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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휘찬 Mar 19. 2024

역사 스토리텔러? 역사의 의미와 그 가벼움에 대하여

역사에 대한 가벼움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

역사적 사실과 재미, 그 사이의 어딘가에서.


  역사, 그중에서도 마이너 한 전쟁사를 전공하고 연구하는 길을 택한 나로서는, 최근의 역사 열풍(?)에 나름 반가운 마음이 아예 없었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의 이야기가 TV나 유튜브에서 나올 때는 반드시 찾아본다고 할 정도로 열의를 가지고 달려드는 특유의 지적호기심도 발동하는 날엔, 하루종일 전쟁사만 찾아보다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날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어느 한 역사 유튜브를 보게 되었다. '역사 스토리텔러'라고 자신을 소개하신 그분은, 2차 세계대전의 대략적인 흐름을, 패널들과 함께 나와 재미있는 이야기 형식으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굉장히 흥미로운 전개를 해나가셨다. 이러한 역사의 '이야기化'에 대해서, 나는 개인적으로 매우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학자들의 학술적인 내용들로만 역사학이 이어진다면, 그것만큼 참혹하고 황폐화된 학문은 없지 않을까! 아무튼...


  그러나, 이내 나의 마음은 조금씩 복잡해졌는데,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프랑스를 침공할 때의 일화를 그분이 소개할 때였다. 실제 역사에서 영/프 연합군을 덩케르크 인근으로 밀어붙인 독일군 기갑부대는, 갑자기 전진을 멈추는 의문점을 남겼다. 이에 대해서는 "기갑부대의 정지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이는 당시 독일 공군의 호언장담, 그리고 아라스 역습에서 보여준 영국군의 용기가 함께 작용하면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덩케르크 해안에서 자신들을 구하러 올 함선을 기다리는 영/프 연합군의 병사들의 모습. 1940년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서 촬영.

  그런데 그분은 독일군 갑자기 멈춰 선 이유에 대해서 "기름이 부족해서 멈췄다"라고 평한 뒤, (물론, 더 뒤쪽에서 독일군 내부의 복잡한 사정들이 있었다는 점은 언급하시긴 했지만) 이후 "기름이 보급되자 프랑스는 항복했다"라는 논조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사실 히틀러의 의도 부분도 설명이 더 있지만... 글이 길어질까 생략!)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한 지명인 덩케르크(dunkirk)덩케르'트'라고 발음했다가 패널의 이야기에 다급히 "덩케르크!"X2라고 말하는 것은 덤이었다.




  사실, 수천 대의 전차가 기동 하는 대규모 침공작전에서 "연료부족"으로 기동이 불가능해진 전차, 혹은 부대가 아예 없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주된"이유 그 자체를 연료 부족으로, 그리고 그 연료부족이 해소되자 바로 프랑스가 항복한 것으로 논지를 펴는 것은, 역사학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무책임한 행태가 아닌가 싶다.

프랑스 침공 당시 아르덴느 숲을 돌파하는 독일군 기갑부대의 모습으로 잘 알려진 사진. 비록 예상치 못한 가장 큰 적, 교통체증(?)과 맞닥뜨렸지만, 침공 자체는 완전히 성공했다.

  실제로 프랑스 침공 당시 독일군은 철저하게 연료를 계산했었고, 드럼통을 미리 기갑부대의 진로에 배치해 두고, 전차가 이를 활용해 연료보충을 하는 계획을 제대로 세워놓았다. 심지어 이렇게 기갑부대가 보충 이후 버리고 간 드럼통을 회수, 다시 연료를 채워 전방으로 추진보급하는 계획까지 있었을 정도이다. 물론 독일군 일부부대가 벨기에 방면을 돌파한 이후 연료가 부족한 상황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것은 벨기에 군의 요새지대를 돌파하면서 벌어진 극심한 기동 때문이었지, 그것이 전체 전황을 바꿀 만큼 준비미흡의 문제는 전혀 아니었다.

※ 참고 : 칼 하인츠 프리저의 <전격전의 전설(Blitzkrieg-Legende)> 제4장 2절 P. 181 中

  "... (중략)... 부여된 임무는 부대 이동 시간을 철저히 엄수하는 것이었다. 즉, 유류 재보급 때문에 기동을 중지할 시간이 없었다. 킬만스에크는 이를 '드럼통 보급'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이 문제를 해소했다....(중략)...이러한 방식으로 두 가지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었다."

  "모든 차량들이 유류를 가득 채운 상태로 아르덴을 통과할 수 있었고, 재급유를 위해 부대가 중지하는 경우도 발생하지 않았다(Kielmansegg, "Bemerkungen", pp.152 ~ 153)...(중략)...진격할 때는 예상보다 너무 빨리 나아가는 바람에 불가피하게 유류를 항공기로 수송하는 사례도 있었다."




  물론, 방구석 키보드 워리어처럼, 그리고 내가 아는 것만 나오면 아는 척하고 싶은 벌떡증 환자처럼, 날짜나 아주 세세한 수치를 틀린 것을 지적하면서 내 지적허영심을 채우고 싶은 것은 전혀 아니다. 아무 그렇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들고 와서 진짜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중들에게 매우 책임감 없는 행동이다.


  단행본을 쓸 만큼 역사학, 특히나 역사의 '스토리텔링'으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 이전에 수많은 세밀한 자료조사와 그것에 대한 여러 논점의 해석들을 복합적으로 뒤섞어 공부하고, 어떤 성향의 사람이 질문하더라도 "이러이러한 의견도 있습니다!"하고 방향성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바로 <꼬꼬무>, 즉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다. 패널들이 나와 정말 편안하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대중성과 흥미를 모두 잡았고, 그 이야기 중간중간에 여러 가지 각종 자료들과 실제 화면, 녹취록 등을 등장시키면서 그 자료에 대한 신뢰성까지 다잡아낸 웰메이드 프로그램이다. 특히, 10.26 사태 등에선 심지어 당시 궁정동 안가를 재현한 건축모형까지 가져오는 노력까지 기울이기도 했다. (광고 아님)


  적어도, 역사 스토리텔러라면 이 정도의 준비와 자료조사, 그리고 공부가 있어야 한다. 나도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역사 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업로드를 위한 콘텐츠 편집만큼이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바로 자료조사와 공부였다.


  그런 의미에서, 갑자기 '스토리텔러'라는 명칭(?)에 대해 더욱 부정적인 생각이 커져만 나갔던 요즘이었다. 전문성에 대한 지적이 나오면, "나는 역사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것뿐!"이라고 말하는 거 같아서.



역사를 아주 재미있게 배우는 것과, 단순히 "역사를 재밌게" 하는 것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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