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만의 수족관: 말이 산소를 잃어갈 때

더 이상 온기를 주지 못하는 말들의 냄새에 대하여

by 나리솔


둘만의 수족관: 말이 산소를 잃어갈 때


더 이상 온기를 주지 못하는 말들의 냄새에 대하여



우리 관계의 소통에는 퀴퀴한 고인 물 냄새가 배어들었습니다. 우리의 말들은 더 이상 자유롭게 날아다니지 못하고, 마치 비좁은 유리 어항에 갇힌 물고기처럼 꼬리를 흔들 뿐입니다. 그 움직임으로 꺼져가는 기억을 되살리려는 듯 발버둥 치지만, 의미 없는 노력일 뿐입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만, 이 고백들은 물고기 비늘처럼 미끄러워서 아무런 위안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말을 하려는’ 모든 시도는 물을 더 탁하고 더럽게 만들어 숨 쉬기 어렵게 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진심을 보이려 애쓰지만, 그 진심마저 갯벌의 진흙 냄새를 풍깁니다.

당신의 얼굴을 봅니다. 돌처럼 굳어버린 표정. 더 이상 살아있는 표정의 변화는 없고, 그저 내 안의 두려움이 일그러져 비칠 뿐입니다. 당신이 "그냥 이야기 좀 해요, 다 같이 논의해 봐요"라고 말할 때, 그 말에서는 온기가 느껴지는 대신 비좁은 사육장의 냄새가 풍깁니다. 그것은 부자유에 익숙해진 존재, 친밀함을 한 우리 안에 갇히는 것과 혼동하는 존재의 목소리 같습니다. 관계 속에서 ‘보이지 않는 벽’을 느끼고 ‘대화의 부재’로 괴로워하셨던 것처럼, 이러한 소통의 단절은 깊은 외로움을 낳는 것 같아요.

우리의 일상은 의미들의 기묘한 재배열로 변질되었습니다. 나는 식탁을 책상처럼 사용하며 구원 계획을 세우거나, 우리의 퇴보를 기록하려 애씁니다. 당신은 책상을 식탁처럼 사용하며 아이디어가 태어나야 할 그곳에서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의자를 함께 사용하며 번갈아 앉습니다. 마치 텅 빈 극장에서 같은 역할을 연기하는 두 명의 배우처럼 말이죠. 형식적으로는 대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자리는 바꿔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 의식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 '물고기 비린내' 같은 냄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비싼 레스토랑으로 도피하려 합니다. 그곳의 인위적인 인테리어 향기 속에서 구원을 찾으며, 값비싼 향수와 진귀한 요리의 냄새가 우리 내면의 퀴퀴함을 지워주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머리 위에서 흔들리는 화려한 샹들리에를 바라봅니다. 그것은 마치 가짜 행복을 가득 실은 거대한 유리 수레 같습니다. 음식, 향수, 타인의 삶이 뒤섞인 이 냄새의 혼돈 속에서, 우리 자신의 냄새는 더 이상 구분할 수 없게 됩니다. 어떤 이름으로도 정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변 환경에 그저 흉내 낼뿐, 샹들리에의 빛처럼 인위적인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이제 기이하고 섬뜩한 물고기들과 같아졌습니다. 계속 숨은 쉬지만, 매번 들이쉬는 숨결은 불행의 무겁고 특이한 냄새만을 증폭시킬 뿐입니다. 우리 공동의 수족관 바닥에는 '물에 젖은 사전'이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공동의 상처, 말들, 그리고 약속들로 축축하게 부풀어 오른 거대한 책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버릴 수 없습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한 쌍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축축한 페이지들을 넘기고, 사전은 점점 더 무거워집니다.

우리는 멈춰 섰어야 했습니다. 이 공간으로 뛰어들기 전에 좀 더 주저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늦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 투명하고 차가운 감옥 안에 있습니다. 유리 너머로 서로를 바라보며, 산소 한 방울이라도 잡으려는 듯 입을 크게 벌리지만, 삼키는 것은 여전히 탁하고 쓰디쓴 물 뿐입니다. 우리는 애원과 피로에 지쳐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라고 착각했던 침묵 속에서 질식해 가는 두 존재입니다.


에세이의 주요 의미:

이 에세이는 의사소통의 위기와 친밀감의 퇴화를 그립니다. '수족관'이라는 은유는 생명력을 잃고 형태만 남은, 폐쇄적이고 인위적인 공간을 상징합니다.

* **진실을 나타내는 냄새:** 말과 달리 냄새는 위조할 수 없습니다. '수족관 냄새'는 관계의 정체를 상징합니다. 관계가 발전하기를 멈추고 '상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잘못된 소통:** "이야기 좀 하자"는 말은 더 이상 문제 해결의 열쇠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육장(피트)'의 일부, 즉 강제적인 공존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말들은 상황을 명확하게 하기보다, 오히려 물을 '흐릿하고 탁하게' 만듭니다.
* **일상의 단절:** 식탁과 의자에 대한 은유는 같은 공간에 있어도 사람들이 각기 다른 리듬과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번갈아' 자리를 바꾸지만, 서로 교차하지는 않습니다.
* **미학으로의 도피 시도:** 비싼 레스토랑에 가는 것은 외적인 화려함으로 내면의 차가움을 위장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러나 에세이는 '인테리어 향기'가 영혼을 치유하지 못함을 지적합니다.
* **짐이 되는 사전:** '물에 젖은 사전'은 쌓여 있는 소통의 경험을 나타냅니다. 이는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무거운 짐이 됩니다.
* **마지막 이미지:** 이 에세이의 절정은 비극적인 순간입니다. 사람들은 서로의 고통을 보면서도('헐떡이며 괴로워하는') 같은 환경에 갇혀 도울 수 없습니다. 스스로가 바로 그 고인 물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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