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방향을 잃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그 무늬를 읽지 못할 뿐이다. 오늘의 나는 제자리를 돌며 서성인다. 머리맡 탁자 위에 포개둔 노트와 펜, 멈춘 알람, 반쯤 마신 물컵. 어질러진 것들은 나의 속도를 닮았다. 무엇을 먼저 붙들어야 할지 모를 때, 나는 가장 작은 것부터 어루만진다. 먼지를 털고, 접힌 페이지를 펴고, 차가운 물을 한 모금 마신다. 그렇게 사소한 질서가 생기면, 마음은 한 칸 느슨해진다.
사람은 종종 오답을 품은 채 살아간다. 그러나 오답도 우리를 데려다주는 길이 있다. 돌아가다 보니 보이는 풍경이 있고, 느리게 가다 보니 들리는 목소리가 있다. 혼란은 실패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혼란은 아직 말해지지 않은 문장, 다 쓰지 못한 편지, 저 멀리서 다가오는 계절 같은 것이다. 손을 내밀면, 바람처럼 스쳐가지만, 스쳐간 뒤에야 창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나에게 묻는다. 오늘의 나를 견디게 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누군가의 짧은 안부, 길가에 핀 늦은 수국, 찻잔의 얕은 온기, 그리고 고요 속에서 조금씩 또렷해지는 숨. 정답은 늘 멀리 있지 않았다. 가까운 것들을 쓰다듬을 때, 나는 내가 되돌아오는 소리를 들었다. 이 소리는 미약하지만, 단단했다. 매일의 균열을 지나며 우리는 배우게 된다. 금간 자리로 빛이 들어온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느리게 걸으려 한다. 속도를 잃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발밑의 길을 기억하기 위해서. 혼란의 계절이 끝나지 않아도 괜찮다. 끝나지 않음 속에서도, 우리는 충분히 앞으로 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