첫 물은 버리고 다시 끓인다. 첫 물을 버리는 이유는 팥 특유의 쓴 맛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한다. 첫 물을 먹어본 적은 없다. 굳이 그런 호기심은 없다. 첫 물은 단호히 버린다.




첫물을 버렸으면 두번째 물에 팥의 한... 4배,5배 정도 되는 물을 넣고 중불로 계속 끓이면 된다. 나는 보통 40분~1시간 정도 끓이는데 딱 시간이나 물을 잡고 하진 않고 중간 중간 팥을 한두알 꺼내서 으깨서 적당한 무르기가 되었다 싶으면 그만 끓인다. 그 과정에서 물이 부족하다면 한 컵 더 넣고 끓이면 된다.


이렇게 끓이는 중에 완전 통팥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팥을 으깨지 않고 설탕 등만 넣어서 마무리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팥 씹히는 식감을 그리 좋아하진 않아서 반쯤은 으깨면서 끓이고, 반쯤은 통팥으로 남겨둬서 약간 앙금 느낌도 나게 한다. 이런 달기나 되기를 조절할 수 있는게 직접 팥을 쑤는 묘미라고나 할까!


설탕은 팥의 한 1/3 정도를 넣으면 된다. 설탕 기준 그렇고 나는 올리고당과 설탕을 반씩 쓴다. 올리고당을 넣으면 윤기가 살짝 돌게 된다. 올리고당만 넣고 해보기도 했는데 설탕을 넣은 것보다 맛이 별로였다. 그래서 이후로는 설탕+올리고당을 쓴다. 적당히 숟가락으로 넣어가면서 간? 을 보면 된다. 적은 양의 설탕으로 단맛을 좀 올리고 싶음 소금을 약간 넣어줘도 된다. (아주 약간만.. 한꼬집?)



완성된 팥의 비주얼은 이렇다! 적당히 무르고 적당히 통팥도 있어서 호불호가 별로 없다. 나는 주륵 흐르는 팥보다 되직한 앙금스러운 느낌이 좋다. 하다보면 너무 되질 수도 있는데 그럼 물을 좀 더 넣고 그냥 끓여도 되고 올리고당을 넣어봐도 되고.. 어쨌든 입맛에 맞게 완성되기만 하면 된다!


집에서 만드는 잼,소스,앙금류 다 그런데 아무리 설탕을 많이 넣어도 방부제를 쓰지 않아서 해봐야 일주일 밖에는 안간다. 그러니까 일주일 먹을 만큼만 계산해서 만들면 된다. 나도 한 3회 분 정도 비축해놓고 반 정도는 어디 줄 예정이다.


어제는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남편과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많이 마셨더니 새벽부터 갈증이 나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얼려둔 얼음을 부셔서 빙수를 만들었다. 



준비물은 단촐하다. 얼려둔 우유 얼음 (우유에 연유를 한숟가락 정도 조금 섞어서 얼리면 달달 고소한 맛이 더 좋다) 어제 쒀둔 빙수 팥, 찹쌀떡이나 콩고물 인절미 , 연유 이렇게 네가지만 넣는다. 과일 빙수도 좋아하는데 과일 빙수에 팥이 들어가는 건 또 안좋아한다. 과일은 과일대로, 팥은 팥대로 먹는걸 선호하는지라 이 네가지만 넣는다.


꽝꽝 언 얼음은 밀대로 팍팍 부숴서 곱게 만들어 소복하니 쌓고 그 위에 팥과 콩고물 인절미, 연유를 뿌리면 끝. 여름 내내 시원한 간식이 된다. 아이스크림 대용이라기엔 너무도 고급스러운 디저트. 아이도 좋아하고 남편도 좋아하고, 아이 친구가 오면 한번 내줄 생각이다. 


나는 팥은 깔짝거리면서 조금씩만 먹었고 떡이랑 우유 얼음을 주로 먹었다. 시판 팥보다는 낫지만 내가 만든 팥이어도 아직 그 단맛이 썩 ... 내 입맛은 아니다. 더 나이가 들면 콩,팥 등이 좋아진다는데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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