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찾고 싶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통역대학원 입시를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찾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제대로 된 영어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반대로 내가 왜 영어를 못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게 된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한국의 교육제도에서는 '영어는 언어'라는 인식이 부족하다. 마치 수학공식을 푸는 것처럼 영어에 접근한다. 법칙을 알려주고 그 법칙만 외우면 적용할 수 있는 것처럼. 단어를 암기하고 그 단어를 문법에 맞게 배치하면 되는 것처럼. 사실 대학 생활 내내 내가 스스로 작성한 과제도 이 접근법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어로 작성하고 단어 단어마다 네이버 사전에서 검색해서 짜 맞추고 간단한 문법(3인칭 단수에는 s를 붙이면 된다거나)만 체크하고 제출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글을 채점해야 했던 교수님도 고역이셨을 것이다.
하지만 영어는 언어이기에 이런 식의 접근법은 안 된다. 외국인이 쓰는 말을 써야 하기 때문에 문법상 맞아 보이더라도 외국인이 '이런 식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아무도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라고 하면 틀린 것이다. 안타깝게도 아무도 이 간단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들의 말을 그냥 그대로 흡수해서 사용하면 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훈련이 전혀 되고 있지 않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내가 다니던 중고등학교 수업을 떠올려보면 영어 지문에 밑줄을 긋고 화살표나 괄호를 치고 끊어 읽기 표시를 잔뜩 했다. 마치 암호해독처럼.
또 그저 영어 지문을 보고 객관식 답만 맞추면 그만이기에 '읽고 대충 이런 내용이려니'하면 그만이었다. '한국어로 이런 표현을 영어로는 이렇게 쓰는구나'가 아니라 '이게 대체 무슨 말이지? 아 대충 이런 말인가 보다'하는 식이었다.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답을 맞히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문법 문제의 경우는 읽지 않아도 기계적으로 풀도록 훈련을 받았다. 수능 시험에서는 정해진 시간 내에 모든 문제를 풀고 실수는 없었는지 다시 한번 처음부터 점검도 해야 해서 혼자 공부할 때도 시간 내에 오답 없이 마치는 연습을 많이 했다. 설상가상으로 좋은 지문도 아니었거니와 단어책도 도대체 왜 외웠는지 모를(나는 왜 그렇게 열심히 외웠는가) 단어가 가득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단어 암기 방식도 정말 '단어만' 따로, 또 방대한 양을 단시간에 암기하기 때문에 그 단어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단어와 함께 사용되는지, 발음은 어떤지 전혀 중요치 않았다.
시험은 모두 영한이고 단어 시험도 보고 무슨 뜻인지만 알면 되었다. 결국 나의 경우 한국어에서 영어로 치환하는 훈련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영어로 글을 제대로 써 보거나 말을 해본 것도 대학에 와서 처음 해 봤으니 말이다. 아웃풋을 내야 하는데 그 아웃풋을 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셈이다.
요는 영어는 언어라는 사실을 언제나 잊지 않으면서 영어로 아웃풋을 낼 수 있도록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웃풋이라 함은 영어로 말하고 쓰는 것을 의미한다(사족이지만 말하고 쓰기는 크게 멀리 있지 않다. 말을 입으로 뱉으면 말이고 글로 쓰면 쓰기일 뿐이다). 여기에 포커스를 두고 공부를 시작하면 다른 것들은 자동으로 따라온다. 문법적으로 틀린 말을 쓰면 안 되니 문법도 더욱 실용적으로 익히게 되고 내가 말을 할 줄 아니 다른 사람의 말과 글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영어는 회화, 글쓰기, 독해, 문법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언어'이다. 독해만 잘하는데 회화는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더 상세하게 설명할 예정이다).
개인적으로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 공부할 때만 해도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슬프지만 이런 식으로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집을 짓는 것과도 같았다. 정말 처음부터 다시 하나하나 쌓아가야 했다. 너무 아득하게 느껴져서 목표조차 세울 수가 없었다. 그저 하루 종일 공부를 하고 년 단위로 돌아봤을 때 '아 이제 조금 나아졌나?'싶은 정도였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하게 믿고 있는 것은 그나마 이 길이 가장 빨랐다는 것이다. 공부를 하면서, 또 일을 하면서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름길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하지만 돌아보면 결국 시간 낭비만 하고 길을 돌아돌아 갔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어떠한 노력을 들여야 하는지만 알아도 잘못된 길에서 올바른 길로 빠르게 들어설 수 있다.
김세연 한영 MC·아나운서
국제회의 통역사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용과 흐름을 정확히 이해하고 전달하는 한영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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