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다하기 전, 그 마지막 순간

시든 꽃이 버려지기 전, 그 마지막 얼굴을 봐주며

by 햇살

지난주에 꽃다발을 받았습니다.

꽃병의 물을 매일 갈아주고 줄기 끝을 잘라주면 보통 3주까지도 꽃이 쌩쌩했는데, 이번에는 더운 날씨 때문인지 꽃이 일주일을 채 못 견디고 거의 시들어버렸습니다. 줄기는 물러서 진물이 나오고 냄새가 나기 시작해서 더 이상 꽃을 꽃병에 꽂아둘 수가 없겠더라고요. 꽃을 줄기째 말려서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다 시들지 않은 꽃송이들이 자신들을 더 봐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직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꽃송이만 잘라놓고 보니, 버리면 아쉬웠겠다 싶을 만큼 예쁘고 꽃병에 있을 때와는 달리 그 얼굴을 더 잘 보게 됩니다.


꽃송이들을 예쁘게 모아놓고, 집을 정리하고 식탁에 앉아 거실을 바라봅니다.

나만을 위해 가장 아름답게 꾸며놓은 공간, 앉아만 있어도 쉴 수 있는 이 집에서 산지 5년이 다 되어갑니다.

직장인이 된 지도 11년이 넘었는데 그 지나간 시간이 꿈결같이 느껴집니다.

힘든 순간도 참 많았고, 행복하고 벅찬 순간도 많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9살, 13살 때의 어릴 적 기억도 생생합니다. 마치 제가 그 시절에 만났던 사람들과 머물렀던 장소들을 생생히 기억할 만큼.

그때가 20년도 더 전이라니, 믿기지 않지만 전 아직도 그때의 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일까요?

참 많이 애쓰고 고군분투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이 세상을 하직하는 마음으로 지나왔던 모든 시간에 경이롭고 감사하며 모든 것을 수용하는 마음입니다.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이런 마음이면 좋겠습니다.

지나간 모든 시간이 아프지 않게 기억되고, 이만큼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 신기하고 놀라운 마음.

그리고 저 꽃송이들처럼 가장 아름다운 저의 얼굴을 내밀며 세상을 떠나면 좋겠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찬란히 남기고,

천천히 그 생명력을 다하면 좋겠습니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다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것들도 있더라고요.

세상에 사는 마지막 날에는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아요.


아쉬움보다 이만큼 살았다는 경이로움이 저를 감싸 안을 것이고 저는 저 꽃송이들처럼 나를 아름답게 봐주는 사람들 곁에서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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