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외대 특강에서도 강조한 부분인데,
국제회의통역사는 무조건 공부 좋아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
통상 국제회의통역사라고 하면 해외 체류 경험이 있는 사람이겠거니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현장에서 한국인, 외국인 가리지 않고
'어디 살다 오셨어요?'
'Where did you learn English?'라는 질문을 매번 받는다.
하지만 해외체류 경험은 통역사에게 필수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현장에서 만난 실력파 동료 통역사들 가운데에는 해외 경험이 고작 1-2년이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많았다.
10년 이상의 해외 경험을 자랑하기에 내심 두근두근하며 통역을 들었더니 '대체 이게 뭐지?'싶었던 실망스럽고 난감한 경험도 아주, 아주, 아주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영어와 한국어 능력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고 그 외에 플러스알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학습 능력.'
통역사의 공부량은 실로 살벌하다.
현장에서 프리랜서 국제회의통역사로 활동하다 보면 통번역대학원에서의 공부는 공부라고 칠 수도 없을 정도이다.
보통 이런 식이다.
월요일 통역 행사 주제는 배터리 산업, 화요일부터 수요일 행사 주제는 원자력, 목요일은 의학, 금요일은 IT.
이렇게 써 보니 말도 안 되는 극악의 난이도지만 특히 성수기에는 이런 스케줄이 빈번하다.
특정 분야를 우연히 많이 통역하게 되는 경우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통역사는 모든 분야를 다 망라하여 통역한다. 일을 골라 받을 수 없다.
각 분야마다 세부 주제도 다양하고 깊이 있게 들어가면 내용도 어마어마하다 보니 결국 통역사에게 공부란 피할 수 없는 숙제이다.
콘퍼런스 참여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콘퍼런스, 세미나, 포럼 등은 결국 각 분야에서 권위 있는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 지식을 발표 및 토론하는 시간이다. 청중으로서 단순히 내용을 듣고 이해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거기에 한국어, 영어로 즉시 동시통역 할 수 있는 능력까지 단시간에 마련하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
행사 전날, 혹은 행사 당일에 자료가 주어지는 경우도 매우 빈번하다.
통역사들이 '자료 볼 시간이 없다'며 울상인 건 예사다.
한 발표당 50페이지가 넘어가는 PPT 파일이 기본이다.
하루 종일 동시통역을 진행하고 퇴근 후 바닥난 체력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자료를 공부한 뒤 관련 용어를 한국어와 영어로 정리하여 암기하고 모르는 개념과 내용은 모두 검색해 가며 이해가 될 때까지 파고들 수 있는 능력.
기본적으로 '공부를 해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다.
소위 엉덩이가 무거운, 성실하고 끈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한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명석한 두뇌나 천재적인 공부 재능은 없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좋아했던 아주 특이한 사람이기 때문.
그래서 자신이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직업을 적극 추천한다.
평생 공부할 자신이 없다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직업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공부를 한다.
김세연 한영 MC·아나운서
국제회의 통역사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용과 흐름을 정확히 이해하고 전달하는 한영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섭외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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