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통감부는 정미 7조약 체결 이후, 대한제국의 실권을 장악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군대 해산을 진행했습니다. 이를 위해 8월 1일, 훈련원에서 해산식을 거행하기로 했지요.
그러나 1연대 1대대장 박승환 참령이 군대해산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권총을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자신들의 지휘관의 모습을 본 병사들은 이에 격분하여 무기고를 습격 후 무장, 일본군과 교전하기 시작했습니다.
1연대의 봉기는 인접한 2연대까지 들불처럼 퍼져나갔고, 이후 남대문 인근에서 대한제국군 2개 대대가 일본군과 아침 09시 경부터 교전하면서, 이른바 남대문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대한제국군은 분투하였고, 숫적 우세를 바탕으로 일본군과 대등하게 교전하였습니다. 그러나 교전이 지속될수록 탄약이 부족해졌으며, 남대문 2층의 문루에 일본군 기관총이 설치되어 대한제국군을 내려다보며 제압사격을 가하면서, 점차 전세는 기울고 말았습니다.
결국 대한제국군의 병영으로 일본군이 진입해 들어오면서 대세는 기울었고, 수백명의 대한제국군은 서울 밖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하여 정미의병에 참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