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했을 때 내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있는데 그건 바로 '나는 영어에 있어서는 바보 멍청이다'라는 것이다. 애초에 대학 시절 영어 때문에 각종 비웃음, 무시(무시라고 쓰고 멸시라고 읽는다), 동정 등을 다 겪어왔기 때문에 영어에 있어 자신감이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도 했다. 내가 청강했던 수업에서 교수님께서는 '미국 중학생 정도만 쓰면 정말 잘 쓴 것이다. 그걸 목표로 해라'라고 강조하셨는데 나는 정말 그 마음으로 공부했다. 혹시나 이 글을 보고 갸웃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마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간단하게 모던 패밀리 시즌1에 등장하는 알렉스와 자기의 영어실력을 비교해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영어를 공부하는 것은 모르는 것을 채워나가는 과정인데 영어는 실로 방대하다. 대부분의 경우 높은 곳만 바라보면서 어려운 지문을 읽는 것이 자랑거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를 읽으면서 쉬운 말도 영어로 뱉지 못하는 건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또 나는 내가 얼마나 기초가 부족한지 잘 알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지금까지 살면서 수능 지문, 문제집만 봐 왔지 쉬운 글, 간단한 글은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하다못해 그 쉬운 영어 애니메이션도 자막으로만 봤다. 한국말을 주고 영어로 해보라고 하면 절대 못할 걸 알고 있었다. 거꾸로 기초를 채우려고 하는 것. 이것은 주변의 많은 통대 준비생, 통대생, 통대 교수님도 추천하는 방법이었다. 한국 외대 통역대학원 입시 설명회에 참여했을 때 재학생이 '통대 입시에 실패해서 재수를 했을 때 오히려 어린이 책을 많이 봤다'라고 하자 그 말에 교수님께서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하셨던 것도 감명 깊었다. 또 어차피 나는 영어 무식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겸허한 마음으로 쉬운 텍스트를 암기하는 것을 자존심 상해하지 않았다. 스터디 파트너와는 실제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나 초등학생 수준의 쉬운 텍스트를 통암기 하기도 했다.
이 마음가짐의 좋은 점은 공부할 때 토를 달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왜?'라는 질문도 중요할 때가 있지만 영어공부는 결국 암기와 반복작업이 다라서 그냥 원어민이 그렇다면 그런가 보다 하고 쿨하게 넘어가게 되었다. 공부를 하다 보면 한 가지 말이라도 여러 가지 표현이 다 사용될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 내 것과 다르면 '뭐야 내 것도 맞으니까 필요 없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아 원어민은 이런 식의 표현을 사용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암기하려고 노력했다. 별다른 스트레스 없이 무념무상으로 편하게 공부할 수 있었던 이유였던 것 같다.
또 확실하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무조건 짚고 넘어가게 되었다. 아무리 쉬운 단어나 표현이라고 할지라도 '대충 무슨 말인지 알아'가 아니라 내가 확실히 알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머뭇대면 '아 이건 내가 모르는 거구나'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찾아보고 확인했다. 이렇게 쉬운 단어를 왜 정리하고 밑줄을 긋는지 이해를 못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쉬운 단어나 표현을 정리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그 버릇은 지금도 마찬가지라서 공부할 때 아무리 아는 것, 쉬운 것이 나와도 다시 한번 밑줄을 긋고 다시 한번 정리해서 더 완벽하게 숙지하려고 노력한다. 강의 중 핸드아웃을 주면서 '과제로 여기서 좋은 콜로케이션과 표현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오세요'라고 했더니 다음 수업 때 밑줄이 드문드문 그어져 있는 걸 보고 식겁한 적이 있는데 그때에도 내가 평소에 들고 다니는 공부 자료를 보여주면서 지금의 나도 이렇게 빽빽하게 줄을 긋는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강의를 하면서 가장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생각하는 방법도 바로 어린이용 쉬운 책을 가지고 진행하는 것이었다. 적당한 인문학 주제에 간단하면서도 짧고 명료한 글로 이루어진 교재로 철저하게 공부를 시켰을 때 효과가 가장 좋았다. 또 공부하면서 나도 같이 배웠다.
영어를 잘한다고 자랑스러워할 것도, 못한다고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영어를 할 때면 훈수 두는 사람이 정말 많다는 것도, 쉬운 글을 보면 무시하고 복잡한 글을 보면 추켜세우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어느 분야가 그렇듯 기본 없이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김세연 한영 MC·아나운서
국제회의 통역사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용과 흐름을 정확히 이해하고 전달하는 한영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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