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만나고

95세 / 치매를 겪고 계신 / 그래도 사랑해!

by 햇살

지난 1월 말에 할머니를 방문하고 4달이 지나 오늘 할머니를 뵈러 갔다. 할머니를 몇 달에 한 번씩 뵐 때마다 기억을 점점 잃어가고 계신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할머니가 오늘 어디까지 기억하시는지가 소중하게 느껴져 글로 남겨본다.


지난 번에는 함께 살았던 손녀딸(필자)을 알아보시고 이름도 기억해주신 반면, 본인의 세 아들과 세 딸들 중 둘째까지만 이름을 기억하셨다. 뇌의 시냅스 연결이 많이 끊어졌구나 싶었다.


오늘은 할머니께서 나를 보셨을 때, 내가 누구인지 이름은 뭔지 알아보시지 못하셨다. 나보다 더 자주 방문드리고 있는 우리 엄마(며느리)는 기억하시고 이름도 기억하셨는데, 내가 아무래도 너무 간헐적으로 가다 보니 그새 잊으셨나보다. 조금 속상한 마음도 들었지만 엄마 이름은 기억해주셔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31년생으로 결혼하시고 6.25전쟁을 겪으시고 남편을 군대에 보내신 분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두 시간도 넘게 생생히 들었던 기억이 있어 할머니께서 기억하지는지 궁금해서 여쭤보았다. 할머니께서는 "이제는 그런 거 다 기억도 안 난다." 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꺼려하셨다.



지난 겨울보다 얼굴이 더 좋아보이신 할머니는 후레쉬베리와 요구르트를 사갔는데, 카스타드보다 식감이 부드러워서인지 한 개를 다 드셨다. 그리고 손가락 박수치기, 두피 마사지, 팔 들어 올리기 등 기본적인 동작은 잘 따라하셔서 아직 신체적인 건강은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사드린 묵주를 계속 만지고 돌리시면서 우리와 대화를 하셨다.


할머니는 늘 묵주를 만지시며 아들, 딸, 손자, 손녀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분이셨다. 그래서 오늘 할머니께 아직도 기도하시냐고 기도를 들려달라고 부탁 드렸는데, 이번에도 역시 "이제는 기억 안나서 못해."라고 하시면서 웃으셨다. 그래도 목요일마다 미사를 드리신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15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오랜만에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 기억나세요?"

"그럼 기억나지. 할아버지 얼굴 기억나지."

"할머니는 할아버지 좋아하셨어요?"

"그럼. 좋아했으니까 같이 살았지. 그렇게 많이 싸웠어도."


나는 할머니랑 할아버지랑 계속 같이 살았기 때문에 두 분이 얼마나 잘 지내시면서도 얼마나 싸우셨는지를 많이 보았다. 늘 술을 많이 드시고 호통 치시는 할아버지였지만,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를 살뜰히 정성을 다해 챙겨주시고 사랑하셨다. 할아버지께서 암투병을 하시느라 병원에 마지막 몇 년간 입원하셨을 때도 할머니가 늘 병실에서 병간호를 다 하셨고 돌아가시기 전에도 늘 두 분이 같은 침대에서 주무셨다. 할아버지 배가 불룩하게 팽창할 때에도, 할아버지 피부가 불긋불긋해지고, 상처가 계속 생겨도 할머니는 늘 할아버지 곁을 지켜주셨다. 어린 나의 눈에도 그런 할머니가 아름다워 보였는지 나의 배우자 기도제목에는 "할머니처럼 평생 남편만 바라보는 정절을 지키게 해주세요."라고 써 놓았을 정도이다.


그런 대화를 나누고 얼마 안 지나, 어떤 젊은 할아버지가 우리 할머니 앞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할머니, 행복하세요!" 이런 식의 말을 하였다. 할머니는 "우리 할아버지는 따로 있어. 나는 네 할머니가 아니야."라며 거부감을 드러내셨다. 옆에 계신 요양원 선생님이 우리만 보이게 "치매가 있으셔서 그래요."라고 하시며 그 할아버지를 데리고 가셨다. 할머니는 치매를 심하게 겪으시면서도 15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정절을 지키시려고 노력하시는 듯 했다. 할머니의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고 고상하게 느껴졌다.


"할머니, 할머니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나? 내 나이 항상 기억하고 있지. 팔십 이."

"팔십 이요? 할머니 올해 구십오세신대."

"구십오? 아니여. 팔십이세여."


82세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일년 뒤의 할머니 나이셨다. 할머니는 어쩌면 할아버지를 보내시고 그 충격에 치매를 겪기 시작하셨는지도 모른다. 30년 넘게 할머니를 모시고 사시던 엄마도 할머니의 이상한 행동들을 참고 참으시다가 점점 심해지시는 걸 느끼고 7년 뒤에 요양원에서 모시기로 결단하신 것이다.


할머니는 처음에 요양원에서 지내시는 것을 힘들어하셨고 많이 슬퍼하셨고 집에 가게 해달라고 하셨다. 나도 할머니만 생각하면 너무도 눈물이 나서 힘들었다. 그렇지만, 엄마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고 할머니 옆에서 계속 붙어 도와드릴 수 없는 상황에서 화재 등 너무나 많은 위험요소가 생기니 어쩔 수 없는 결단을 하신 걸 알기에 수용하고 지지해드려야 하는 부분이었다.


이제 할머니가 요양원에 계신지, 6년째이다. 할머니는 본인이 요양원에 얼마나 계셨는지 알지 못하시고 "이제 집에 가야지." 하신다. 그 말을 들어드릴 수 없는 걸 알면서도 "그래요. 할머니. 다음에 가요."라고 말했다.


사랑하는 할머니. 치매에 걸리셨지만, 여전히 요양원 선생님들에게 작은 것에 고맙다는 말을 늘 하셔서 사랑을 받고 계신다. 우리가 가도 "바쁜데 왜 왔어?"라면서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주시는 말을 하신다. 간식을 사 가면, "너네도 얼른 먹어."라면서 우리를 챙겨주신다. 또 옆에 선생님도 같이 챙겨서 주신다.


할머니는 많은 정보를 기억할 수 없는 치매에 걸리셨지만, 여전히 그 아름다운 성품을 발휘하며 살고 계신다. 그래서 그 삶이 참 아름답게 느껴지고 숭고하게 느껴진다. 저렇게 늙어가려면 평소에 젊었을 때에도 좋은 성품을 길러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할머니, 오래오래 찾아뵐 수 있게 그 곳에서 건강하게 지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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