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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휘찬 Mar 25. 2024

지나가는 사람의 무례함 - 자기도 모르게 벌어지는.

숨 쉬는듯한 무례가 빈번한 사회

  예전 어느 휴일엔 가에, 연인과 함께 서울 명동으로 놀러 나갔던 적이 있었다. 연말연시의 풍기는 분위기도 그렇거니와, 특히 주말이라는 점 때문이었는지 명동은 외국인 관광객과 한국인들의 콜라보를 벌이면서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인파를 자랑했다. 


  맛집이나 카페에서 자리를 잡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그래도 식당의 경우, 웨이팅 시스템이 되어있어 줄을 서고 식사를 하는데 크게 무리는 없었지만, 카페가 문제였다. 보통 거의 모든 카페의 자리는 자유석이기 때문에 줄을 설 수도 없어, 운 좋은 사람이 먼저 찜콩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야기가 조금 새었는데, 사건은 의외로 카페가 아닌 식당에서 일어났다. 정확하게는 식당 안에서가 아니라 웨이팅을 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와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당시 유명하다는 명동교자의 칼국수를 먹기 위해서 줄을 섰는데, 사람이 너무 몰려 줄은 거의 옆옆 빌딩을 넘어서서 거의 두 블록을 더 가서까지 이어졌다. 오죽하면 명동교자에서 웨이팅 줄을 관리하는 전담 직원이 있을 정도였으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연인과 함께 줄을 서고 있는 동안, 줄을 서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거의 10번 가까이 나에게 질문했다. 


"여기가 무슨 줄이에요?"

"여기가 칼국수 줄이에요?"


  그렇다고 대답하면, 어떤 사람은 허허 웃으면서 '다음에 먹어야겠다'며 자리를 뜨고, 또 어떤 사람은 기가 차서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매우 무례하게도, '무슨 산해진미를 먹겠다고 이렇게 줄들을 서서는...'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산해진미'라는 이야기는, "으휴 뭔 산해진미를 먹겠다고 줄을 섰대? 진짜 웃긴다 그렇지?" 라며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수없이도 들었다.


 나를 비롯한 수십 명의 사람들은, 마치 인민재판의 한가운데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산해진미형'을 당하는 듯한 기분을 계속해서 느껴야만 했다. 추운 겨울날, 더 추운 것은 내 감정이었다.



  아니 내가 내 돈 내고 먹겠다는데, 누구를 불편하게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말들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일행끼리 서로 속닥이면서 흉을 보는 것을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리고 또 나라고 단 한 번도 "저렇게까지 줄을 서서 먹어야 해?"라는 마음을 어떻게 살면서 단 한 번도 안 내보였겠는가.


  그런데 그걸 자기들만의 이야기도 아니고, 백주대낮에 많은 사람들이 크게 들릴 정도로 "햐~ 줄 선거 봐라 ㅋㅋㅋ 무슨 산해진미 먹겠다고 저러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의 지능을 의심케 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건 차라리 '지들끼리'의 이야기니까 그렇다고 치자. 


  나한테 "이게 무슨 줄이냐"라고 묻고 나서, 그 '산해진미' 좀 먹어보겠다고 줄 서고 있는 사람 앞 면전에다 대놓고 '뭔 산해진미....' 드립을 치는 것은 예의나 지능을 떠나서, 아예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하는 궁금증까지 생길 정도였다.


  단 하루 만에 겪은 일이라고 하기엔, 정말 우리 사회가 이 정도밖에 안되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세대나 성별을 문제로 치부할 수는 없는 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참 그 연령대도 다양했다. 나와 함께 줄을 선 사람들도 투덜댈 정도였으니, 그 산해진미 마녀사냥의 정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남에게 좀 관심을 덜 갖는 게, 그리고 조금 예의를 가지는 게 어떨까?



추운 겨울날, 따뜻한 칼국수를 먹으면서 생각했다.



나라고 좋은 사람이라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어. 그러니까, 나부터도 관심을 줄이고 그 자리에 예의를 채우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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