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 나 자신의 민낯을 직면하는 용기에 대하여
이해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 나 자신의 민낯을 직면하는 용기에 대하여.
우리는 흔히 세상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될 때 어른이 된다고 믿는다. 복잡한 인간관계를 파악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수긍하며, 타인의 실수에 너그러워지는 것. 하지만 진정한 성장은 '머리로 깨닫는 순간'이 아니라, '입술 끝에 맴도는 변명을 삼키는 순간'에 비로소 시작된다. 내가 나 자신에게 들려주던 감미로운 거짓말들, 즉 환상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그 지독한 고요의 순간 말이다.
변명은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입는 가장 따뜻한 외투다. "환경이 좋지 않아서", "누군가 나를 도와주지 않아서", "그때는 어쩔 수 없어서"라는 말들은 우리를 당장의 죄책감과 자괴감으로부터 구해준다. 하지만 그 외투는 우리를 따뜻하게 할 뿐, 결코 성장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서 우리의 의지는 서서히 퇴화한다. 변명은 우리가 직면해야 할 날카로운 진실로부터 우리를 격리시키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내가 했던 모든 말이 사실은 나를 방어하기 위한 서사였음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나는 이해하고 있어"라고 말하면서 정작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환상은 산산조각 난다. 그 파편 사이로 드러나는 것은 다름 아닌 '나의 책임'이다. 이제는 상황을 탓할 수도, 타인을 원망할 수도 없는 텅 빈 방에 홀로 남겨진 기분. 이것이 바로 어른이 마주해야 할 첫 번째 적막이다.
이해는 지식의 영역이지만, 변명을 멈추는 것은 의지의 영역이다. 우리는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스트레스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을 멈추기 전까지는 변화하지 않는다. 타인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상처받기 싫다"는 변명을 내려놓기 전까지는 진정한 관계 속으로 발을 내딛지 못한다. 결국 성장이란, 나 자신을 설득하던 그 정교한 논리들을 하나씩 무너뜨리는 과정이다.
변명을 멈춘 자리에는 깊은 슬픔과 함께 묘한 해방감이 찾아온다. 더 이상 완벽한 척할 필요도,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려고 애쓸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나의 선택이었고, 나의 책임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삶에 대한 주권을 되찾는다. 비록 그 삶이 초라하고 아픈 구석이 있을지라도, 남의 핑계를 대며 사는 화려한 가짜보다는 나 자신의 진실한 민낯이 더 단단한 힘을 갖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환상이 사라진 자리를 책임이라는 벽돌로 채워가는 과정이다. 이제 더 이상 세상을 원망하는 데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대신 그 에너지를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선택들에 쏟아붓는다. 환상이 멈춘 지점, 변명이 사라진 그 삭막한 땅에서 비로소 우리의 진짜 인생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환상이 부서진 자리는 차갑지만, 그 위에서만 나만의 진짜 성이 지어진다."- 나리솔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