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누구도 엄마처럼 날 사랑하지는 않을 거야

by 대현

나에게 엄마는 누구보다도 위대한 존재였다. 지금도 그러하며 아마 당신의 일생이 순리에 맞춰 흙이 되는 그날 이후로도 그러할 것이다. 삼남 중 첫째로 태어난 나를 엄마는 유독 아끼고 사랑했다. 때론 불이 되어 나를 뜨겁게 다스리시기도, 시원한 물이 되어 달래주시기도, 비옥한 땅이 되어 희망을 주시기도, 청량한 바람이 되어 내 안의 화를 잠재워주시기도 했다. 그렇게 엄마는 나에게 자연 그 자체와도 같은, 원초적 존재이다.

지난 약 2년, 가족 안에서의 일련의 사건으로 엄마와 나는 잠깐동안 소원한 시기를 가졌다. 그 사건으로 인해 부모님은 이혼을 결정하셨다. 평생 서먹하고 불편했던 아빠와의 거리감이 의도치 않게 가까워지고, 삼십 년 넘게 당신의 품에서 헤엄쳐오던 나는 엄마의 사랑에 처음으로 불쾌와 실망을 겪었다.


크리스틴 해나의 장편소설 『사방에 부는 바람(The Four Winds)』은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과 중부지방의 심각한 가뭄, 그로 인해 겪게 되는 차별과 생존에 대한 농부들의 힘겨운 사투와 두려움, 그리고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엘사는 원치 않은 결혼으로 아이를 갖고 부모님에게 천박한 자식으로 낙인찍힌다. 엘사의 남편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고 가뭄에 시달리는 인생 속에서 괴로워하며 가족들 몰래 도망가고 만다. 엘사 또한 얼마 가지 않아 자식들을 데리고 희망의 땅이라 믿고 싶던 캘리포니아로 떠나지만, 그곳은 이주민들에게 차별이 심했으며 가뭄만큼이나 표독한 거친 노동이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평소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강하고 고리타분한 일상에 따분함을 느끼던 엘사의 딸 로레이다는 이런 모종의 비극을 오로지 엄마의 탓으로 돌리며 비관하기에 바쁘다.

그런 와중에도 엘사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두 자식을 살려 먹이겠다는 집념. 결코 자신과 같은 비극은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티고 버틴다. 그런 시간이 흐르고 엘사의 딸 로레이다는 서서히 엄마를 이해하고 연민하다가, 소설의 끝자락에서 일련의 사건을 통해 진심으로 그녀의 엄마 엘사를 사랑하게 된다.



엘사는 그녀의 무모하고 아름답고 충동적인 딸을 바라보았다. "난 네가 세상을 정복하는 걸 지켜보고 싶었어, 내 딸아."

"난 엄마 없인 할 수 없어요."

"할 수 있어... 그리고 넌 해낼 거야."

"불공평해." 로레이라가 말했다. "이 세상 누구도 엄마처럼 날 사랑하지는 않을 거야."

(...)

로레이다가 주머니를 들고 눈물을 흘리며 꼭 쥐었다. "엄마 없이 나 어떻게 해요?"

엘사는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지어지지 않았다. 너무 피곤했다. 너무 힘이 없었다. "살아야지 로레이다." 그녀가 속삭였다.

"그리고 기억하렴... 매 순간... 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지."



나는 지금, 엄마와 짧지만 길었던 2년여간의 소원한 관계를 마치고 다시 점착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 고향으로 내려가 엄마를 만나 그동안 복잡하게만 얽혀 있어 풀고 싶지 않았던 실타래를, 그래서 날카로운 가위로 싹둑 재단해 버린 그 어딘가를 찾고 다시 이어갔다.

이러한 나의 행동에는 꽤 큰 용기가 필요했다. 실망과 상실 그리고 때론 분노하기도 했던 당신과의 상황을 뒤로하고 미래의 희망하기에는 상당히 큰 두려움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 이 두려움이라는 켜켜이 쌓인 먼지를 용기의 손길로 치워버릴 수 있었던 데에는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서 뒤로 하고 있던 엄마라는 존재의 위대함이 있었다. 엄마는 나를 결코 내쳐본 적이 없었다. 내가 태어난 이후로 인생의 굴곡 속에서 헤매며 생존이라는 문턱을 오가려 했을 때도,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약해져 포기하고 싶을 때도, 그녀가 겪어 온 삶의 이치와 논리, 태도가 다르다는 것을 그녀의 앞에서 매정하게 말할 때도, 그녀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너무도 잔악무도하고 인정사정없는 모래 폭풍이 그들을 덮치고, 각박한 삶이 기본값이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차별과 수치심을 감내해야 하는 모진 하루하루가 다가와도, 더 이상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고된 육체노동 속에서도 자식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엘사처럼.


이 세상 누구도 엄마처럼 날 사랑하진 않을 거란 것을 잊고 사는 일은 도심이라는 무도한 톱니바퀴 속에서 쉽게 잊히기 마련이다. 그 톱니바퀴 속에서 어렵게 빠져나와 나를 키워준 엄마라는 존재의 위대함을 깨우치게 되었을 때, 불행하게도 그때는 그 위대함에 감사함을 표할 엄마가 우리의 곁에 없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기도 하다.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황무지를 부단히 견디고 그 텁텁하고 건조한 생존 속에서 어떻게 해서든 자식의 화사한 앞날만을 마음속에 두고, 자신은 기꺼이 지금의 녹록지 못한 삶을 온전히 맨몸으로 받아내는 존재, 엄마가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