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속의 절망 - 6 화
눈에 손전등 불빛을 비추는 절차는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병원에 있는 것 자체도 내겐 큰 위안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지 제대로 기억나지도 않았다.
몽롱한 상태로 차 안에서 꾸벅꾸벅 졸기만 했던 것 같다.
단 한 가지 분명히 기억나는 건, 도윤이 운전대를 꽉 잡은 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조심스럽게 운전하며, 틈만 나면 내 기분을 물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말해, 상태가 좋지 않았다.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더 무너져 있었다.
며칠째 계속되는 일들이 나를 지독하게도 몰아붙이고 있었고, 세상은 조금의 자비도 없이 나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걸까. 억울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도윤은 진료실 밖에 남아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나와 함께 들어가겠다고 우겼다.
예전의 그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텐데.
나는 지금 이 남자를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뇌진탕은 심하지 않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컴퓨터를 오래 쓰는 일이시라면, 2주 정도 병가를 내셔야겠네요.”
의사는 노트북 화면에 시선을 둔 채 차분히 말했다.
“가급적 모든 전자기기를 멀리하세요. 텔레비전도 당분간 보지 마시고요. 독서를 즐기신다면, 일주일 정도는 참고 이후에 조금씩 하세요. 술, 커피, 운동, 사우나, 큰 소음… 모두 피해야 합니다. 가능한 한 많이 쉬고, 많이 주무세요. 두통이 오면 이 약을 드시면 되고요. 일주일 후에 다시 오세요. 꼭 휴식을 취하시길 바랍니다.”
의사는 미소를 지으며 진단서를 내밀었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2주 병가?
일이 산더미인데, 이게 무슨 말인가.
며칠 겨우 시간을 빌려 쓴 것도 힘들었는데, 무려 2주라니.
회사 상사가 좋아할 리 없었다. 아주 크게 화를 낼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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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 문을 나서는 순간, 도윤이 벌떡 일어나 내 앞을 막았다.
그는 곧장 내 팔꿈치를 붙잡으며 혹시라도 내가 쓰러질까 걱정하는 눈빛을 보냈다.
“괜찮아?”
“뇌진탕이래.” 목소리가 떨렸다.
이건 너무 타이밍이 아니었다. 잘리면 어떡하지?
물론 언젠가는 일을 그만두고 싶긴 했지만, 아직은 생각뿐이었는데.
내가 괜히 우주에 이상한 신호를 보낸 걸까.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한대.”
“너 울고 있어?”
나는 울고 있나?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며칠간 너무 힘들었다. 지쳐 있었다.
조금이라도 기분 좋은 일이 필요했는데, 나를 둘러싼 건 끝없는 부정적인 것뿐이었다.
좋은 건 뭐가 있지? 집에 있는 고양이뿐.
그마저도 요즘은 내가 자주 집을 비운다고 토라져 있었다.
“…지쳤어. 미안.”
왜 하필 도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을까.
그는 세상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사람이었는데.
하지만 지금은 옆에 있는 사람이 그뿐이라,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다행히도 그는 나를 어설프게 안거나 위로하려 들지 않았다.
그저 내 손목을 조심스레 잡아끌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 문을 열고는 말없이 나를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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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상했다.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도 있는 걸까?
나는 늘, 변하는 건 드라마 속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전엔 유치하고 고집스러웠던 세상이 이제는 훌쩍 어른이 되어 있었고…
도윤 또한 내가 알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그런데 왜 나만 변하지 못할까.
나도 예뻐지고 싶고, 성공하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은데.
현실은… 단 이틀 사이에 책 한 권 분량으로 써도 모자랄 만큼의 문제들뿐이었다.
“집 주소 불러 줘. 데려다줄게.”
도윤이 시동을 걸며 말했다.
나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집 위치를 말했다.
내 차는 회사 주차장 어딘가에 방치돼 있거나, 벌써 정비소에 들어갔을지도 몰랐다.
택시를 탈 힘도 없었고, 혹시라도 운전이 거친 기사님을 만나면 큰일이었다.
지금은 도윤의 도움을 거절할 기력조차 없었다.
그는 불필요한 질문을 하지 않았고, 평소보다 훨씬 천천히 운전했다.
속도를 줄여 달리는 차 안,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진료실 문을 나서자마자 도윤과 마주쳤다.
그는 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내가 쓰러질까 봐 걱정되는 듯 팔꿈치를 단단히 감쌌다.
“괜찮아?”
“뇌진탕이래.” 목소리가 떨리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정말 지금은 너무 아니었다. 혹시 잘리는 건 아닐까? 물론 언젠가 이 일을 그만두고 싶긴 했지만, 아직은 단순한 생각일 뿐이었는데. 대체 내가 무슨 잘못된 기운을 우주에 흘려보낸 걸까. “침대에 누워서 푹 쉬어야 한대.”
“너 울어?” 도윤이 놀란 듯 물었다.
울고 있나? 아마도 그렇겠지… 요 며칠은 너무 힘들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좋은 건 하나도 없고, 나쁜 일들만 계속 이어졌다. 위로받을 만한 게 뭐가 있나? 집에 있는 고양이뿐. 그마저도 요즘은 내가 자주 집을 비운다고 서운해하는 눈치다.
“지쳤어. 미안.” 왜 하필 도윤한테 이런 말을 하고 있을까 싶었지만, 지금은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냥 곁에 있는 사람이라서, 어쩌면.
그런데 다행히도 그는 나를 어설프게 안아 달래려 하거나, 억지로 위로하려 들지 않았다. 다만 내 손목을 조심스럽게 잡고는 밖으로 이끌었다. 주차장에 도착하자 그는 문을 열고 조용히 차에 태웠다.
이상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도 있을까? 나는 늘, 변하는 건 드라마 속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예전엔 질투 많고 어린아이 같던 세상이 지금은 훌쩍 어른이 되어 있었고… 도윤 역시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왜 나는 안 변할까? 나도 예뻐지고 싶고, 성공하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은데. 현실은… 단 이틀 사이에 책 한 권 분량으로 써도 모자랄 만큼의 문제들뿐이었다.
“집 주소 불러 줘. 데려다줄게.” 도윤이 시동을 걸며 말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집 위치를 말했다. 숨길 필요도 없었다. 내 차는 아직도 회사 주차장 어딘가, 아니면 벌써 정비소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지금 택시 타기도 힘들었다. 혹시라도 운전이 거친 기사님을 만나면 큰일 아닌가. 도윤의 도움을 거절할 힘조차 내겐 없었다.
그는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고, 질문도 하지 않았다. 다만 평소보다 훨씬 천천히, 조심스럽게 속도를 줄여 운전했다. 그게 고마웠다.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찡그리며 결국 상사에게 전화를 건다.
이번이 연속 두 번째 결근이라, 그의 불만이 이미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머리는 쪼개질 듯 아팠고, 단순한 신호음조차 고막을 찌르듯 괴로웠다.
하지만 지금 바로 정리하는 게 낫다. 그래야 집에서 마음 놓고 치료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
한참 동안 받지 않던 전화가 마침내 연결되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너무 차가워서, 마치 그 냉기가 전선을 타고 내 살결에 스며드는 듯 소름이 돋았다.
“강민석 부장님… 저 뇌진탕 진단을 받았고, 2주간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세진아…”
그가 한숨을 쉬자, 나는 벌써 눈을 감고 콧잔등을 움켜쥐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는 항상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그런 버릇을 보였다.
안경을 이마로 밀어 올리며, 마치 세상이 짐이 된 듯이.
“나도 곤란하다. 난 당장 일할 직원이 필요한데, 아픈 새 한 마리가 아니라.”
“부장님, 저 근무하는 동안 병가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휴가조차 한 번도 쓴 적이 없는데요. 지금은 정말 집에서 쉬어야 하는 상황이에요.”
억지로 말하는 동안 머리는 더욱 아파왔고, 세상이 빙빙 돌았다.
“그래, 누워서 힘을 좀 길러.”
뜻밖에도 그는 그렇게 말했다. 잠시나마 미소가 번지려 했지만, 이어진 말이 나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하지만 병가 끝나면 넌 해고다. 자진 사직으로 처리해. 2주 인수인계 같은 건 필요 없어. 그냥 치료나 해.”
뚝.
통화가 끊겼다.
나는 어떻게든 울음을 참으려 애썼다.
해고라니… 그것도 잘못도 없이 교통사고로 뇌진탕을 당한 뒤에.
이게 말이 되나? 이제 어디서 새 직장을 구해야 하지?
무엇보다… 고양이는 어떻게 먹여 살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