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건물, 솟아나는 몸들

이 도시의 생활자들

by 냐하

2025. 09. 24 초고

무너지는 건물, 솟아나는 몸들


자정이 넘은 시간, 번화가를 걷는다. 불이 켜진 건물들은 한 블록에 두세 개뿐이었다. 임대 플랜카드조차 붙지 않은, 벽까지 들어낸 건물들이 계속 계속 이어진다. 이 거리가 보다 휘황했던 시기를 기억한다. 그때 나는 이 층에 위치한 언더그라운드 클럽에서 놀았다. 가파르고 굴곡진 계단을 오르내리며 넘어질 것을 염려하지 않았다. 거리가 반짝거리는 만큼 나의 마음도 부풀었고 그곳에 걱정의 자리는 없었다.

어느 밤, 정신을 차리니 나는 엎드려 있었다. 앞니가 뻐근했다. 마스크가 흠뻑 젖을 정도로 피를 흘렸다. 계단에 엎어진 채 옴싹달싹 못하는 나를 일으키던 손, 나를 태운 구급차, 파상풍 주사, 퉁퉁 부은 얼굴. 넘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말했다. 그 거리의 건물들은 전부 오래되어 계단도 가파르고 위험하지. 그 이후로 몇 년간 나는 클럽에 가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 거리도 내게서 멀어졌다.



친구가 연 서점은 인적이 드문 오래된 주택가에 위치했다. 서점 중앙에 몹시 높은 계단이 하나 있다. 혼자서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높이다. 그곳에 갈 때마다 서점의 주인인 친구 혹은 서점에 들른 다른 친구들의 도움을 통해서만 나는 계단을 올라갈 수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소지품을 들어 주는 것, 내가 넘어지지 않도록 팔을 붙잡는 것. 나는 한 번도 그 서점에서 넘어지지 않았다.

서점을 준비하던 중 친구는 내게 전화를 걸었다. 경사로를 마련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막상 가 보니 경사로를 설치하기 애매해 보였다. 단차가 상당해서 경사로를 설치한다면 경사로가 꽤 길어질 것 같았다. 동선에 방해가 되어 친구를 비롯한 손님들이 오히려 경사로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이동할 때마다 울퉁불퉁한 도로, 어디에나 있는 턱이나 계단을 불평했다. 그들은 내 이야기를 들어 주고 같은 문제 의식을 가졌다. 모든 곳에 배리어프리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그러나 경사로를 설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은 한동안 베리어프리를 주구장창 외치는 나를 잠시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공간을 점유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금전일 것이다. 어떤 공간을 상상할 때 사람들은 좋은 위치의 좋은 시설을 차지하고 싶어 한다. 새로 지어진 건물은 대부분 엘리베이터와 휠체어 경사로가 있다. 그리고 비싸다. 새로운 건물이 지닌 편리는 그만큼 돈을 지불해야 가질 수 있다.

높은 임대료와 소비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신식 건물은 특정한 계층만이 머무는 장소로 바뀐다. 편리하고 안전한 건물 중 내가 갈 만한 곳은 병원이나 약국이다. 빈자와 불구는 자본과 의료 시스템이 이중으로 구현된 건물에 잠시 들르고 금세 밀려난다.

실제로 내가 다니는 병원 중 한 곳은 다양한 병원과 학원,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이 층층이 들어선 건물에 위치했다. 주기적으로 병원을 갈 때마다 어린아이들과 마주치는데 그들은 내 걸음걸이를 몇 번이나 쳐다본다. 불구인 몸, 이상한 걸음이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건강하거나 젊거나 중산층 이상이거나 혹은 그 전부를 가진 사람들은 이런 건물이 익숙할지 모르겠다. 반면 친구의 서점이 있는 동네, 언더그라운드 클럽이 있는 동네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그곳에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지 않는다. 노후한 건물을 방치하거나 그대로 사용한다. 대부분의 행인은 노인이고, 도로는 조금도 붐비지 않는다. 클럽이 있는 번화가는 주말 자정 즈음이면 젊은이들이 오가지만 그 외에는 무척 한적하다.



신식 건물과 오래된 건물, 둘 중 어떤 곳도 내게 온전하게 편안한 장소는 아니다. 모든 몸을 환대하는 것처럼 보이는 신식 건물은 높은 임대료와 소비 비용 등 자본의 문턱을 세운다. 안전하고 편리한 건물은 결국 건강하거나 젊거나 자본이 있는 몸을 불러들이고 그렇지 못한 몸은 바깥으로 밀려난다.

오래된 건물에서 모두를 환대하고 싶은 사람들은 내게 미안하다고 한다. 계단을 이야기하며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그들은 나를 업고 안고 손을 잡아 준다. 나는 아직 모든 건물을 그렇게나마 드나들 수 있지만, 그 손길이 도시의 구조를 바꾸는 것은 아니다.

도시는 계속해서 자본의 방향으로 몸을 부풀린다. 새 건물이 들어서고 쇼핑몰이 자리 잡는다. 그 자리에 있던 몸과 역사는 사라지고 흩어진다. 종연방적 전남 공장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거대한 쇼핑몰은 여성 노동자의 몸이 있던 자리를 지워내고, 자본의 거대한 몸뚱이를 대신 세운다. 반짝이는 쇼핑몰은 단차 없이 환대하는 듯 보이지만, 그 환대는 금전을 조건으로 한 허망한 환대일 뿐이다. 한때 번화했던 상가가 뼈대만 남아 쓸쓸히 서 있는 풍경이 보여주듯, 그 반짝임은 오래가지 않는다.

도시는 어떤 몸도 있는 그대로 껴안지 않는다. 지금 당장 건강하고 금전을 지불할 수 있는 젊은, 아주 잠깐일 수도 있는 인간 생애의 한 순간만을 섭취한다. 도시가 뱉어낸 인간은 더 이상 도시에 있을 수 없다. 사리지는 역사와 함께 철거 된다.


모두를 위한 건물은 아직 없을 것이다. 적어도 평지에서도 쉽게 넘어지는 나에게 편안하기만 한 건물은 없다. 그러나 내가 넘어지지 않도록 손을 내밀고, 업어주고, 붙드는 손은 어떤 건물이든 발을 딛게 해 준다. 베리어프리가 당연한 도시가 되기를 바라지만, 낡은 건물을 모조리 허물고 새로 세우는 것만이 답은 아닐 것이다.

나는 도시를 믿지 않는다. 대신 생활자의 손과 품을 믿는다. 언젠가 그들이 모두를 환대하는 공간을, 사라진 역사를 함께 품으며 세울 것이라 믿는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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