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의도와 그 협상카드는?
1. 북한 협상전략의 특징 : 일관성
앞서의 글들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이러한 핵위기와 핵협상의 굴레 속에서, 북한이 보여준 협상전략은 어떠하였으며 그로 이난 북한의 주도적인 협상력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여러 가지 논문들을 통해 알아본 바, 북한의 협상전략은 어떠한 정형화된 틀이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정형화된 틀을 알아보기에 앞서서, 북한이 이러한 틀을 가진, 그리고 가질 수 있는 이유를 북한 내부 체제의 특수성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한/미 양국은 민주주의 국가로서, 국가의 행정수반과 통수권자를 각국의 헌법이 정한바의 임기마다 공정한 투료를 통해 선출하고 있다. 또한 입법부인 의회에서도 국민의 투표에 따라 권력을 위임받은 의원들이 여당과 야당으로 나뉘어 치열한 정책논쟁을 벌이는 민주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특성으로 말미암아, 좌파와 우파 간에 정권이 교체되거나, 의회 제1당이 바뀌는 등 국내 정치상황에 따라서 북한의 핵문제에 대한 접근법이 달라지는 한계점이 분명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의 제네바 합의등의 유화책들이, 뒤이은 공화당 부시 행정부에서의 강경책으로 인하여 다시 갈등국면으로 빠지게 되었고, 혹여 같은 민주당이라고 하더라도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 등, 결심권자의 성향에 따라 對북한 외교정책이 일관성 없이 변경되고 말았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좌/우가 정권을 주고받으면서 북한에 대한 국가전략적 차원의 일관성을 잃어버리고, 그때그때의 대증요법 수준의 대북정책으로 장기적인 비전을 가져가지 못했다.
그에 반해, 북한은 공고한 일인 독재체제, 개인숭배, 강력한 통제력 발휘를 통해 지도자의 결심이 즉각 정책적인 비전으로 숭배되고 일관성 있게 추진되어 왔으며, 특히 6자 회담의 막판뒤집기는 향간에서 '김정일의 외교적 한판승'이라고 회자될 정도로 주요 당사국들 사이에서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데 성공했다. 이렇듯 북한은 전략적 차원에서는 일관성을 유지하고, 전술적 차원에서는 카멜레온처럼 강경책과 유화책을 섞어 쓰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신들의 '예측불가능성'마저도 무기화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공산권 특유의 “혁명”에 대한 전투적 사상으로, “협상”이라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법 자체가 서방세계와는 다르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공산권에서 협상이란 다른 방법으로 수행하는 또 다른 혁명이자 전투이며, 승리해야만 하는 대상인 것이다. 이는 서로 의견을 조율하고 상호신뢰, 양보를 바탕으로 하는 서방세계의 “협상”이라는 개념과는 매우 다른, 전사(戰士)적 사고방식을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
2. 북한의 협상전략의 또 다른 특성들
그렇다면 북한이 지난 북핵 협상에서 보여준 협상 전략들은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첫째, 북한은 위기를 일부러 조장하고, 자신들로 인해 발현된 그 위기에 대해 초강수로 정면돌파를 하는 방식으로 협상의 주도권을 교묘히 장악하는,“정면돌파 전략”을 구사한다. 6자 회담 이후 BDA에 대한 자산동결 제재를 미국이 해제하지 않자, 공식적인 핵무기 보유선언을 공표함으로써 비록‘트러블메이커’이지만 자신의 발언 하나로 동북아시아의 균형을 흔들어놓는 대범함을 보이고 있다. 특히, 자신들의 현재의 난관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하다고 판단될 때 정면돌파를 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둘째, 북한은 자신들의 역량이 부족하거나 현재의 구도가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되면 “무행동 전략”을 취함으로써 상황타개를 노린다. 이는 회피, 혹은 무응답으로서 회담을 지연/결렬시킴으로써 불리한 주도권을 다시 자신에게로 가져오고, 향후 회담에서의 발언권을 증대시키는 의도로 파악된다. 즉, 상대방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함으로써 양보를 얻거나 자신의 주장을 소극적으로 관철시키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6자 회담의 무기한 불참 이후 약 1년간의 협상 중단을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구도를 조성한 것이 그 예라고 볼 수 있다.
셋째, 북한은 한미양국의 반응과 행동에 대해 자신도 동일하게 대응하는 “맞대응 전략”을 구사한다. 2차 북핵 위기 당시,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시인 스캔들이 벌어지자 미국은 약속했던 중유공급을 중지, 북한을 압박한다. 이에 북한은 강하게 반발하면서 핵시설을 전면적으로 재가동시키는 것으로 응수했다.
3. 핵협상에서의 북한의 의도
그렇다면 북한은 이러한 협상전략을 통하여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첫째로, 제일 먼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은 그 무엇보다도 미국에 체제의 안전보장을 받는 것을 제1순위로 하고 있다. 계속 이어졌던 각종 회담에서도, 북한은 미국에 불가침조약 및 북미수교 등, 자신들의 체제를 인정하고 안전을 보장하는 것을 가장 큰 지상과업으로 판단하고 있다.
둘째,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북한이 이러한 전략적 일관성과 전술적 다양성의 협상전략을 사용한 것은, 핵무기의 실질적인 완성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즉, 국제사회의 핵사찰 내지는 각종 검증절차를 지연시키거나 종국에는 거부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북한에게는 필요했고, 협상과 결렬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주도권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시간까지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인다.
셋째, 북한은 핵무기 카드를 이용하여 경제적 및 물리적 지원을 받으려 했다고 보인다. 북한은 핵동결을 대가로 경수로 및 중유 등의 지원을 요구했던 바 있으며, 궁극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미국이 과연 경제지원을 해줄것이가’하는 의구심에 대한 믿음의 결여를 보충할 수 있는 매혹적인 수단이었음에 틀림없다.
넷째, 북미 간 대화에서 6자 회담으로 당사국이 늘어난 이후에는, 6자 회담을 빌미로 하여 역내의 안보문제 해결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핵무기 보유를 통해서 제지받을 수 있는 국제사회의 각종 제재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또한 당사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동북아의 6개국이라는 점에서, 협상의 지지부진함을 이용하였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4. 결 론
정리하자면, 북한의 최종목표는 결국 체제보장, 그리고 그렇게 보장된 체제 안에서의 경제적 자립. 2가지의 목표에 대한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북한은 핵동결 부분에서도 미국이 제시한 ‘민수용의 전력생산용 원자력 시설 포함 모두 폐지’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고, 핵동결 이후에도 사찰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전력공급을 위한 민수용 핵 프로그램”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에너지자원으로서의 원자력 사용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임을 표방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북한은 세대교체 시기, 핵실험 등의 초강수를 두거나 위기를 조성하는 식으로 내부결속을 다짐과 동시에 체제승계를 노리는 등의 방식을 써왔다. 김정일이 80년대부터 핵 프로그램의 총괄을 맡아 활약했다는 점, 그리고 김일성의 건강이 악화된 93년 즈음엔 1차 핵 위기가 붉어졌다는 점, 김정은 체제하에서의 지속적인 핵실험과 탄도탄 발사등도 이에 전혀 연관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의 다른 점은 바로 중국의 스탠드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중국은 막 개혁개방을 시작하며, 미국의 우호적인 정책에 힘입어 무역국가로의 비상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즉 동북아시아의 안보적 균형이 중국의 국익과 일치했으나, 현재의 중국은 미국과의 패권경쟁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고 있어 북핵문제에 있어 예전과 같은 스탠스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국제정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도 정권교체와는 상관없이 일관되고 연속성 있는, 추동력을 잃지 않는 지속가능한 대북/안보정책을 수립, 추진해야 하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