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는데


며칠 전 오랜 친구를 만났다.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더 좋았던 그런 친구였다.

친구는 현재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강의와 연구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편안한 운동화에 백팩, 어떻게 하면 연구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친구를 보며 '나도 저런 삶을 살고 싶었는데' 싶어져 마음 한구석이 저릿했다.


처음 국제회의통역사를 꿈꿨던 시절, 내 머릿속에는 온통 어떻게 하면 통역을 더 잘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뿐이었다. 대학 시절 잔뜩 외모를 치장하던 것에서 벗어나 그저 수수한 복장으로 하루를 공부로 가득 채우는 게 즐거웠다. 계속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살이 15킬로 넘게 불어났지만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만큼 통역이 재밌었고 통역 실력을 높여 업계에서 인정받는 통역사가 되고 싶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업계 현실은 내 생각과는 달랐다.

결국 보여지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실력은 형편없으면서 그저 꾸미는 것, 마케팅에만 치중해 일을 따내는 동료를 보면 화도 났다.

내가 더 잘하면, 지금보다 더 실력이 뛰어나게 되면 그때는 어느 정도의 '정의구현'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더 집착적으로 공부에 매달렸다.

그럴수록 더 슬픈 현실에 마주하게 되었다.

아무리 공부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실력의 벽이 존재한다는 걸.

세상에는 내가 감히 비교할 수도 없는 천재적인 실력자들이 존재했다.

결국 나는 이도저도 아닌 그저 한 명의 평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비정한 현실을 어느 정도 수용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사실은 속이 아주 많이 시끄러웠다.

못 견딜 정도로 분노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이것밖에 안 되는 스스로에게 실망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좋은 점을 어떻게든 찾아보자면,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배운 점도 많았다.

국제회의통역사란 무엇인가, 영어 아나운서란 무엇인가, 고객사가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이란 무엇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했다.

행사에 임하는 성실한 자세, 친절함, 분위기를 부드럽게 조성할 수 있는 능력, 보여지는 전문성, 신뢰감 있는 톤 앤 매너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극소수의 예외적인 천재를 제외하고, 실력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결국 인정하게 되었다.

국제회의통역사, 아나운서로서의 '내 퍼포먼스' 보다는 '행사의 성공'을 우선순위에 두고 판단하게 되었다.


뭐 어쨌든 배운 점은 배운 점이고, 슬프지만 한동안은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을 떠올리며 씁쓸해할 것 같다.


나와 같은 고민으로 마음이 복잡할 누군가에게 공감과 위로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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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연 한영 MC·아나운서
국제회의 통역사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용과 흐름을 정확히 이해하고 전달하는 한영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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