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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Jun 17. 2024

10억을 준다고 했는데 퇴사했다

당신이 스톡옵션에 목매는 순간 스타트업에 있을 필요가 없다.

초기 스타트업을 다니는 누군가가, 초기 스타트업 입사를 생각하는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묻고 싶다.

"당신은 오로지 '스톡옵션'을 바라보며 인생역전을 꿈꾸고 있는 사람인가?"


당신이 만일 내 물음에 "응"이라고 대답했다면, 과감하게 그 꿈을 포기하길 권한다.

여기, '스톡옵션'에 사로잡혀 인생 역전은커녕 초라한 퇴사를 한 실패자의 얘기를 들어봐 달라.



현재 보상 VS 미래 보상



회사에서의 보상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현재와 미래.

현재에 대한 보상은 말 그대로 현재 자신에게 돌아오는 보상, 연봉, 복지가 대표적이다. 초기 스타트업에 입사하는 이들은 대부분 미래의 보상을 생각하고 입사하는 경우가 많다.  혁신적인 아이디어 하나만 가지고 시작하는 스타트업에게 충만한 자금과 인프라를 바랄 수도 없음이며,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수 있는 동료를 데리고 오는(모셔온다가 맞을 것 같다) 일 또한 돈이 없기 때문에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 미래 보상에 대한 논의를 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스톡(지분)과 스톡옵션이다.



스톡(지분)과 스톡옵션은 아주 많이 다르다.


이 두 존재에 대해서 매우 야매스럽게 얘기해 보겠다. 초창기 멤버로 들어온 이들은 당시 보상이 녹록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대표가 이들에게 회사의 지분을 합의하게 나눠주는 경우가 많다. 열심히 헌신하여 회사가 드디어 성장해서 기업가치가 올라가면 외부에서 투자를 하려는(빌려주려는) 입질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자생적으로 이익을 낸다면 굳이 외부의 돈을 빌릴 필요는 없으나, 그런 스타트업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격임) 스타트업이 이런 투자 검토를 하는 시기가 여러 번 오는데 이 것을 우리가 흔히 부르는 '시리즈 x'라고 보면 된다. (내용이 슬슬 어려워지는데 투자 공부는 성공한 분들의 책에서 하기 바라며) 지분이 있는 직원이 시리즈때 마다 자신의 지분을 합의한 만큼 현금화 할 수 있다.


자, 그럼 여기서 제일 궁금해하는 점이 이것이겠지.

과연 현금화한 금액은 얼마정도 되느냐?


정말 천차만별이다. 회사의 성장 수준, 합의한 주식의 수준 등등 고려할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누군가는 태어나서 만져보기도 힘든 만큼, 초기 멤버로서 맨땅에 헤딩하며 온갖 고생이란 고생은 하고 뼈가 썩어가도록 일한 시간을 보상받고도 남을 만큼, 남은 일생을 그 돈 다써도 남을 만큼의 금액이라고 해두겠다.


물론, 회사가 망하면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다.



내가 경험한 스타트업은 그랬다. 내가 들어오기 전 이미 회사는 2년 전부터 4명으로 시작했었다. 그들은 그당시 보상(현재 보상)을 거의 받지 못한 대신 회사의 지분(미래 보상)을 각기 나눠 가졌다.

내 입사 연도를 기준으로 약 2년 후(설립 4년 후) 회사는 성장세를 타서 투자를 받았다. 그리고 나 이전에 입사한 모두는 자신들의 지분을 팔았다. 내가 직접 통장을 보진 못했더라도 그들의 수중에 들어온 돈은 거의 10억 이상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은 아직 그들의 지분을 반도 팔지 않았다는 것. 회사가 또 성장하면 지금 현금화한 돈의 몇 배, 아니 몇 십배의 돈을 또 얻을 수 있었기에, 지분을 한꺼번에 판다는 것은 황금알을 낳는 오리의 배를 가르는 격이었다.




내가 받은 것은 지분이 아닌 스톡옵션.



그들이 10억이 넘는 보상을 받고 있었을 때, 나는 연봉 6천만 원이 되었다. 입사 2년 만에 월급 150만 원에서 연봉 6천. 이 또한 쉬이 있기 어려운 일이었다. 내 생에서 가장 크게 만져본 돈이었다.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슴 한편에는 굉장히 찝찝하고 거슬리는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회사는 2년이 안 되어 또 투자를 받았다. 그때 나는 드디어 연봉 1억이 되었고, 회사에서의 헌신을 인정받아 스톡옵션 계약에도 사인했다. 그리고 창립멤버들은 또 한 번 그들의 지분 일부를 팔아 몇 억대의 이득을 취했다.

이때부터였다. 내 가슴 한편의 찝찝한 거슬림이 온갖 질투와 허상에 빠지게 만드는 존재로 커져가고 있던 때가.


내가 받은 것은 지분(스톡)이 아닌 스톡옵션이었다.

(투자 공부는 다른 책에서 하시기로 하고) 나는 좀 더 야사스럽게 설명하겠다. 나는 그 당시 바로 현금화했을 경우 최소 5~10억으로 추산되는 스톡옵션을 받았다. 말만 들으면 되게 매력적으로 보이겠지만, 스톡옵션이 내가 만질 수 있는 돈이 되려면, 회사에서 3~4년을 일해야 했다. 스톡옵션이라는 권리를 얻기 위한 매우 기본적이자 절대적인 계약 조건이 바로 이 '필수 근속기간'이다. (회사도 굳이 회사에 맘이 없는 이에게 소중한 지분을 주고 싶진 않을테니, 이런 계약 조항을 두는 것이라 보면 된다.)


더 쉽게 말해달라고? 내가 나의 스톡옵션을 지분화 하려면 3년은 더 뼈 빠지게 고생고생하며 일해야 했고, 그 후에 겨우겨우 3년을 다 채운다 하더라도 약속된 지분을 받는 것이 아닌, 지분을 남들보다 '매우 싸게' 살 수 있었다.(자세하고 정확한 이론적 개념은 나무위키를 활용하자.)




이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내 마음속의 배배 꼬임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겠다.



아니, 걔네는 나보다 2년 먼저 시작한 거밖에 없는데? 나도 그들만큼, 아니 그들보다 더 열심히 한 것 같은데? 난 왜 연봉 1억이고 그들은 몇 십억이나 가져가는 건데? 내 일한 가치가 이거밖에 안돼? 나도 초기멤버라고! 겨우 5명일 때부터 일했는데, 그들의 노력과 내 노력의 과실이 이렇게나 차이가 날 일이야? 지금도 일이 끝도 보이지도 않고 답답한 일들 투성이인데? 난 3년은 더 일해야 스톡을 겨우 살 수 있고, 그게 스톡이 된들 내 통장에 꽃히려몆 또 얼마나 더 버텨야 된다는 건데? 이게 맞아? 회사가 나에게 이런 대우를 하는 게 맞아?




스톡옵션에 중독된 실패자가 되다



연봉 1억과 스톡옵션을 받음과 동시에 스타트업에서의 내 삶을 서서히 내리막길을 타고 있었다. 연봉 1억은 그것대로 다달이 통장에 찍히는 돈에 취해 있었고, 스톡옵션이 어서 빨리 나의 돈이 되어 내 손안에 몇 십억의 돈다발이 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그득한 나머지 업무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결국 파국이었다. 내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3년의 시간이 다되어 가고  드디어 7개월밖에 남지 않았을 때, 나는 내 연봉 1억을 포함한 모든 것을 포기하고 회사를 나왔다.



제아무리 스톡이 아닌 스톡옵션이라 할지라도, 누군가는 평생에 꿈도 꿔보지 못할 기회인데, 7개월도 안 남은 시점에서 이걸 포기한다고? 그것도 연봉 1억도 같이?라는 의문을 가지며 이 일련의 상황의 잘못이 나에게 있으며 나의 나약한 멘탈로 인한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부분인정한다.


오해하지는 말아달라.

연봉 1억이 되기까지 나는 5년간 내 삶을 통틀어 회사에 헌신했다고 자부한다. 지금은 그러라고 해도 못한다. 진심을 담은 노력이었고 회사의 비전에 동감하고 나 또한 꿈을 그려 나갔다. 문제는 스톡옵션에 대한 그 당시 나의 허영심임을 말하고자 할 뿐이다. 내가 만든 허탈함과 질투심을 나는 극복하지 못했고, 그것이 나의 목표의식을 부식시켰으며, 나를 실패자의 길로 인도했다. 결국 내 탓이다.

허나! 나의 퇴사 그리고 실패의 시간에는 분명 나의 잘못과 함께 회사의 온당치 못한 여러 사건들이 있음을 이 책의 초입에 미리 말해두며 앞으로 벌어질 회사의 발칙한 일들을 기대해 주길 바란다.

(내 퇴사가 내 잘못만은 결코 아님을 증명할 만한 일들이다)




초기 스타트업에 뛰어들어

인생 역전을 노리는 자들이여



일본의 유명 만화 원피스. 지금은 탑티어 해적으로 칭송받는 이 만화의 주인공들인 밀짚모자 해적단. 그들의 선장 루피는 오로지 '원피스'라는 원대한 보물과 그 보물을 찾기 위한 여정만을 생각한다. 몸뚱이와 자그마한 돛단배로 시작한 해적단은 선장의 리더로서의 면모와 동료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동일하지만 각기 다른 목표에 동질감을 가지고 위대한 항로에서의 여정을 경험하며 성숙해지고 강해진다.


초기 스타트업도 이와 같다. 매력적인 아이템을 키워보자는 목표를 가지고 구성원을 모으는 대표, 회사의 목표와 함께 각기 자신만의 목적을 가진 동료들. 사업을 이끌어가는 대표의 매력을 통해 힘을 얻어가는 회사.
초기 스타트업을 다니는 누군가가, 초기 스타트업 입사를 생각하는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초기 스타트업이란 이런 곳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스톡옵션은, 위대한 항로를 탐험하며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이들이 지치지 않도록 주어지는 과정 속 열매일 뿐이며, 결코 당신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의 실패를 통해 여러분은 결코 실패자가 되자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참, 한 가지 더, 말할 게 있다


구성원이 이미 많은 스타트업에서는 스톡옵션으로 가까운 미래의 '인생 역전' 꿈꾸지도 말길 바란다.

회사의 채용 공고를 보다 보면, '전 직원 스톡옵션 지급', '스톡옵션 검토 가능' 등의 문구를 볼 수 있는데 이건 내가 위에서 말하는 수준의 스톡옵션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전 구성원에게 스톡옵션을 줄 정도라면 이미 회사는 꽤나 성장한 상황일 것이다. 그 말인 즉, 이미 회사의 잠재력이 어느 정도 검증되었단 뜻이다. 즉, 몇십억에 달하는 수준의 과실은 당연히 회사의 잠재력을 시장에 검증하기 전부터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달려온 자들이 따갔을 것이고 그래야 함이 마땅하다고 본다.

뭐, 물론 회사가 삼성전자처럼 엄청 성장해서 10년 이상 묵혀둔 주식이 어느 날 보니 일확천금이 되어있는 것을 바란다면 상관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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