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는 빵빵했는데?
최근 한 '역사 스토리텔러'님의 유튜브 방송을 보고 난 뒤, 갑자기 삘(?)을 받아서 쓰게 된 글. 같은 이름의 지역명을 딴 영화 '덩케르크(dunkirk)'로 유명한 사건이기도 하고, 관련 근거를 찾다가 짧은 글로 정리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 비판글이 아닌, 역사글이니 안심하십시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프랑스군과 영국군은 독일군 기갑부대의 예상치 못한 기동으로 갑작스럽게 무너졌고, 독일군은 이 기세를 살려 대서양 앞바다까지 기갑부대를 전진시킴으로써 수십만 명의 연합군을 덩케르크 주변의 해안지역으로 몰아붙이는 데 성공했다. 영화 <덩케르크>는 이 포위망 안에 갇힌 연합군 병사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천천히 조여 오는 독일군에 대한 공포와 살아남은 자들의 살기 위한 노력이 국면별로 진행되는, 꽤나 재밌게 볼 수 있는 수작이다.
덩케르크의 주요 배경이 되는 사건은 다음과 같다. 1940년 5월 10일(여담이지만, 내 생일이다) 새벽 5시 35분경 개시된 독일의 '프랑스 침공작전'으로, 이때 독일군은 과감한 기동으로 프랑스군 진지를 유린한 뒤, 프랑스군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더 깊숙이 전진하면서 그들을 포위망으로 가둬버린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프랑스군은 작전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완전히 무너졌으며 이러한 패배의식은 영화 중에서도 병사들의 무기력함으로 잘 드러난다. 특히 독일군의 급강하 폭격기인 Ju 87, 슈투카(Stuka)의 공포스러운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독일군의 폭격은 마치 독일군의 존재는 자연재해와도 같이 거대하고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이 묘사한다. 이렇듯 포위망에 집결한 잔존병들은 그저 살기 위해 홍수를 만난 쥐떼들처럼 모여있을 뿐,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는 묘사가 주를 이룬다.
독일군의 입장에서는 이대로 진격하여 수십만 명을 포로로 잡거나 살상한다면, 향후 전쟁에서 연합군에게 굉장히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2차 세계대전에서 큰 의문점 중인 하나인 "독일군의 정지 명령"이 내려오게 되면서 독일군은 진군을 멈춘다. 영국은 이 틈을 타 군함과 민간어선까지 징발하여 포위망 안의 병사들을 구출해 오는 '다이나모 작전'을 성공시키면서 반격의 불씨를 살리는 데 성공하고야 만다.
그렇다면 독일군에게 대체 갑자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정지하라고 명령했을까?
물론, 독일군 중에서 연료가 부족해서 정지한 전차나 부대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연료부족은 없었다"는 명제는, 작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전술적 차원의 큰 범주에서만 해당된다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전격전의 전설(Blitzkrieg - Legende)』는 독일 연방군 대령인 칼 하인츠 프리저의 역작으로, "전격전"이라는 개념이 연합군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라는 점을 여러 가지 사료를 들면서 찬찬히 반박해 나가는 매우 훌륭한 역작이다. 특히 독일군이 작전수행 전/중/후로 남겼던 방대한 1차 사료를 엮어내어 프랑스 침공의 전체 역사를 다각도로 조망한다는 점에서 밀덕에게는 반드시 읽어봐야 할 필독서나 다름없다.
지난번 글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사실 독일군의 정지는 연료부족 때문이 아니었다. 전격전의 전설 제4장 2절, '유류'부분의 서술을 한 번 살펴보자.
※ 칼 하인츠 프리저(진중근 역),『전격전의 전설(Blitzkrieg - Legende)』, 일조각(2016), pp. 181 ~ 182
"제1기갑사단의 작전처 벵크 소령에게 부여된 임무는 부대 이동 시간을 철저히 엄수하는 것이었다. 즉, 유류 재보급 때문에 기동을 중지할 시간이 없었다. 킬만스에크는 이를 '드럼통 보급'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이 문제를 해소했다.
필수적인 연료량을 정확히 산출한 후, 국경까지 가는 기동로에 100km마다 계획된 전술적 휴식 장소에 연료를 가득 채운 드럼통을 준비해 두고, 추가적으로 연료 드럼통이 적재된 다수의 화물차량들을 전위부대에 배치했다. 전차 승무원들은 적절한 위치에서 속도를 줄인 후 드럼통을 전차에 실었다. 그리고 다음 휴식지점에서 유류를 보충하고 빈 드럼통은 기동 간 계획된 지점에 던져버리기만 하면 연료 재보급이 완료되었다...(중략)... 빈 드럼통은 다음 유류저장고에서 다시 채워졌다. 모든 차량들이 유류를 가득 채운 상태로 아르덴을 통과할 수 있었고, 재급유를 위해 부대가 중지하는 경우도 발생하지 않았다.
마스 강에서 도버 해협까지 진격할 때는 예상보다 너무 빨리 나아가는 바람에 불가피하게 유류를 항공기로 수송하는 사례도 있었다...(중략)... 어떤 날에는 하루 400톤의 연료가 공중으로 보급되기도 했다."
저자는 또한 군수지원 파트를 정리하면서, "일반적으로 군수지원 계통은 불상사가 발생했을 경우에만 연구의 주요 주제가 된다. 그러나 서부전역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라고 요약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로 독일군의 연료 보급체계는 매우 훌륭했고, 대다수 작전에서 연료로 인한 작전 실패는 없었다. 두 번째, 이 계획한 범위의 연료보충 체계가 (너무 빠른 진격속도등의 이유로) 실현 불가능할 시, 공군의 항공기를 활용한 유류 보급까지 이루어질 정도로 유류 보급 계획에 굉장히 신경을 썼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담, 독일군이 대체 왜 정지했던 것이냐는 본래의 질문으로 되돌아오자. 전장에서 벌어진 "현상"그 자체는, 독일군이 전진을 멈췄고, 이로 인해 연합군이 호흡을 가다듬고 대규모의 구출작전을 벌여 성공했다는 점이다. 독일군이 이 포위망에 대한 공격을 멈춘 이유는 다양하게 분석, 연구되고 있는데 가장 대중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너무 빠른 진격속도 때문이었다. 지난 1차 세계대전의 전쟁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버린 기동 전의 전진 속도는, 그것에 철저하게 분쇄되는 프랑스군에게만큼이나 그것을 실행하고 있는 독일군에게도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룬트슈테트를 비롯한 할더 등 독일군 수뇌부의 주요 지휘관들은 너무 빠른 진격속도에 당황했고, 너무 깊숙이 적진으로 뛰어들면 곧바로 연합군의 역습이 오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프랑스군의 역습은 없었고, 너무 쉬운 전진이 계속되자 "혹시...?" 하는 걱정이 지휘부를 덮쳤던 것이다.
여기에 더불어, 영국군이 벌인 '아라스' 지역에서의 역습도 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프랑스군이 왜인지 모르게 역습명령을 취소해 버린 것과는 다르게, 영국군은 소규모였지만 매우 강렬한 역습을 펼쳐 롬멜의 7 기갑사단을 박살 낼 뻔했다. 롬멜은 이 전투에서 대공포인 88mm 포까지 동원하면서 겨우 영국군의 역습을 막아냈고, 비록 이 역습은 실패했지만 독일군 수뇌부에게 "거봐! 역습 있을 거라니까!" 하는 걱정을 현실로 만들어준 악몽이었다.
둘째, 독일 공군의 최고지휘권자인 '헤르만 괴링(herman Goering)'의 호언장담이 있었다. 육/해군에 대해 항상 대립각을 세워오던 괴링은, 전쟁사에 길이 남을 눈부신 성과를 거두는 육군에 대한 견제를 할 필요가 있었다. 괴링은 히틀러에게 공군만으로 포위망에 있는 연합군을 분쇄하겠다고 객기를 부렸고, 향후 전쟁에서 기갑부대를 아껴 보존해야 했던 히틀러의 의도와 맞아떨어지면서 기갑부대들이 일제히 정지하거나 되돌아갔던 것이다.
약간은 거칠게, 아주 쉽게 표현해 보자면....
결론 : 독일군이 덩케르크에서 멈춘 것은 연료 때문이 아닌, 너무 빠른 진격속도에 스스로 졸아버렸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글을 쓰면서 느낀 점은, 어떤 사실에 반박하거나 논박하기 위해서는 그 사실이 매우 작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방대한 양의 자료와 공부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이래서, 역사로 먹고살고 싶다는 나의 소망이 얼마나 무겁고 어려운 길인지를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