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자기관리에서 잠시 쉬어가는 날
이번 주말은 별 계획없이 부모님 댁에 갔다. 내가 고른 향과 말린 꽃으로 만든 플라워 디퓨저와 왁스타블렛도 엄마께 드리려고 가져갔다. 혹시 공부를 하게 될지도 몰라 노트북과 패드도 챙겼다.
원래 운전을 할 때는 늘 영어 컨텐츠나 강의라도 듣는 편인데 오늘은 굳이 그러지 않았다. 그냥 주변 풍경을 살피며 운전을 했다. 덕분에 봄으로 바뀐 풍경들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연한 연두색 순들이 올라왔고 쪽빛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트이고 기분이 좋아졌다.
집에 가서는 엄마 심부름도 좀 해드리고 소고기도 구워 먹고 텔레비전도 많이 봤다. 내가 자취하는 곳에는 일부러 텔레비전을 두지 않았기에 유튜브 위주의 영상을 보는 편이다. 이번에 부모님이 구입하신 텔레비전의 성능도 한 번 볼겸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굿 윌 헌팅'이라는 보지 않았던 영화가 나와서 채널을 고정하게 되었다. '나혼자 산다' 기안84의 런던 전시 이야기도 재미었었고, 오은영 박사님 프로그램도 잠깐 보았는데 배울 것이 있었고, 무엇보다 '서진이네'가 정말 재미있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허기가 져서 원래 절대 먹지 않고 있던 음식 종류인 빵도 한 조각 먹고, 붕어싸만코 아이스크림도 먹고, 컵라면도 하나 먹었다. 내가 원래 절대 먹지 않는 세 가지 종류의 음식을 먹으니 내가 얼마나 그동안 음식을 절제하느라 노력했는지 느껴졌다.
죄책감보다는 자유를 만끽하는 기분으로 '그래, 오랜만에 치팅데이로 보내자'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토요일은 원래 공부하고 독서하는 날로 보내곤 하는데 오늘은 하루종일 텔레비전 앞에서 보냈다. 그런데도 마음은 이렇게 만족스럽고 좋을 수가 없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며 가져갔던 노트북과 패드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놀기만 했지만 왜 내가 만족스러웠을까 생각해보니 한 달 넘게 목표의식을 갖고 나름대로 노력하느라 마음이 진정 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건강을 위해, 실력 향상을 위해 한 달 넘게 계속 긴장 상태에 있다가 오늘 부모님 댁에서 그 긴장을 딱 놓으니 편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 것이다.
내가 너무 즐거워하는 모습에 부모님도 기뻐하시는 것 같이 느껴졌다. 매일 이렇게 지내면 문제가 많아지겠지만 한 달에 하루 정도는 이런 날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