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지방에 사는 내가 정말 몇 년 만에 서울에 갔다. 서울에 볼 일도 없었고, 코로나 때문에 사람 많은 곳은 굳이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도 놀러 가는 목적은 아니고, 미뤄뒀던 검사를 받기 위해 큰 병원에 간 것이었다. 그런데 자꾸 경복궁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와서 해야할 일이 너무도 많았고, 병원도 간신히 시간을 내서 간 것이었기에 돌아오는 기차 시간을 빡빡하게 예매했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예상치 못하게 여러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예매했던 기차표는 취소하고 더 늦은 표를 다시 구입했다. 검사를 받고 나서도 기차를 타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서 그제서야 나는 경복궁으로 향했다. 경복궁을 갈 계획은 아니었지만 신발도 마침 운동화를 신은 상태였고 날씨도 그렇게 춥지 않아서 모든 게 완벽했다.
경복궁에 도착하고, 입장권을 구입해서 근정전으로 들어갔다. 5년 전, 마지막 방문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는 여름이었고, 사람도 많았고 여러 명이 같이 와서 많이 둘러보지 못하고, 사진만 많이 찍고 떠났던 기억이 났다. 반면에 오늘은 혼자여서 고즈넉한 궁궐을 맘껏 누릴 수 있었고, 겨울의 근정전에는 평일 낮이라 그런지 예전보다 사람도 많이 없었고 한적했다. 서울에도 궁궐 안은 이렇게 새소리가 들리고 한적하구나 싶었다. 궁궐 밖으로 산능선이 보이니 정말 여기가 명당이구나 싶었다.
조선 시대 궁궐은 왕이 머무는 곳이었는데도 참 단아하게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과하지 않게, 그렇지만 곳곳이 굉장히 정교하고 품격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이념이 잘 반영된 것 같았다. 향원정이나 경회루는 또 그 당시 연회를 즐길만하게 운치 있고 아름답게 가꿔져 있었다. 우리 조상들이 놀 줄도 알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조용하고 한적한 궁궐을 거닐면서 내가 진짜 원했던 것을 누리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좋은데 안 왔으면 어쩔 뻔 했나 싶었다. 머리 속으로 조선 시대 궁녀도 되어보고, 왕비도 되어보며 열심히 다 둘러보고 나니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 때는 이미 내가 배도 고프고 힘들어서 그만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경복궁이 계속 가 보고 싶다는 마음의 소리, 원래 들어주지 않으려 했지만 일정이 뒤로 미뤄지는 바람에 여백이 생겨서 가게 된 곳, 막상 가 보니 그 동안 미뤄왔던 휴식 및 힐링의 시간이 다 채워지는 느낌. 정말 신기했다. 내 마음은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경복궁에 가면 마음이 다시 새로워질 것이라는 것을.
오늘 다시 한 번 느낀다. 해야 할 일이 많지만, 마음에 소리에 귀를 기울여 내가 필요한 것을 채워주면 나는 한 걸음 더 씩씩하게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나같은 워커홀릭은 꼭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