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우리는 보통 ‘용기’를 큰 장면에서 찾는다. 무대 위에서의 결단, 떠나보내는 작별, 모두 앞에 서서 하는 고백 같은 것들. 하지만 일상을 오래 살아보면 안다. 진짜 용기는 거대한 순간보다 작은 선택에서 자란다는 걸. 이를테면 오늘의 나를 미워하지 않는 일,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일, 지친 하루에도 따뜻한 물로 손을 씻고 잠깐 숨을 고르는 일. 아무도 박수치지 않지만, 그런 선택들이 마음의 방향을 바꾼다.
우리는 자주 ‘빨리’를 칭찬한다. 빨리 배우고, 빨리 잊고, 빨리 회복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다. 그런데 마음은 늘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3일이 필요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3달이 필요하다. 중요한 건 속도를 맞추는 게 아니라 나에게 맞는 박자를 찾는 일이다. 남의 템포에 맞추다 보면, 잘 가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크게 뒤뚱거린다. 그래서 나는 요즘 나만의 속도를 기록한다. 아침에 일어나 물 한 잔 마시기, 낮에 창밖 3분 바라보기, 잠들기 전 오늘 나를 칭찬 한 줄 쓰기. 이 세 가지를 지키면, 하루가 망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느리지만 꾸준한 박자는 결국 멀리 간다.
비교는 늘 가까이에 있다. 타인의 시간표, 타인의 직함, 타인의 웃는 얼굴. 그 앞에서 우리는 종종 초조해진다. 그럴 때 나를 붙잡아 주는 문장이 있다. “나는 내 자리를 하고 있다.” 지금의 내가 감당하는 작은 일들—설거지, 이메일 회신, 짧은 산책, 진심 어린 안부—이 사소해 보이지만, 이 모든 게 내 삶의 간판을 만든다. 간판은 화려하지 않아도 된다. 지나가는 내가 알아보고, ‘여기는 안전해’라고 느끼면 충분하다.
가끔은 실수도 한다. 늦잠을 자고, 약속을 미루고, 중요한 말을 제때 하지 못한다. 그럴 때 필요한 건 자기비난이 아니라 회복의 루틴이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다음에 더 정확히 하겠다는 약속을 작게 세우고, 실제로 지키는 일. 용기는 완벽에서 오지 않는다. 다시 시도할 수 있게 해 주는 습관에서 온다. 습관이 마음의 근육을 만든다.
관계에서도 용기는 조용하다. 상대의 침묵을 견디는 힘, 설명을 강요하지 않는 배려, “준비되면 말해줘” 같은 문장을 건네는 여유. 우리는 서로의 속도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좋은 간격을 유지하며 기다릴 수는 있다. 그 간격에서 신뢰가 자란다. 꼭 붙잡지 않아도 끊어지지 않는 사이, 자주 확인하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 이건 요란한 이벤트보다 훨씬 오래 간다.
저녁이 되면 하루의 성과 대신 하루의 다정함을 기록해 본다. 오늘 웃었던 순간 하나, 나를 지켜준 문장 하나, 고마운 사람 한 명. 이 세 가지가 있으면 괜찮다. 큰일을 못 했어도 마음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렇게 조금씩, 어제보다 단정하고 다정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 움직임을 나는 용기라고 부르고 싶다.
결국 삶은 속도가 아니라 리듬의 문제다. 넘어지면 쉬고, 힘이 나면 한 걸음 더 가는 리듬. 비교 대신 호흡, 성과 대신 지속, 완벽 대신 진심. 오늘의 우리는 완벽할 필요가 없다. 충분히 성실하면 된다. 그리고 그 성실은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작은 선택의 반복으로 만들어진다.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그게 느리게 커지는 용기다. 우리, 그 용기를 계속 키워보자. 아주 작은 것부터—지금 숨을 한 번 깊게 쉬는 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