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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Jul 15. 2024

패배자들의 자위 행위 : 잡플래닛 리뷰 쓰기

"잡플래닛에 글을 올리는 짓은 퇴사한 패배자들이나 하는 자위행위일 뿐이다."



오해말자. 내 전 직장 동료가 내뱉은 말이다.

잡플래닛에 글을 올려본 사람들이 있다면 묻고 싶다. 당신들은 잡플래닛에 글을 올림으로서, 회사에 대한 비난 섞인 의견을 늘어놓는 행위를 함으로서, '자기 위로'를 받았는가? 혹시 수치스러움과 모멸감 따위를 느낀 것은 아닌가? 안타깝게도 나는 당신들이 회사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했든, 누구나가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인 비판글을 적었든 간에 당신들이 왜 그런 글을 적었는지 완벽히 이해하진 못한다. 나는 글을 써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당신들과는 완벽히 대척점에 서 있던 사람으로서, 이른바 그 행위 자체를 혐오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스타트업을 다닌 지 3년째 되던 해에 구성원이 15명 내외에서 50명 정도로 크게 늘었고 그다음 해에 회사는 100여 명으로 더욱 늘어 있었다. 구성원이 100여 명이나 되었다면 당연히 회사의 운영과 방침 그리고 각종 인간관계에 쓸리고 치인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회사에 불만과 아쉬움을 가지고 퇴사한 사람들은 고스란히 자신이 느낀 모든 것을 잡플래닛에 토해내는 경우가 많았다. (모르는 이들을 위해 가볍게 얘기하자면 '잡플랫닛'은 재직 중이든 퇴사 후든 자신이 다녔던 기업에 대해서 리뷰를 하고 평점을 매길 수 있는 서비스이다. 그 당시 회사의 평점은 2.0에 근사했는데 5.0점 만점 중 2.0점이면,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회사의 조직 문화 수준이 꽤나 형편없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된다.)

 그럼 과연 대표를 포함한 소위 회사의 임원들과 그 임원들이 아끼고 이뻐하는 특혜자들, 지난 시간 얘기한 '그들만의 리그'에 결성된 히어로들은 이런 사태를 마주하고 회사와 직원들을 위해서 어떤 신묘한 개선안을 펼쳐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1. 범인 색출 : 변절자를 찾아라



회사 문화를 개선시키기 위한 첫 번째 개선방안으로 (나를 포함한) 회사는 범인을 찾는데 열과 성을 다했다. 이때만큼은 에르큘 포와로, 셜록 홈스 뺨치는 탐정 감각이 발동했는데 특히 대표가 그랬다. 보통 글이 잡플래닛에 올라오면 약 1~2주 전에는 퇴사자가 발생했다. 특히 해당 패턴이 발견되던 시점에 퇴사한 인원들은 보통 '그들만의 리그'에 입성하지 못하고 도태되어 회사 험담을 하거나 혼자서 속앓이를 하던 이들이었다. 대표는 섬세한 초감각을 발동해서 퇴사 시점과 글이 올라온 때, 그리고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던 회사 안에서의 서사를 모두 끄집어내어 정말 그럴싸한 개연성을 부여하여 글쓴이의 신분을 추척하고 추리했다.

 더 소름 돋는 것은 글의 문장구조를 파악하고 단어의 쓰임새까지도 파악하는 이가 있었다. 대부분의 업무는 메신저 to메신저로 소통을 했었기에 모든 대화 기록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데, 퇴사자 각자가 썼던 고유한 문장체나 자주 쓰던 단어까지 분석하는 모습은 CSI 저리 가라였다.



2. '자위행위'라고 자기 세뇌하기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해서 몇 날을 공을 들여 글을 쓴 변절자를 색출한다 하더라도 돌아오는 것은 씁쓸한 뒷맛과 탐정놀이 하느라 온갖 에너지를 소비한 피곤함 뿐이었다. 이미 퇴사한 사람을 추적하고 색출해 봤자 어차피 떠난 사람들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런 부정적인 생각과 에너지를 얼른 게워내려고 노력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 당시 범인 색출 이후 '그들만의 리그'의 구성원들은 최면 기술을 익히기 시작했는데, 바로 이 모든 행위가 '퇴사한 패배자들의 자위 행각'이라는 발상으로 시작되었다. 이 발언은 그 당시 나의 팀 안에 있던 부서원이 했던 말로, 그 당시 나 또한 그 말을 듣고 심각한 자기 최면에 빠져 그 말 그대로를 다른 이들에게 전파하고 있었다. '퇴사 후 울분 섞인 글을 써내는 행위는 회사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부적응자의 특징이다', '결국 회사에서 실력이 뒤떨어져 도태된 자들이 늘여 놓는 푸념에 불과하다.', '그렇게 글이라도 써야 연민에 덜 빠지고 자기를 위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등, 오만한 최면을 서로에게 걸어대기 시작했다.



3. 글 삭제, 칭찬글 지시하기



엄청난 최면에 사로잡힌 이후, '그들만의 리그'는 더 이상 리뷰가 올라오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미 최면에 심각히 빠져있던 상태인지라, 어떤 리뷰이든 간에 X소리로 들릴 일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인원들을 채용하기 위해서는 잡플래닛의 평점은 꽤나 중요한 요소였기에(지원하려는 사람들 대부분이 잡플래닛 리뷰를 참고하기 때문) 그냥 방치만 해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회사는 즉각 원색적인 비난 글은 잡플래닛에 신고해서 리뷰를 지웠다. 그리고 재직 중인 인원들에게 부탁해 회사의 긍정적인 내용을 리뷰하는 글을 올리도록 했다. 솔직히 이 때는 나도 좀 부끄러웠는데, 리뷰가 여러 개 지워진 후 바로 긍정적인 리뷰가, 그것도 "재직 중"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는 채로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보고서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4. 낙인찍기, 회사판 부관참시


범인도 찾고 글도 지웠겠다, 이제 남은 일은 회사의 흔적에서 그들을 지워내거나 부정하는 일만 남았다. 글을 지웠어도 이미 여러 직원이 글을 본 이후일 것이며, 회사에 뜬소문이 여럿 퍼진 이후였고, 새로 온 직원들도 지워진 글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던 때였다.

 '그들만의 리그'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회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과거 그들(리뷰를 쓴 사람들)과의 서사를 늘어놓고 해명하고 자신들을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뿌린 대로 거둔다고 하던가. 그들만의 리그의 골수 일원이었던 나 또한, 퇴사 이후 위와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 물론 나는 잡플래닛에 글을 올리는 행위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기에 리뷰를 적지는 않았지만, 내가 회사를 나가고 난 후 내가 5년 간 회사 안에서 쌓아왔던 과거의 행동들과 서사가 '그들만의 리그'에 의해서 재가공되고 찢기는 부관참시를 당했다.(그 당시 재직했던 동료에게 들은 얘기다)





위선자들의 원색적인 비난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솔직히 잡플래닛에 글을 올린 모든 이가 회사의 행태에 상처받고 떠난 피해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회사를 나온 직후 나의 실패와 과오를 되돌아보아도 결국 빌런은 존재했다(물론 나도 빌런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아무리 되짚어봐도 그들은 피해자 코스프레에 능한 위선자일 뿐이다.




종이에 떨어진 잉크를 지우려다가는



종이에 잉크가 한 방울 묻었다고 해서 그 잉크를 지우려고 별 짓 다하고 애써봐도 더 번지기만 하고 종이가 찢어질 뿐이다. 종이에 떨어진 잉크를 수습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휴지로 꾹꾹 눌러 최대한 얼룩이 번지는 것을 최소화하는 일뿐이다.

 퇴사자가 원색적인 비난글을 올리고 그 글을 지우는 행위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회사도 회사의 억울함이 있을 것이고 사실이 아닌 일에 대해서는 정당하게 삭제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퇴사자의 행위에 '패배자의 자위행위'라는 말부터, 회사가 옳고 퇴사자는 틀렸다는 의견을 고수하며 퇴사 이후에도 회사 안에서 고통이 잔존하게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리뷰를 올린 이들 중에서는 회사의 안녕을 위해서 진심을 담아 리뷰를 담은 이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들까지도 깡그리 변절자 취급을 받고 퇴사 후 회사 안에서 부관참시를 당하듯 험담 거리가 되어 마땅한 것인가?

 최근 나를 변절자 취급하고 부관참시한 주요 인사들이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통쾌함보다는 참담하고 씁쓸한 마음이 쓴 가래와 함께 튀어나왔다. 이렇게 '그들만의 리그'의 일원들조차도 버림받을 수 있는 악순환이 반복되면, 결국 마지막 퇴사자는 회사 그 자체가 될 일만 남은 것 아닐까?




쿠키


그럼 다음 여러 장에선 왜 퇴사자들이(위선자들 빼고) 자신이 추적당할 것을 충분히 알면서도 잡플래닛에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주요한 몇 가지 사건들을 다뤄보도록 하겠다.

업무 중 당신의 PC 카톡은 안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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