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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Jun 10. 2024

5년 간 사내연애 세 번

동물의 왕국을 만들어 버렸다.

내가 사내연애를 세 번이나 해봐서 아는데...



조금 꼰대스럽게 얘기해 보겠다. 

사내연애, 하지 말자. '사내연애 하지 마라!'라고 강압해 봤자 할 사람들은 다 하더라. 이미 수많은 커플들이 스타트업 속에서 잠입 연애를 하고 있을 것이기에, '하지 말자' 정도로 해둔다. 


나는 스타트업에서 5년 간 세 번의 사내연애를 했다. 자랑할 거리는 아닐 수 있다. 그렇다고 굳이 숨겨야 할 것도 아니지 않을까. 물론 떳떳하지도 않다. 그냥 사실이니 사실을 얘기할 뿐이다. 연애는 사람에게 있어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이니까.


"굳이? 왜 회사에서?" 

라는 질문을 하신다면, 바빴다. 


바빠도 너무 바빴다.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내 유일한 취미 생활은 퇴근하면 소파에 누워 티브이를 보다가 다음날 아침을 맞이하는 일이었다. 초기 스타트업에서 따 먹을 수 있는 미래의 금전적 가치에 꽂혀있었던 나. 그 외의 모든 행위들에 나태함과 무기력함에 잠식당해 있던 나. 하지만 꼴에 또 연애는 하고 싶었던 그 시절의 나였다. 




간단하지만 어려운 명제,

'사내연애는 비밀스러워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왜 사내연애를 반대하느냐'인데, 사내연애를 해보지 않았더라도 사내연애는 득 보다 실이 많은 이유는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내연애의 시작에는 '비밀스럽게' 라는 조건부가 달린다. 이 조건부로 인해 사내연애 당사자들은 일반적인 연인들이 누리는 행복감에 제약이 걸린다. 같이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릴 수도 없다. 데이트를 하면 길거리의 수많은 사람들 중 우리를 알아보는 회사 사람들은 없을까 노심초사할 때가 많다. 실제로 목격되어 결국 파국의 길을 걷는 경우도 종종 봤다. 공적인 업무에 연애 감정이 섞여 일 효율도 떨어지고 서로의 애정도 바스러지는 일도 허다하다. 혹시라도(거의 확신에 가깝지만) 이별할 경우 다가올 찝찝함은 이루 말할 수도 없다. 비밀스런 사내연애를 해본 자들만일 느낄 수 있는 쾌감도 있겠으나, 포기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아진다. 


'사내연애는 비밀스러워야 한다.'는 이 강압적이고 답답하지만 국룰같은 명제.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되는 이 제약이 쌓이고 쌓이면 애정전선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통계가 그렇다.



자 그럼, '사내연애는 비밀스러워야 한다'가 왜 절대적 명제여야 하는지 알아보자.

이것에 대해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내 경험을 토대로 한 훈수를 둬보겠다. 




첫 연애를 대표에게 들켰다


비밀 사내연애는 회사에 사람이 적을수록 들키기 쉽다. 사람수가 적으니까 그만큼 둘 만의 연애 시그널이 타인에게 보이기 쉽기 때문이다. 비밀 유지 서약이나 이를 위한 행동 철칙을 정하며 의식적인 조심성을 높인다 해도, 사람이라는 게 어디 9to6 계속 그럴 수 있겠는가. 무의식적으로 취하는 행동이 아마 훨씬 많을 것이다. 이 무의식에 기반한 행동들은 직장 내 다른 직원들의 레이더망에 포착될 수 있다. 하필 나는 대표의 레이더망에 걸렸다. 대표, 평소에도 매우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남 하는 일에 궁금함이 많고 그 궁금함을 해소했을 때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첫 번째 그녀의 매우 사소한 행동을, 매우 사소하고 무의식적인 행동을, 대표가 포착했다. 사소한 행동으로 시작된 추측이 대표의 관찰력에 정밀함을 더했고, 그렇게 쌓인 정황들은 진실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진실은 이미 나와 첫 번째 그녀가 의식할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차라리 대표에게 사내연애를 밝히고 떳떳하게 연애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면담을 자청했다. 대표는 특유의 확신에 찬 표정을 지으며 '그럴 줄 알았다'는 말과 함께 나를 회유하기 시작했다. 힘들다. 오래 못 간다. 주변에 다들 헤어졌다. 불행할 거다. 이미 상식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비극적 시나리오들을 토해냈다. 콩깍지가 제대로 씐 나에게는 받아들여질 일은 없었다. 




사내 연애를 좀 더 자유롭게 하기 위해 대표에게 비밀을 공개한 나와 첫 번째 그녀의 결정이 대표가 말 한 수많은 비극의 시나리오의 시작이었고, 이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이 나였다. 예정했던 데이트 날에 야근이 예상되면 나는 데이트를 이유로 정시 퇴근을 요청했고, 그때마다 대표는 흔쾌히 '허락'했다. 허락? 허락이라,, 데이트를 허락받아야 하는 것인가? 처음 몇 번은 야근에서 벗어날 수 있음에 좋았다. 근데 이 패턴이 반복되면서 나에게 데이트는 '업무 보고'의 일환이 되어 있었다. 한정된 인프라 안에서 한 사람의 에너지를 쥐어 짜내야 하는 것은 초기 스타트업의 숙명이다. 야근은 일상이며 삶이다. 야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뤄지는 것일 뿐이다. 업무는 엄연한 대표의 지시 아래 이뤄진다. 하지만 연애 시간을 만들기 위해 야근을 미루기 위해 대표에게 보고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일일까?


상황은 단순한 보고를 넘어서 간섭에 이르렀다. 오늘은 어디로 데이트를 가느냐. 여자친구가 옷을 예쁘게 입고 왔던데 오늘이 기념일이냐? 너는 오늘 왜 이렇게 꾸미고 왔냐? 즐거웠냐? 인간 탐구에 관심이 많았던 대표. 입사 전 사적인 연으로 친분이 있기에 망정이지, 이 얘기를 듣는 여러분은 대표가 나를 '사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저런 이유들이 쌓인 첫 연애는 입사 2년째에 끝났다. 첫 번째 그녀는 이별 직후 퇴사했다. 이대로 나의 첫 사내연애로 인한 상황은 마무리되는 듯 보였지만, 더 큰 회의감과 깊은 현타를 마주한 사건이 한 가지 더 있다. 

회사가 성장하고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대표가 가장 먼저 걱정했던 것 중 하나가 사내연애였다. 대표는 사내 연애가 업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대한 막고자 했다. 이 의지는 누군가에게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었기에 조심스러웠다. 대표는 나를 활용하고 싶어 했다. 내가 구성원들을 모아 그들에게 사내 연애의 위험성을 알려주길 바랐다. 나의 사내 연애 경험을 신입 직원들에게 알려주길 바랐다. 그 당시 나는 회사의 모든 것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마치 회사와 대표가 입력하는 값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 입력값을 회사, 아니 대표가 바라는 출력값 그대로 출력해 내는 AI와 같았다. 이 말도 안 되는 입력값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는 신입 직원들을 한 자리에 모아 내 사생활을 내가 폭로했다. '과연 대표의 의도되로 될까'라는 생각은 이미 내 알고리즘에는 조건부로 설정되어 있지 않았다. 이 날의 모욕감이 나 오장육부에 와닿은 것은 꽤 시간이 흐르고 난 후였다.


퇴사 직 후 주마등처럼 지나갔던 5년 간의 시간 중 신입들 앞에서 나 자신을 폭로한 나에게 제일 역겨웠고 화가 났다. 수치스러움이 온몸을 잠식해서 잠을 자지 못했다. 나 자신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사로잡혔다. 사내연애가 마치 대역죄인 양 받아들여진 그때의 상황을 왜 나는 지나고서야 알았을까. 나 자신이 미웠다.


나를 포함한 세상 사람들은 남의 일에 관심이 많다. 그 관심은 도를 지나쳐 때로는 사찰이 된다. 나를 포함한 당신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하길 바란다. 여러분의 관심이 선의에 의한 것이라는 이기적인 착각도 마시길. 선의는 상대방이 바랄 때 선의인 것이다. 나는 선의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표에게 얘기했고 그 선의는 의도적이든 의도치 않았던 자꾸만 안 좋은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었다. 


세 번의 연애동안, 나는 대표에게 첫 연애를 밝힐 때 빼고는 단 한 번도 내 입 밖으로 직원들에게 연애를 얘기해 본 적이 없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당신들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래도 사내연애를 할 사람들은 하겠지. 난 응원한다.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사내연애를 하기로 마음먹었을 것이다. 또한, 사내연애로 결혼까지 골인한 사례도 있으니, 말리지 않겠다. 




사내연애는 같은 부서일 때 더 매콤하다



첫 사내 연애를 끝낸 지 몇 달 후 나는 두 번째 사내 연애를 하고 있었다(이유는 첫 번째와 같으니 생략.) 그리고 이때 즈음 첫 번째 그녀가 재입사를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입사를 했다. 나와의 껄끄러움이 있을 것을 알면서도. 다행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때쯤 회사는 꽤나 구성원이 많았다. 첫 번째 그녀와 나는 다른 부서였고 하는 일이 달랐기에 업무적으로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다. 같은 공간을 쓰기 때문에 순간의 마주침을 회피하기란 불가능했지만 상상했던 껄끄러운 상황은 없었다. 하나, 두 번째 연애는 같은 부서 사람과의 연애였다. 


내 두 번째 연애 상대는 내 팀원이었다. 그녀는 그녀만의 업무 처리 스타일이 있었고, 나 또한 이를 존중했다. 하지만 그녀와의 연애가 시작된 이후 공과 사의 영역이 뒤섞이면서 기시감이 들었다. 그녀와의 연애 시간 속에서 쌓은 감정들이 곧이곧대로 업무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서로의 기분이 좋으면 좋은 데로, 나쁘면 나쁜데로. 마치 회식도 업무의 연장선이라는 말처럼, 연애와 업무는 서로의 연장선이 되어갔다. 좋은 감정이 계속 쌓였으면 좋으련만, 두 번째 그녀와는 서로의 가치관 차이로 충돌하며 싸우는 날이 잦았다. 서로에 대한 안 좋은 감정들이 업무에도 영향을 미쳤다. 회의는 논리와 이성적인 판단 그리고 사업성을 따지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감정 섞인 말싸움으로 변질되기 일쑤였다. 이런 상황의 연속으로 다른 팀원들이 나와 두 번째 그녀의 사이를 추측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앙숙이냐는 사람도 있었고, 둘이 사귄다고 추측하는 이들도 있었다. 여러 추측은 연애로 뱡향이 기울었고 여러 사람들의 입을 돌고 돌아 회사 곳곳에 퍼져갔다. 그리하여 첫 번째 그녀에의 귀에도 들어갔고, 그녀는 나와의 비밀 연애 시절 대표가 발동한 레이더를 본인이 가동하고 있었다. 본인이 관찰한 모든 것을 동료들에게 물증 없는 추측을 담아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그녀도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회사에서, 그것도 본인이 버젓이 있는데 두 번째 연애라니. 앞서 말했듯이 물증은 필요 없다. 이런 분위기를 친한 동료를 통해 들은 나와 두 번째 그녀는 비밀을 끝까지 지켜보고자 하는 마음이 뒤틀려 모든 이에게 예민해졌고 이 예민함은 서로에게도 향했다(대표의 지시로 내가 첫 번째 연애를 커밍아웃했을 당시 두 번째 그녀도 청중에 있었기에 내 첫 번째 연애 상대가 누구인지는 사귀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당연한 이치로 서로의 관계는 소원해졌으며 결국 나는 두 번째 사내연애를 끝냈다. 



동물의 왕국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두 번째 사내 연애 이후 오로지 일에만 몰입하자던 나의 다짐은 얼마 안 가 무너졌다. (이쯤 되면 여러분도 내가 내 무덤을 판 것이라 생각할 것 같은데, 맞다. 부정하지 않겠다.)


몇 달이 지나 나는 또 똑같은 이유로, 일이 너무 바쁘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서 회사로 눈을 돌려 사내연애를 시작했다. 내 과거의 연애 상대 둘, 그리고 이 당시 시작한 세 번째 그녀, 셋 모두가 모두 같은 공간에 있는 상황을 나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다. 그러나 상황은 야생 동물이 사는 정글과 같이 변했다.


두 번째 그녀와 세 번째 그녀는 같은 부서 동일 직급이었다. 그리고 앙숙이었다. 어떤 일을 하든 충돌하고 대립했다. 퇴근 후 세 번째 그녀를 만나는 날이면(거의 맨날) 두 번째 그녀와 있었던 갈등 상황에 대한 하소연을 듣는 일이 하루 루틴이었다. 과거의 연인이라 해도 대놓고 두 번째 그녀와의 갈등을 새로운 여자친구의 입에서 듣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기에, 매일 같은 상황을 반복하는 것에 나는 지쳐있었다. 그래, 모든 것은 내 탓이오. 내가 문제의 원흉이다. 모든 인과의 본질은 나에게 있었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여기서 결정적인 한 방. 세 번째 그녀가 나와 두 번째 그녀의 과거를 알아버렸다. 그것도 그 둘이 두 번째 그녀의 입에 서서! 서로의 갈등을 제대로 풀어보려던 어느 날 밤, 두 번째 그녀가 나와 과거 연인 사이임을 밝힌 것이다(그 당시 두 번째 그녀는 나의 세 번째 연애를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세 번째 사내연애를 한다는 것이 일련의 사건(이것은 말할 수 없다. 그야말로 막장임으로..) 수면 위로 드러나며 두 번째 그녀의 귀에도 들어갔다. 


혼돈의 카오스. 

세 번째 그녀는 두 번째 그녀의 입에서 나와의 연애에 대한 이야기와 헤어짐, 그리고 본인이 느낀 나의 인간성에 대해서 다 토해냈다(당연히 좋은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과거를 알게 된 세 번째 그녀는 나에 대해 혼란스러워했고 나는 (맹세코) 두 번째 그녀가 감정적으로 풀어낸 얘기에서 진실과 거짓 그리고 입장 차이가 있을 수 있기에 함부로 단정할 수 없는 얘기까지 세 번째 그녀가 안심할 수 있도록 진실되게 전했다. 두 번째 그녀는 나의 세 번째 연애를 알고는 자신은 할리우드에나 있을 법한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버겁다는 식으로 세 번째 그녀에게 얘기하며 다시 이 둘은 냉전 상황이 되었다. 나의 세 번의 연애를 직간접적으로 알게 된 다른 직원들. 나에게 평소 적대적이었던 직원 여럿은 '여성 편력이 심한 사람'으로 나를 규정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자면, 이런 세 그녀들과의 출구 없는 상황이 계속 벌어지는 동안, 나를 원망하던 첫 번째 그녀와 두 번째 그녀는 이미 나의 팀원들과 또 다른 사내 연애를 했다는 것이 나중에 나의 귀에 들려왔다. 


동물의 왕국이었다.




꼭 해야한다면, 나처럼은 하지 말자.




사내연애는 막는다 해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안다. 어차피 할 사내연애, 적어도 나처럼 동물의 왕국의 한 가운데에 서서 여럿 힘든 일은 없었으면 한다. 그리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닌 내 과거를 내가 몸소 들쑤시는 것이 그리 탐탁치만은 않지만, 자신의 과거에 연민을 느껴 우울감에 빠지는 것 보단 나으니까.


자 이제 다음 발칙한 실패담을 들어보자.




이전 01화 프롤로그 : 실패자의 '발칙한' 스타트업 야사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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