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는 강함의 기록이다

무너진 것이 아니라 가득 찬 것뿐, 이제는 나 자신에게 '그만해도 된다'

by 나리솔


피로는 강함의 기록이다



무너진 것이 아니라 가득 찬 것뿐, 이제는 나 자신에게 '그만해도 된다'는 허락이 필요한 시간.



​우리는 흔히 지침과 소진을 나약함의 증거로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지침은 왜 약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오래, 그리고 묵묵히 버텨온 사람에게만 찾아오는가. 피로는 결코 갑자기 찾아오는 재난이 아니다. 그것은 소리 없이 쌓이는 겨울의 눈과 같다. 한 송이의 눈은 무게가 없으나, 그것이 수백만 번 쌓이면 거대한 산의 능선을 무너뜨리는 라벨란슈(Avalanche)가 된다.


지침은 결코 나약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만큼 오래 강했기 때문에 생기는, 우리 영혼이 몸에 새긴 훈장이다.


​대부분의 강한 사람들은 기댈 곳이 없어도 계속해서 버티는 법을 먼저 배운다. "멈출 수 없다"는 책임감 때문에 늘 자신의 필요를 가장 뒤로 미루고, 당장 살아내기 위해 요동치는 감정들을 서랍 깊숙이 접어두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피로가 된다. 소진(Burn-out)은 기계의 고장이 아니라, 그동안 얼마나 많은 짐을 지고 쉬지 않고 걸어왔는지에 대한 정직한 기억이다.


약한 사람은 진작에 무너져 내렸을 길을, 강한 사람은 너무 오래, 때로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까지 걸어왔을 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피로는 단순한 육체적 고단함을 넘어 아무것에도 반응하지 않는 무감각의 상태가 된다.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이 나지 않고, 좋은 소식에도 기쁨이 일지 않는 이 침묵의 상태는 마음이 메말라서가 아니다. 더 이상 무언가를 느끼고 수용할 '자리'가 남아 있지 않을 만큼 이미 가득 차버렸기 때문이다.


마음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일시적으로 전원을 차단한 상태, 이것은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외심을 가지고 인정받아야 할 신호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다시 힘을 내라"라고, "할 수 있다"라고 채찍질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일어설 에너지가 아니라, 이제는 짐을 내려놓아도 된다는 단호하고도 따뜻한 허락이다. 자신이 얼마나 유능했는지,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인지 증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던 그 손에 힘을 빼는 것. 역설적이게도 아직 더 할 수 있다는 증명을 멈추는 그 지점이, 잃어버렸던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유일한 길이 된다.


​강함이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피로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느끼는 그 깊은 무력감은 당신이 그만큼 치열하게 세상을 지켜왔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이제는 그 무거운 갑옷을 벗어도 된다. 갑옷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당신이 약해져서가 아니라, 그 갑옷이 당신의 여정을 이미 충분히 완수했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휴식을 허락하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위한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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