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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Jul 01. 2024

회사 주식의 노예들

이 책의 세 번째 장 '10억을 준다고 했는데 퇴사했다'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내용을 여기에 다뤄보겠다. 



자극적 워딩이지만 내가 다닌 스타트업에는 노예들이 존재했다. 그중에 한 명이 대표적으로 나다. 회사의 노예였다기 보다는 엄밀히 말하자면 '회사 주식의 노예'라고 말해야 맞다. 3장에서 말했듯 나는 연봉 1억을 받았고 행사한다면 10억 이상의 가치가 있던 스톡옵션을  받았다. 그 이후로 회사에서의 나의 길은 내리막길이었다. 그래서 1년 후 나는 나를 갉아먹고 돈의 노예로 만들어 내 삶을 위협하던 모든 것을 포기했다. 스톡옵션의 행사 권한이 약 6개월도 안 남은 시점이었다. 이건 내가 곧 이 책에서 다룰 얘기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권고사직, 퇴사당했다. 


이번 장은 내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회사 주식의 노예가 나 말고도 내 후발주자들이 겪은 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열심히 일 한 만큼, 확실하고 제대로 된 보상을



내가 회사에 다닌 지 만 2년 즘 되었을 때다. 15명 정도였던 회사 구성원이 공채를 뽑으면서 순식간에 50명이 늘었다. 그 50명 중 수습기간을 거쳐 생존한 사람으로 다시 셈하니 약 30명이 회사에 남아있었다. (이 당시 채용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긴 많은데, 이것도 나중에 다뤄보기로 하고) 이때 뽑힌 사람들은 초기 멤버라고 불리기는 매우 애매했지만, 회사가 조직의 뼈대를 갖춰가는 과정의 시작점이었던 것만큼은 확실했기에, 각 팀이 세팅되는 데 있어서 그 팀의 초기 멤버정도까지는 불릴 수는 있다. 


여하튼 그들은 회사가 슬로건으로 내민 "확실한 로열티와 업무량에 따른 확실한 보상"을 위해서 그들의 젊음과 체력 그리고 의지를 확실히 불태웠다. 보통 아침 출근을 하면, 기본 저녁 9시 퇴근이 기본이었고, 서비스 특성상 주말에도 나와서 교대로 업무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또한 새벽에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여 일반적인 출퇴근 루틴이 아니라 어쩔 때는 새벽까지 철야를 하다가 해가 뜰 때 퇴근하고 곧바로 그날 저녁에 다시 나와 일을 하는 이들이 꽤나 많았다.

이런 일상이 반복되면서 버티지 못해 중도하차하는 인원들이 속출했다. (솔직히 업무의 강도 때문에만 퇴사했다고 볼 수는 없고, 이 또한 뒤에서 다루겠다.) 그리하여 공채로 뽑힌 이들 중 1년 이상 근무를 한 소수 정예 약 10명 이내의 인원들이 살아남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야생에서 살아남은 10명은 확실히 이때까지만 해도 회사의 빛나는 비전에 공감하며 자신들의 뼈와 살을 깎는 고통을 견뎌내며 자의적인 의지 아래에서 견뎌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내가 기억하기로 적어도 20% 이상의 연봉 상승을 따냈고, 그 이후 각자 다른 비율로 스톡옵션까지도 부여받았다.





매너리즘



유럽 축구에는 각종 상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발롱도르를 최고의 개인상을 뽑는다. 통계적으로 한 번 이 상을 받은 사람들은 그다음 해부터 폼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메시, 호날두는 인간이 아니니 빼도록 하자) 이걸 과학적으로 다룬 기사가 기억이 난다. 사람은 한 번 정점을 찍게 되면 그다음의 목표를 추구해야만 더 성장할 수 있는데, 발롱도르를 수상한 사람들은 자신이 이제는 더 나아갈 꼭대기가 없어서 그때부터 매너리즘에 빠지고 폼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였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인데 왜 갑자기 축구 얘기냐고?



내가 회사를 나오고 나서 회사의 동료에게서 들은 얘기다. 

이 당시 스톡옵션을 받았던 인물들 중에서

"나는 스톡옵션을 받을 때까지 꾸역꾸역 참고 있다가 행사하면 곧바로 퇴사할 거야"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와 못된 놈들, 회사가 지 놀이터인 줄 아나', ' 참으로 가식적인 놈들이네', '회사를 갉아먹는 악질 같은 놈들'이라며 온갖 비난 섞인 말을 했을 것이라 예상할 수도 있겠으나, 


너무나 큰 연민에 빠졌다. 


적어도 이들은 열심히 했다. 자신의 젊음을 회사에 투자했다. 근육과 뼈가 상해서 병원을 가고 싶어도 회사 일을 먼저 생각하느라 병원 가는 시기를 놓쳐 고질 병에 걸린 이도 있었다. 회사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더럽고 추잡하고 비겁한 일들에 뒤섞이느라 멘털이 갈릴대로 갈린 이도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을 내가 옆에서 봐왔고, 또한 어떤 일들은 내가 초래했던 일들도 있었다. 감히, 함부로 이들이 다짐한 이기적인 결심을 나는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이들은 입사하면서 회사가 내건 "확실한 로열티와 업무량에 따른 확실한 보상"에 충분히 부합하는 이들이라고 감히 함부로 말할 수 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이들과 나는 이젠 연락도 하지 않을뿐더러, 회사 안에서 나와 대척점에서 갈등을 빚은 이들도 꽤 된다는 것을 말해둔다.




회사 주식의 노예가 아니라

주주로서 당당히 떠나길




나는 이들이 결코 내가 걸었던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지금도 바란다. 아마 올해 가을 즘이면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이들이 여럿 될 것이다. 버틸 거라면 그때까지 주욱 버티기를 바란다. 이기적이더라도 이들에게 함부로 돌을 던질 수 없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이기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분명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말은 이렇게 하더라도 이들은 적어도 자신들의 앞에 놓인 1인분 만큼은 응당 해낼 이들이다. 여태까지 몇 년간 그들이 해낸 것들에 비하면 적은 것이라 보일 수 있겠지만, 그들이 얻은 권리를 당연히 행사할 수 있는 수준의 정도는 된다고 나는 감히 생각한다. 


"확실한 로열티와 업무량에 따른 확실한 보상"

이 슬로건에 진심이었던 이들에게서 과연 동력을 잃게 한 것은 그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일일까?


회사 주식의 노예라고 누군가가 이들에게 돌을 던진다면, 마땅히 견뎠으면 한다. 돌에 치여서 피가 나고 살갗이 터지고 온몸이 피범벅이 되어도 버티길 바란다. 지나온 시간이 억울해서라도 버티고 또 버텨서, 비로소 합당한 권리를 행사하고 나서 당당히 회사 주식의 노예가 아니라 떳떳한 주주로서 회사를 떠나길 바란다. 




다음 화 쿠키


말해두지만 나는 회사의 편도 아니고 여전히 다니고 있는 회사 직원들의 편도 아니다. 그냥 선을 너무 넘지 않을 정도로 해서 팩트 그대로 발칙함을 약간 첨가해서 말할 뿐이다. 누구를 옹호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자격이 되질 않는다. 


왜 나는 이번 장에서 이리도 회사가 아닌 이들의 편에서 얘기를 했을지 궁금할 것이다. 단순히 업무 강도가 심해서라면 말이라도 않지만, 그것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회사가 일에 몰입하고 성장하려는 성장통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회사는 (그리고 회사 편이었던 나 또한) 진또배기 로열티와 정치질에 능한 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고인 물이 고일대로 고인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버렸다.


이제 그 얘길 발칙하게 꺼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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