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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 Sep 30. 2022

요리할 때 새기는 말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

요즘 요리한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오늘 시아버님께서 우리집에 잠시 들러서 아이를 데리고 가셨다. 오늘은 시간이 어찌어찌 나서 우리 집에서 식사를 하시게 되었다. 나한테 부담주기 싫어서 배달음식 먹자고 하시는데 실은 나는 배달음식을 원래 선호하지 않는다. 


또 배달음식을 시키고자 하면 아이랑 같이 먹을 음식을 시켜야 하는데 그럼 배달음식 시킬 수 있는 범위가 많이 좁아지고 어른 입맛에 맞추자면 아이가 제대로 먹지 못한다. 그래서 그냥 집에서 있는 반찬 차려드리겠다니까 좋다고 하셨다. 



근데 막상 아버님께서 식사하신다는데 밑반찬만 차릴 수 없는 일이고 찌개든 국이든 조림이든 하나는 해야할 것 같아서 냉동고를 뒤졌다. 저번에 샀던 통통한 제주 갈치가 눈에 띄었다. 사실 그 날 해먹으려고 했었는데 남편도 없고 아이도 생선 먹고 싶지 않다고 해서 그냥 넣어뒀던 것인데 이렇게 요긴히 조림으로 쓰였다. 


장을 보러 가야 하나 했는데 이렇게 재료가 마침 있어 메인 메뉴가 만들어지니 기분이 좋았다.



냉장고 속에 깻잎조림과 장조림이 있었다. 그것만 내면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것 같아서 뭔가 더 할 게 없나 두리번 거리다가 냉장고의 계란칸에 눈이 갔다. 계란말이! 사실 계란만 있으면 바로 만들 수 있는건데 그럴싸한 느낌이 들어서 대접용으로 제격이었다. 계란 여섯개 훌훌 풀어서 계란 말이를 만들었다.


냉동고 속에는 저번에 한팩 샀던 볶음 멸치가 반 정도 남아있었다. 수시로 먹는 견과류를 데쳐내어 멸치와 함께 볶으니 아이도 두고두고 먹을 수 있고 어른들 입맛에도 잘 맞는 멸치 볶음이 되어 식탁 한 구석을 훌륭히 채워주었다.


사실 더 근사한 재료로 기교를 부린다면 더 고급스럽게 음식을 차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가족끼리 편하게 먹는 자리니 그렇게까지 멋을 부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처음 요리를 했을 때는 근사한 한상 요리를 차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마트에서 갖은 재료를 다 사서 요리를 했고 남은 재료는 버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매일 차리는 밥상이다보니 그렇게 하면 진력이 나겠다 싶었다. 경제사정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 고급 요리를 먹을 수는 없는 사정이니까. 그래서 이제는 냉장고에 갖춰진 재료로써 구색을 맞추는 데에 더 집중한다. 그것이 요리 실력이 빨리 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식탁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식탁에는 갈치조림이 올라갔고 냄비 주위로 계란말이와 장조림 멸치볶음 깻잎, 배추김치가 놓여져 한상이 멋있게 차려졌다. 슥슥 빠르게 차려진 밥상을 식구들이 배부르게 먹는 것 만큼 요리하는 사람으로써 뿌듯한 일은 없다.



요리를 할 때는 도구와 재료를 탓하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오래지 않은 일이다. 처음 요리를 시작했을 때는 왜 그리 도구들과 재료들에 욕심을 부렸던지. 물론 초심자의 마음이 그런 것을 탓할 수는 없지만, 생각해보면 몇가지 구색만 갖춘다면 가정 요리는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가끔 베이킹도 즐겨 하는데 정석으로 배운 것은 아니고 블로그나 유튜브 등을 보면서 따라할 때가 많다. 틀은 케잌틀과 머핀틀 두개밖에 없다. 오븐은 집에 빌트인으로 되어 있는데 이 전에는 작은 미니 오븐을 썼다. 사실 베이킹 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얼마나 도구와 재료에 욕심이 나는지... 실은 나도 아직 그 마음을 완전히 버리진 못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베이킹을 할 때마다 다짐하는 것은 도구에 집착하지 말자는 것이다. 도구를 들이자면 한도 끝도 없고 내가 그 도구를 들인다고 매일 다 쓸 것도 아니고 나에게 필요한 몇가지만 있다면 수십가지의 과자를 구울 수 있다. 


저 날은 머핀 틀을 이용해서 에그타르트를 구웠다. 노른자를 주 재료로 커스타드 크림을 만들고 파이지도 직접 만들었다. 비록 모양은 예쁘지 않았지만 또 정석의 파이 모양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아이와 남편은 정말 맛있게 먹었다. 물론 파는 과자라면 당연히 그러면 안되겠지만 나는 우리 집의 요리사니까 이것만으로도 만점을 받아도 된다.



물론 나라고 왜 요리 도구 재료에 욕심이 없겠는가. 계란말이를 할 때는 계란말이 팬이 너무 사고 싶을 때가 있다. 베이킹 할 때 예쁜 틀 생각이 간절할 때가 있다. 블로그 등에서 예쁘고 화려한 부엌 찬장을 보면 나도 갖은 그릇들을 사서 채워놓고 싶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 부엌은 아직도 작고 내가 한달에 쓸 수 있는 예산도 한정적이다. 언젠가는 나만의 요리 작업실을 꾸밀지도 모르나 아직까지는 생활의 한계가 있다. 한 때는 나도 누구와 같은 부엌을 갖고 싶었으나 이제는 아니다. 정해진 한계 안에서 식탁을 다양하게 꾸미는 재미를 알았다. 또 정해진 한계 안에서 다양한 요리로써 가족들을 맛있게 먹이는 것이 가정요리의 왕도라는 것도 깨달았다.


요새 다이어트를 하는 남편은 저녁에 샐러드와 샌드위치로 식사를 떼우곤 한다. 남편이 '오늘 샐러드 먹고 싶어' 라고 문자를 보내면 나는 냉장고에 있는 과일과 빵, 계란, 치즈 등의 재료만으로 후다닥 상을 차린다. 물론 정해진 재료가 한정적이기에 많은 변화를 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다이어트 하는 남편에게 약간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메뉴를 살짝씩 바꿔보곤 한다. 남편은 항상 맛있게 내 요리를 먹곤 한다.


요리를 좋아하는 나는 언젠가 시골에 집을 사서 마당에 장을 담그고 장아찌를 담그고 때마다 청을 담가 주변에 나눠주고 싶다. 큰 냉장고 3개, 김치냉장고 3개를 놓고 하루종일 부엌을 종종거리면서 요리만 하면서 잡념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면 참 행복해진다.


비록 내가 꿈꾸는 그 부엌에 비해 지금 내 부엌은 작고 초라할지 모른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요리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모든 것은 갖춰졌기에 내가 연구하고 노력하는 만큼 식탁이 풍성하게 채워질 수 있다. 이 한정된 상황에서의 식탁을 꾸미는 지금의 노력이 언젠가 더 좋은 부엌에서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요리하면서 생각했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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