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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Jun 24. 2024

내 목숨값 연봉 1억

건강이 최우선입니다 여러분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No pain, No gain

진정한 노력은 배신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말들. 그렇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딱 하나 이 멋진 명언들에는 조건부가 붙는다는 것을 '잊지 말자'. (어차피 잊을 사람을 잊을 거라서 잊지 마! 보다는 잊지 말자!로 썼다.)



건강 없인 모두 무쓸모다.



그렇다. 건강 없인 모두 무쓸모다. 고생도, 노력도 다 건강해야 할 수 있는 행위다. 

'고기도 씹어본 놈이 씹는다고?' 누가 만들어낸 말인진 모르겠지만, 씹을 건강한 치아가 있어야 씹지 이 사람아! 건강이 최우선이다. 


혹시 여러분이 내가 지금 말하는 '건강'을 '심신이 아픈 곳이 없는 정도'의 뜻으로만 받아들인다면, 오해 마시라.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에서 설명한 '건강'의 정의를 빌린다. 


"건강이란, 모든 질병에서 자유로운 가운데 신체를 이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체를 이용하는 것'이 내가 말한 노력, 고통, 열정 따위를 말한다고 나는 감히 생각한다.




연봉 1억을 얻고, 질병도 얻다



내가 스타트업에 재직한 지 5년째 되던 해, 나는 돼지였다. 내 몸무게는 100kg였다.(참고로 나는 현재 76kg이며, 태어나 이때를 제외하고 단 한 번도 80kg을 넘어본 적이 없다.) 이 당시 몸무게의 원인에 대해서는 좀 있다 설명하기로 하자. 그 해 나는 건강검진을 받았다. 두 해에 걸쳐서 의례 받는 검진이었는데 아무래도 내 인생을 통틀어 비이상적인 몸무게를 기록한 상황인지라 기본 검진보다 좀 더 비싼 검진을 받아보기로 했다. 피검사, 소변검사, 엑스레이 등등 갖가지 검사를 마치고 며칠 후 검진표를 봤다. 사실 일이 심하게 바빠서 내가 검진을 했는지도 까먹기도 했고 그동안 잔병 치례는 좀 했어도 크게 이상 있던 적은 없어서 별 대수롭지 않게 검진표를 펴봤다.

아래가 그 당시 검진표에 나타난 대표적인 현상들이다.(확실히 기억은 안 나서 느낀 그대로를 적어봤다)


- 갑상선 이상 의심

- 고도 비만

- 각종 성인병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

- 소변에서 혈뇨가 확인됨

* 큰 병원에서 자세한 검진을 적극 권장


검진표를 들고서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다. 내 생에 통틀어 처음 진단받아보는 것들이 있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살펴봤지만 결과는 동일. 나는 그날 바로 동생이 일하는 병원에 검진 예약을 했다. 진료날 의사에게 내 진단표를 보여주었다. 


'일단, CT를 찍어보셔야 할 것 같고요, 피검사도 다시 정밀하게 할게요. 그리고 이제 위장내시경은 주기적으로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의사가 대수롭지 않다며 내뱉은 말들은 나에겐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내가.. 내가 성인병 의심에 고도 비만에, 갑상선 이상까지...? 그리고 혈뇨는 또 무슨 소리여.....

그렇게 상당히 떨리는 마음으로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다시 받고 며칠 뒤 다시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의사가 내린 결론은


- 요로 결석으로 의심되는 것이 있음, 물 자주 마셔야 하며, 혹시라도 커지면 내시경으로 빼내야 함.

- 고도 비만 확실. 체중이 1년 사이 급증한 것으로 보아 스트레스를 동반한 폭식으로 인한 것으로 보임

*'대사증후군' 초기 단계로 고혈압, 당뇨 등의 합병증 발병이 될 수 있으니 주의 있게 관리 요망


몇 년이 지난 후라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서 기억에 의존에 적어본다면 이랬다. 특히나 나르 긴장하게 만든 것은 '대사증후군'이라는 글자였는데, 잘은 몰라도 뭔가 음절 하나하나에 매우 섬뜩함이 끼치는 기분이었달까. 

나는 의사와 내 생활의 기반으로 한 상담을 잠시 했다. 의사 선생님 왈,


"업무적인 스트레스와 과한 업무량이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일 좀 줄이시고 식습관도 고치세요."





내 나이에 통풍이라니!!!



지금은 통풍이라는 질병이 젊은 남성들에게도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익히 들 알고 있지만, 내가 통풍에 걸렸었던 2018년도만 해도 통풍이 그리 유행하던 질병은 아닌 것으로 기억한다. 워낙 어릴 때부터 양 발목이 접질리고 제대로 치료를 끝내지 않았던 적이 많아서 발목이 유독 약한지라 그 후유증이 나이 들어 나타나는 것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분명 발목에 무리한 운동을 하지도 않았는데 발목을 접질린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주말이라서 가까운 곳에 문을 연 병원도 없었고 비는 대차게 내리고, 겨우겨우 발을 끌어가며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 주사를 맞은 후 반깁스를 하고 그렇게 통증이 끝나는 줄 알았다. 


바람만 스쳐도 고통스러운 증상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맥주를 마시면 다음날 발목에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나는 그게 맥주가 원인인 줄도 모르고 '아 내가 접질렸을 때 제대로 치료받지 않은 것이 이렇게 나비효과가 되었구나'하는 생각뿐이어서 또 똑같이 주사를 맞고 반깁스를 며칠간만 하고 다시 걸었다. 또 어떤 때는 여러 날에 걸쳐 곱창, 대창, 순대 등 내장고기를 자주 먹었는데 또 똑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것 아닌가! 새벽에 너무 아파서 응급실을 찾아 스테로이드성 주사를 맞고 겨우 안정을 찾았다. 의사에게 요즘 운동도 안 하는데 너무 자주 접질린 통증이 온다고 무심코 얘기를 했는데, 의사 왈


"음.. 접질린 게 아닐 수도 있어요. 내일 병원 오셔서 피검사 한 번 받아보세요."


곧바로 다음날 아침 피검사를 받고, 결과를 확인해 보니 '요산'수치가 평범한 사람의 20배나 높아져 있다는 결과를 들었다.(요산이란 성분이 통풍의 주 요인이다.)

..... 통... 풍?

방 통풍 잘 되게 하란 얘긴 들어봤어도 통풍이란 질병은 난생처음 들어봤다. 부랴부랴 검색을 해봤다. 과도한 음주(특히 맥주)와 내장 고기,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면 생기는 병. 그날 이후로 나는 주기적으로 통풍약을 처방받아야 했고, 2~3개월에 한 번은 새벽에 발작이 일어나 응급실 신세를 져야 했다.






'과도한 업무'가 모든 원인임이 확실하다고 주장합니다



내가 여태까지 소개한 나의 과거 질병들에 대한 결론이다. 지 몸 하나 지가 제대로 챙기지 못한 걸 왜 업무 탓을 하는 것이냐고 말하는 분들을 위해서 그 당시 나의 업무량과 삶의 패턴을 한번 소개해보겠다. 그래도 핑계라고 생각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1. 하루 보통 12~14시간 일하는 날이 5년 중 80% 이상

2. 매번 동일한 시간에 출퇴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때는 새벽에 근무를 나가고 어쩔 때는 주말에도 출근하고 어쩔 경우에는 철야를 할 때도 있었음. 즉 루틴화 된 생활을 영위한 적이 거의 없음

3. 직무 특성상 술 마시는 상황이 많이 생김. 한 번 마시면 1~2차 기본.(주 2회 이상)

4. 회사에서 콘텐츠를 위한 목적으로 이상한 내장류 음식들을 자주 여러 번 먹었음(남들은 평소에 절대 먹지 않을 생물들이나 생명엔 지장이 없는 것들)

5. 업무들의 변수가 많아 곡기를 놓치는 때가 빈번하고, 늦은 밤에 배가 고파 야식을 자주 먹음

6. 업무의 강도가 너무나 높아서, 퇴근하면 밥 먹고 바로 침대에 누워서 취침

7. 수면의 질이 매우 떨어짐. 집에 갈 수 있는 시간이 녹록지 않을 만큼 업무가 많아서 회사에서 취침(제대로 마련된 공간이 아니라 접이식 침대를 피고 회사 사무실에서 취침. 각종 먼지가 많이 쌓였고, 특히 세척을 거의 안 한 침대였음)

8. 업무상 스트레스가 매우 극심. 상사의 질타의 수준이 매우 높았고(인신공격) 이를 버티는 것이 두려울 만큼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이 2년 정도 되풀이 됨.

9. 8번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팀원들에게 풀면서 나 또한 스트레스 발생을 자초함.


물론! 이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한 일들이다. 내가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이라 생각했다. 당연히 감내해야 할 일들이라 생각했다. 나는 돈독이 심하게 올라 있던 돼지였다. 4년 차에 연봉 1억이라는 돈도 받았지만, 탐욕은 끝이 없었다. 나는 연봉을 내 목숨과 맞바꾸고 있었다. 

돈독이 올라 내가 내 수명을 갉아먹었다. 인정한다. 이 모든 것들을 버티고 실행하고 참고 해내는 것이 회사에 대한 로열티라 생각했고 열정이라 생각했으며 성장통의 일부라 생각했다. 누군가가 내 과거를 비난해도 뭐라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나는 회사에 목숨을 걸었고 그 대가로 연봉 1억을 받았으며, 그 대가로 진짜 죽을 수도 있었다.





너 그냥 통풍 발작 걸리고 약 먹어



대표가 나에게 한 말이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이 글의 요지도 아니거니와, 내가 만난 대표가 비인간적인 쓰레기라고 함부로 일반화할 수 없음을 미리 밝힌다. 난 대표에게 많은 배움도 받고 고마움도 느끼는 사람이다.)


내가 여러 번 깁스를 하고 온 후로 나의 통풍 증세는 이미 회사 안에 퍼져있었다. 그러면, 상식적으로 술을 먹는 자리를 많이 만들지 않는 식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대표는 그러지 않았다. 통풍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맨 처음 대표는 나에게 술 먹는 자리는 웬만하면 가지 말고 사리라고 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말이 180도 바뀌는 사건이 있었다. 한 번은 사업적인 수환에 매우 도움이 되는 파트너와의 친밀감을 장기간 끌어올릴 일이 있었으며 그 담당이 나였던 적이 있다. 파트너가 나를 좋아하기도 했고, 나 또한 이 일을 잘 성사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술을 너무 자주 마신다는 것이었다. 한 번 만나면 각종 숙취해소제를 두둑이 챙겨야 할 만큼 각오를 해야 했는데, 이런 상황을 대표에게 보고하고 나서, 대표 왈


"야 너 그냥 통풍 발작 걸리고 약 먹자"였다.



와... 그동안 근 5년 동안 대표와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내며 나름의 끈끈한 정을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이 말을 들은 순간 인간적인 추악함을 느끼는 건 이상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그 당시 나는 스톡옵션(그 당시 가치 약 10억 규모)의 행사 기간을 1년 정도 남겨두기도 했고, 연봉도 1억이었던 돈의 노예였던 터라, 알겠다는 대답과 가식적인 웃음을 짓고 방을 나왔다. 

(그러고 나서 딱 6개월이 안 돼서 매우 찝찝하고 껄끄럽게 퇴사를 당했다는 TMI)






결국 선택은 자기 자신이 하는 것




난 퇴사를 하고 나서 약 2개월 만에 80kg가 되었다. 운동? 전혀 하지 않았다. 그냥 쉬기만 했다. 매일매일 삼시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고, 가고 싶지 않은 술자리 안 나가고, 하루 7-8시간씩 푹 자기만 했을 뿐인데 정상 체중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면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통풍 증세도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 까다. 비록 연봉 1억과는 아주 많이 멀어졌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나는 건강을 얻었고, 건강을 얻음으로써 행복과 나란히 걷고 있다. 지금 내가 하는 일도 꽤나 만족스럽다.



그리스의 의사 헤로디코스가 말했다. 

"인간으로서 모든 활동 또는 대부분의 활동을 그만두는 대가로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다면, 그런 상태를 행복하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적극 동의한다. 나는 내가 사서 고생을 하는 사람임을 잘 알고 있다. 해서, 피로감이 올라가는 일을 자처하는 날이 지금도 여전히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며, 건강해야 체력이 올라가고 그래야 고생이든 열정을 쏟아붓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제는 지난날 내가 저지른 과오를 되새기며 내가 또 돈독이 올라 끝없는 과욕만을 채우는 돼지가 되려 할 때, 지난 5년 동안의 삶을 되돌아보며 다시 건강한 나로 돌아가려 애쓸 수 있게 되었다.

믈론, 일 자체를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일에 미쳐서 살며 그 자체를 건강이라 정의하는 분들 존경하며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 누군가가 내 5년 간의 생활과 비슷한 삶을 반복하면서 고액 연봉을 영위하고 있다면, 묻고 싶다.


당신은 행복과 나란히 걷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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