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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Jul 08. 2024

그들만의 리그:정치질과 로열티 그 사이 어딘가

회사는 대표의 것이다.

틀린 말이라고? 사업자등록증 봐바라. 거기엔 대표의 이름 말고 그 어느 누구의 이름도 적혀 있지 않다. 회사의 법적 소유주는 대표라는 뜻이다.


법적인 의미 뿐 아니라 회사 구조적으로도 사업적으로도 회사는 대표의 것이다. 회사의 시작, 초기 아이디어, 기획, 실행, 성과, 보상 회사 안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있어서 대표로 시작하지 않는 일이 없다. 애초에 회사를 차리고 싶어한 것도 대표이며, 회사의 방향키를 쥐고 있는 것도 대표이며, 그 방향키를 어디로 향할지 결정하는 것 또한 대표의 몫이다.




권력이란 권위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마땅하다



권력이란 나쁜 것이 아니다. 그 권력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문제인 것이지. 권위를 제대로 갖춘 사람이 한 집단의 권력을 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권위라 함은 남들에게 이미 자신의 능력을 준수하게 증명해냄을 뜻하는 말로서, 말인 즉, 그런 사람이 권력을 가지고 있어야 남들이 납득을 하고 신뢰하며 그 권력에 충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열티란 이런 권위있는 사람의 권력을 따르는 말이다.



내가 다니던 스타트업의 대표는 권위있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목말라 하는 결핍을 깨닫고 그 가능성 하나를 깨닫고 작게 사업을 시작했다. 그의 실행으로 회사에 동료들이 모이고 서비스는 형태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2년, 고난과 성장을 거듭하며 회사는 대표의 주도아래 서비스가 다뤘던 마켓의 독보적인 1등 서비스가 되어 있었다.

 물론 갓 대학을 졸업해 스타트업을 내 삶의 선택지로 염두해본 적이 없던 그당시 나는 대표가 일궈낸 일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관심도 없었으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가 초기에 이뤄낸 업적은 감히 쉬이 말만 내뱉는다고 해낼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서비스를 정식적으로 런칭한지 만 2년이 되던해의 순방문자수가 40만에 가까운 것은 이를 방증하는 수치이다.)


그는 충분히 내가 회사의 로열티를 갖게 만들 수 있는 유능한 대표였다.

한때는 말이다.







한 회사의 대표가 인간으로서 완벽할 필요도 없으며, 인간적 무결점을 기업의 대표에게 바라는 것은 굉장한 넌센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적 결함이 있는 대표를 그냥 순응하고 살아가는 사람 또한 바보같은 짓임을 내가 몸소 겪은 과거를 통해 체득했다. 회사와 대표에 대한 로열티가 넘처나다 보니, 나는 대표의 말에 200% 순응했다. 일을 시키면 그대로 행동으로 옮겼다. 그게 독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른채로.




로열티를 판단하는 기준1.

대표의 게임을 캐리해주는 자



대표는 게임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혼자서 하는 게임 말고 LOL이나 베그처럼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게임을 좋아했다. 당시의 대표의 성향으로 추측을 해봤을 때, 게임이 주는 쾌락 그 자체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뜻 맞는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의 행동대장 격으로 뭘 할지를 정하고 그게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에 굉장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는 게임을 할 줄 아는 직원들을 모아서 팀을 짜고 게임을 했다. 그러면 보통 5~10명이 게임을 같이 하게 된다. 또한, 한 번 게임을 하면 암묵적 룰이 한 가지 있었는데, LoL은 5연승, 배그는 치킨 2회 이상. 즉, 동이 틀 때까지 집에 못간다는 뜻이다.

한창 대표의 말이 곧 법이라 생각하고 이미 대표의 모든 것에 동화되어 마치 대표의 마리오네트나 다름없던 나는(내 사내연애를 커밍아웃한 히스토리도 이쯤이다) 틈만 나면 불려가 게임에 참여했다. 워낙 그 당시 회사에서 노숙을 하던 때가 많아서 크게 불편함은 없었으나, 자꾸만 내 시간의 자유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것을 느낄 뿐만 아니라, 나를 포함한 다른 인원들의 낯빛 또한 너무나 어두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긴건, 대표가 웃고 대표가 재밌다고 하면 다들 따라서 실실 웃고 있었다는 것이다. 게임에 소질도 없고 회사에는 게임을 잘 하는 신입들이 들어오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5인 팟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서서히 게임의 본질은 업무 스트레스 해소에서 대표 개인의 유희와 로열티 검증의 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로열티를 판단하는 기준2.

술자리



대표는 술자리를 좋아했다. 술을 잘 먹지는 못했는데, 회사를 차리고 술자리가 늘어나면서 술을 나름 마실 줄 알게 됐다. 당시 회사에는 술을 좋아하는 인원들이 꽤 있었기에 안성맞춤이었지. 대표는 밖에 나가서 먹어도 될 일을 굳이 회사에 음식과 술을 시키고 주방에서 술을 마셨다. 물론 파티원으로 참여한 인원들은 자의적으로 참여한 인원들이 있었겠지만, 분위기 상 마지 못해 퇴근을 못하고 주방으로 향했거나, 야근할 거리가 많은데도 술잔을 기울이다가 결국 야근을 내일로 미루는 인원들도 있었다.

술자리에서는 시시콜콜한 얘기부터 웃긴 이야기까지 잡다한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회사 이야기가 빠질 수는 없는 노릇. 각자는 술기운이 흥건히 오른 상황에서 그날  있었던 업무 얘기를 꺼냈다.





그들만의 리그

회사 카르텔



아니 뭐, 회사에서 게임 할 수도 있는거고, 대표가 직원들 격려 차원으로 사무실에서 술도 마실수도 있는거다. 인정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술과 게임. 이 두가지 매개체로 카르텔이 형성되고 있었다. 다들 알 것이다. 회사 생활에서 감정적 교류는 유능한 업무 능력 중 하나에 속한다는 것을. 서로간의 우호적이며 깊은 감정이 쌓일 수록 협력을 하는 것도 쉬워지고 큰 갈등으로 번질 일도 작은 불로 끌 수가 있다. 회사에서는 게임과 술이 그러한 매개체의 거의 유일한 역할이었다. 어쩌다보니 게임과 술에 참여하는 인원들은 자연스럽게 대표과 감정적 교감을 지속적으로 쌓게 되었고, 그 외의 인원들은 대표가 일은 하지 않고 직원들을 시켜서 게임이나 하는 인간으로 이미지가 굳혀 가고 있었다. 술자리에 참여하는 인원들이 대표와의 심리적 거리감이 계속가까워질 수록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는 인원들은 혹시나 이러한 자리가 고과에 반영이 되는 것은 아닌지, 술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격려를 해줄 수는 없는 것인지 등 밖으로 대놓고 내뱉지는 못해도 속으로 삭히는 말들이 더욱 더 파급력있게 전파 되었다(이 당시 사내 연애 중이던 여자친구에게서 주로 들었다)




(나는 다행히도 게임에 별로 소질도 없거니와, 통풍이 한창 도져있을 때라서 두 자리 모두 패스할 수 있기도 했고, 굳이 그런자리에 연연하지 않아도 회사 안에서 위치가 그리 눈치보이는 위치도 아니었으며, 업무 자체가 독고다이여서 별 관심도 없었던 때) 게임과 술 이 두가지로 뭉친 인원들은 서서히 그 무리에 반복적으로 참여하는 인원이 일원화 되더니 약 100명의 회사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는 '그들만의 리그', 카르텔이 만들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들만의 리그 안에 속해있지 않은 다른 인원들은 알게 모르게 눈치밥을 먹게 되고, 자연스럽게 소외감이 들수 밖에 없었다.





충신과 십상시는

한끝차이?




대표의 순수한 게임에 대한 열정과 재미 그리고 술자리를 즐기기 위한 단순한 의기투합 모임이 서서히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만들고 있었고, 실제로 이 울타리는 회사의 풍토와 분위기 또한 바꾸어 놨다. 게임과 술자리에 참여한 인원들은 자신들이 속한 팀의 상황과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에 대해서 전혀 객관화가 검증되지 않은 오로지 자신만의 주관이 명확한 사견을 거리낌 없이 날 것 그대로 대표에게 표출했다. 그당시 간간히 술과 게임 자리를 함께한 나였기에 그들이 얼마나 대표와 거리낌이 없어졌고 자신들의 의견을 가감없이 얘기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는지 간헐적 참여를 통해 파악할 수 있었다.

 솔직히 이런 행위들이 악의적인 모습이라고 보기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그들은 술과 게임이라는 자리를 통해서 감정적 교류를 바탕으로 대표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쌓아갈 수 있었고, 남들은 얻지 못하는 자신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특혜도 주어진 것이다. 남들은 대표실에 들어가서 긴장되는 마음으로 똑똑 문을 두드리고 식은 땀 흘리며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는 것도 굉장히 쉽지 않은데 그들은 술과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조건 하나만으로 그동안 대표와의 감정적 거리감을 줄여갈 수 있는 특혜를 입은 것이다.



솔직히 나는 이런 상황을 비판할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나도 그들만의 리그, 대표님이 창립한 리그의 초기 멤버이자 핵심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재직 기간 중 초반이었고 3년 후부터는 게임과 술로 만들어진 자리는 극구 거부한터라 그 뒤론 별 흥미를 느끼진 못했지만)

그리고 실제로 이런 상황으로 인해 피해를 본 인원들도 있었다. 그 당시 회사는 서울과 경기도에 각각 본사와 지사가 있었다. 나는 그당시 지사를 맡아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당연히 내 본부의 인원들은 경기도에서 근무하는 지라 대표가 만든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여러모로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서울로 올라가 그 자리를 참석하는 팀원이 있었는데, 이 팀원이 절대로 일을 못하거나 회사에 로열티가 없던 사람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참석하지 않은 다른 팀원 또한 회사에 로열티를 가지고 열정을 태우는 인원이었다고 확신하는데(퇴사하고 나니 더 확신했다) 그는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그가 본사에 얼굴을 비추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그가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궁금함을 넘어서 대표의 머리 속에는 의구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얘기를 해봐도 소용없었고,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내 팀원의 인사권자인 나는 대표의 팀원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에 동조를 해버리고 말았으며, 그렇게 그는 대표가 만든 본사에서의 자리를 참석하지 못한 것을 시초로 고과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게임은 대표도 흥미를 잃으면서 서서히 그 자리의 빈도도 적어지고 결국엔 흐지부지 되었으나, 술자리는 여전히 빈번했다. 빈번한 술자리에 참석하는 인원들은 1~2명 정도 신기해서 술자리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고정 맴버였다. 우습게도 그들은 대표에게 로열티라는 명목으로 업무적인 평가를 높게 인정 받았고, 대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 오고 있었다.




솔직히 회사에 대한 로열티와 정치질이 팽배한 그들만의 리그 이 두가지를 경계를 규정하는 일은 너무나 복잡하고 상황과 시각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로열티란, 앞서 말한바와 같이 '권위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합당한 권력' 속에서 그 권력이 행사하는 신뢰에 따라 움직이는 힘을 로열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적어도 그 당시 대표가 행한 일련의 모임은 대부분의 직원들에게는 로열티로 충만한 자리가 아니라, 그들만의 리그에서 또 그들만의 수다를 떠들고 은연 중에 회사안에서의 자신의 처신을 살피는 정치질의 장으로 인식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당시 회사는(그리고 대표는) 충분히 회사에 진심어린 로열티를 다 하고 자신의 시간을 고스란히 회사에 투자하는 사람을 선별해낼 줄 아는 총기를 잃고 있었다.



 나 또한 어떤 누군가에게는 그 당시 대표 꽁무니나 쫓아다니고 오로지 회사의 입장만을 대변하며 직원들을 헤아리지 못하는 편향된 사람으로 낙인을 찍혔을 것이 분명하다.

이에 대해서 구차하게 변명 한 마디 하고 가겠다. 나는 적어도 입사 때부터 대표가 보여준 권위적인 모습들, 사업을 성공리에 이끌어가고 누구보다도 깊게 고민하고 그를 통해서 실행하고 또 다시 성공 방정식을 풀어내는 모습에 과몰입한 나머지 주변을 살피지 못하고 오로지 대표의 봇이 되었다. 결코 한심한 게임과 술자리에 참여해서 그 자리에서 우애만 쌓고 그것을 사내 정치적으로 사용하려는 다른 이들과는 엄연히 그 시작이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의 리그의 초기 멤버로서 나 또한 편향된 시야로 사람들을 판단했던 과거는 변함없는 사실이다. 욕 먹어도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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