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가까움이 늘 선은 아니다. 어떤 우정은 한 발 물러선 자리에서 더 오래 숨을 쉰다. 우리는 매일 연락하지 않지만, 사라진 게 아니라 잠시 말의 불을 낮춘 것뿐이다. 서로의 일정에 끼어들지 않고, 필요할 때만 문을 두드리는 예의. 그런 간격은 차갑기보다 단정하다. 마음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할 때 도착하는 작은 등불처럼 남아 있다.
예전엔 우정이란 자주 만나고 길게 대화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다.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빈도의 많음이 아니라 호흡의 맞춤이라는 것을. 각자의 삶이 복잡해질수록, 우리는 덜 묻고 더 믿게 된다. 설명이 없을 때도 오해하지 않는 태도, 늦은 답장 뒤에 숨은 사정을 굳이 캐묻지 않는 배려. 이 무해한 신뢰가 관계를 오래 가게 만든다.
거리를 둔 우정은 신호를 크게 보내지 않는다. 대신 조용한 정확함이 있다. 생일에 한 줄, 힘들다는 말 뒤에 도착하는 “여기 있어” 같은 짧은 문장. 거창한 위로 대신 필요한 만큼의 온기. 그 절제가 우리를 지킨다. 서로에게 기대지 않지만, 기대면 버틸 수 있다는 확신. 자주 보지 않아도 어긋나지 않는 이유는, 함께했던 시간의 결이 이미 우리 사이에 무늬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미묘한 서운함이 스친다. 덜 친해진 걸까, 멀어진 걸까. 그럴 때 마음을 서둘러 판단하지 않기로 한다. 우정은 계절을 가진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어떤 때는 무성하고, 어떤 때는 쉬어간다. 쉬어가는 시간은 실패가 아니라 준비다. 말이 줄어든 만큼 상대의 삶을 존중하고, 나의 삶을 돌본다. 그리고 뜻밖의 어느 날,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마치 마지막 대화가 어제였던 것처럼.
우리는 각자의 리듬으로 성장한다. 누군가는 빠르게, 누군가는 멀리 돌아서. 거리를 둔 우정은 그 리듬을 방해하지 않는다. 대신 자리를 지킨다. 필요할 때 찾아갈 수 있는 좌표로 남는 일. 연락처를 지우지 않고, 마음속 지도에서 표시를 지우지 않는 일. 이 좌표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은 덜 불안해진다.
중요한 건 끝내지 않는 태도다. 서운함을 쌓아 멀어지는 대신, 여백을 남겨 다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것. “바쁠 땐 답장 늦어도 돼”, “보고 싶을 때 보자” 같은 문장들이 다리가 된다. 이 다리는 얇지만 견딘다. 서로의 무게를 계산하며, 무리하지 않는 방식으로.
거리를 둔 우정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시끄럽지 않지만 꾸준하고, 소유하지 않지만 지켜본다. 나는 이 우정을 믿고 싶다. 오래된 책갈피처럼, 필요한 페이지를 다시 펼칠 때, 그 자리에 조용히 서 있는 표시. 우리가 더 성숙해진다는 건, 가까움만이 진심의 증거가 아님을 아는 일일 테니까. 그래서 오늘도 마음의 불을 낮춰두되, 꺼지지 않게 지킨다. 언젠가 너에게 필요한 밤에, 이 작은 불빛이 길잡이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