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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Jun 03. 2024

프롤로그 : 실패자의 '발칙한' 스타트업 야사 에세이

몇 년 전 유튜브에 '좋좋소'라는 콘텐츠가 큰 인기였다.

중소기업을 다니는 사람들의 쉰 내 나고 열 뻗지는 이야기를 풍자한 스케치 드라마. 나 또한 재밌게 봤다. 한 편 당 조회수가 몇 백만 명은 기본이었다. 그저 재밌게 본 사람들도 있겠지만 씁쓸함을 가지고 공감한 이도 적잖았을 것이다. 물론 나는 일반적인 중소기업을 다닌 것은 아니다 (소위 우리가 말하는 스타트업과 일반적인 중소기업은 다르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허나, 다른 것은 차치하고 '좋좋소'를 보면서 나의 스타트업 일대기를 추억하게 된 계기는 사무실이었다.


자그맣고 투박한 사무실, 아침에 출근하면 환기가 안 돼서 매퀘한 먼지 냄새가 날 것만 같은 곳, 서류와 온갖 잡동사니가 질서 없이 처박혀 있을 듯한 누렇고 거대한 철재 캐비닛. 눈을 비비고 봐도 내가 스타트업의 사무실 문을 처음 열고 목격한 광경과 너무나 닮았다. 

그런 자그맣고 투박하고 쉰내 나는 사무실에서 5명과 함께 '초기멤버'로 일을 했다. 내가 다닌 회사는 5년 만에 직원수 150명의 남부럽지 않은, 꽤나 서울에서는 이름 좀 날리는 '기업'이 되었다 (내가 퇴사한 지금도 잘 성장하는 듯 하다..쩝). 월 150만 원의 급여에서 나는 연봉 1억의 고액연봉자가 되었다. 150명 중 내 아래에는 147명의 후배들이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적든 많든, 그들은 나의 부하직원이었다(어감이 매우 별로지만 사실이니 뭐..).


5명으로 시작한 회사가 5년이란 시간만에 무려 30배가 늘었고, 기업가치도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고, 나 또한 보란 듯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인생에서 이 5년은 처절한 실패의 시간이다. 

시행착오라는 말로 위안 삼으며 자기 연민에 빠지기는 싫다. 나는 실패했다. 이 실패는 누구의 탓도 아닌 오로지 나의 책임이니. 이 책은 왜 내가 실패했는지 꽤나 적나라하고 발칙하게 써 내려간 책이다. 퇴사를 한지 벌써 몇 해가 지났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 되어버린 오답노트. 왜 그때는 이런 오답노트를 쓰지 못했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멀리서 봐야,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듯, 나에게는 그때의 시간이 그러하다. 


이왕 오답노트를 쓰는 김에 좀 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남들은 스타트업의 성공 경험을 토대로 스타트업에 입사하려는 이들에게 힘이 되는 노하우를 담은 책을 내지만, 나는 실패자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 어차피 성공담을 써내지 못할 거라면 좀 더 발칙해보자. 좀 더 적나라하게, 좀 더 매운맛으로, 나의 실패담을 들려주자. 그리고 어차피 퇴사한 몸이니 회사와 다른 직원이 벌인 발칙한 일들도 써보지 뭐. 물론, 전 직장에서 고소장이 날아오는 것은 원치 않으니 불닭볶음면 수준의 매운맛은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신라면 정도는 내가 어떻게는 맵게 써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이 스타트업 입사를 꿈꾸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여러분들이 내 책의 표지처럼 핑크빛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스타트업에 입사했지만, 내 글이 머릿속에서 떠오른다면 책 표지의 먼바다의 거무룩한 먹구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이 책의 내용이 비단 스타트업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도 다른 기업들을 겪어보지 못했으니. 물론, 모든 스타트업의 생태계가 이 책의 내용과 같다는 섣부른 판단도 금물이다. 그렇기에 내가 쓰는 얘기들에 반감을 갖는 이들이 있다면 그 또한 존중한다. 허나, 내 글은 어디까지나 사실에 기반했고 내 머릿속에서 결코 지워질 수 없는 강렬한 사건, 사고들을 담은 글이니 이해해 주길 바란다. 


'오답노트'의 기능은 어디까지나 다음에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풀 때는 현명한 해답을 낼 수 있기 위함에 있다. 이 책이 나의 남은 삶의 해답을 찾는데 유용하게 쓰이길 바란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의 오답노트에는 내가 겪은 오답이 없기를 바란다. 


자, 이제 발칙하게 내 이야기를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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