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처럼 향기 난다

7 화 - 낯설지만, 여전히 가까운

by 나리솔


7 화 - 낯설지만, 여전히 가까운

“예서, 괜찮아?” 도윤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본다. 지금 내 꼴이 얼마나 엉망일지 상상하기도 싫다.

“나… 잘렸어.” 나는 눈을 감은 채 대답한다.

“너무 낙심하지 마. 알았지? 새로운 일자리 분명히 찾을 수 있어. 우선은 몸부터 회복해. 핸드폰 좀 줘봐.”
그가 손을 내밀자, 나는 무슨 일을 하려는지도 모르고 휴대폰을 건네준다.

도윤은 어떤 번호를 누른 뒤 전화를 걸고, 자기 휴대폰에서 신호음이 울리자 곧 끊는다.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한다.

“내가 전화할게. 네가 괜찮은지 확인하려고.”

“…그래, 그러든가.”

집 앞에 도착한 건 몇 분 뒤였다. 도윤은 내가 내리는 걸 도와주더니, 심지어 집 문 앞까지 함께 걸어왔다. 내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하지만 사실 머리가 너무 어지럽고 상태가 안 좋아,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뭐 필요한 거 없어? 음식 주문해줄까, 아니면 마트에 다녀올까?”
그가 내 문 앞에서 묻는다. 나는 고맙긴 했지만, 초대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당장 눕고 싶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잠들고 싶었다.

“아니, 다 있어. 고마워. 나 그냥 잘래.”
나는 작게 웃으며 말하고, 도윤이 돌아서는 순간 집 안으로 들어간다.

민준이가 바로 달려와 내 다리에 몸을 비비며 야옹 하고 운다. 이렇게 일찍 집에 돌아온 걸 예상 못 한 듯 반갑게 맞아준다. …어쩌면 이게 다 잘 된 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는 이 아이에게 더 많은 시간을 줄 수 있겠지. 누구보다 이 녀석이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나는 벽을 짚으며 천천히 방으로 향한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빙글빙글 도는 탓에, 지금 쓰러지기라도 하면 정말 최악일 테다.

옷을 갈아입고, 간신히 욕실까지 가서 세수를 한다. 의사는 며칠만 참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지만, 지금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

침대에 몸을 눕히고 모든 나쁜 생각들을 쫓아낸다. 더 이상은 생각도, 분석도, 눈물도 원치 않는다. 그건 나중에 해도 된다. 지금은… 그저 잠들고 싶을 뿐이다.

깊고 평온하던 꿈은 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에 산산이 부서졌다.
나는 억지로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리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고양이 민준이도 그 소리에 반응해 크게 울어댔고, 나는 마지못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대체 무슨 일이야? 내가 혹시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아서 아래층을 침수시킨 건가? 아니면 불이라도 난 건가? 설마 운석? 왜 이렇게 세차게 두드리는 거야, 제발…

창밖은 이미 깜깜했고, 나는 하루 종일, 아니 어쩌면 저녁까지 몽땅 잠들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시계는 손에 없고, 휴대폰은 어디에 던져놨는지도 알 수 없었다.

복도 불을 켜자 눈이 따갑게 시리다. 아… 언제쯤 괜찮아질까?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지?

나는 누가 온 건지 묻지도 않고 문을 열어젖혔다. 그저 이 끔찍한 두드림이 빨리 멈추기만을 바랐다.

그리고…

“도윤?”

“세상에, 예서야, 다행이다!”
그가 예상치 못하게도 지나치게 감정적인 목소리로 말하더니, 곧장 나를 끌어안았다.

“…뭐야?”
나는 속삭이듯 말하며 그의 품에 서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왜 도윤이 이렇게까지 하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안.”
도윤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살짝 떼어내고, 문을 닫았다.
“민준이가 그러더라. 네가 뇌진탕이라면서 내 번호를 알려줬어. 그런데 네가 몇 시간째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아예 반응도 없고. 아까도 문을 반 시간이나 안 열길래, 진짜 119 부를 뻔했어. 무슨 일 난 줄 알고… 그런데 너는…”

“잠들었어.”
나는 얼굴이 벌게져서 대답했다. 휴대폰을 어디에 뒀는지도 기억이 안 나고, 아마 평소처럼 무음으로 해놨을 거라 전화 소리를 듣지 못한 게 분명했다.
“미안.”

“아니, 내가 미안하지. 괜히 들이닥쳐서 깨워버렸네. 사실은 네가 무서워서 그랬어, 예서. 믿어줄래?”

“믿어.”
나는 대답했고, 어느새 입술 끝에 미소가 번졌다. 이건 분명 기분 좋은 일이다.
“왔으니까 들어와. 차라도 끓여줄게.”

내가 부엌으로 향하자 도윤이 나보다 먼저 걸음을 옮겨 의자에 나를 앉히며 두 손으로 내 어깨를 눌렀다.

“앉아 있어. 제발. 내가 직접 할게. 어디에 뭐가 있는지만 말해줘…”

이건 참 묘한 감정이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도 모른 채, 아니 사실은 잘 알면서… 전 여자친구의 집에서, 그녀를 위해 차를 끓이고 있다는 게.


정확히 말하면, 이유는 분명하다. 그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으니까… 겁이 나서 달려온 거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이렇게까지 그녀를 걱정할 자격이 있느냐는 거다.


한편으로는, 있다. 다섯 해 동안 얼굴 한 번 못 봤다 해도, 우리는 서로의 몸에 있는 작은 점 하나까지도 기억할 정도로 가까웠던 사이다. 그런 사이가 어떻게 갑자기 남이 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없다. 이유는 똑같다. 우리는 다섯 해 동안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내 옆에는 세진이라는 여자친구가 있다.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은 그녀인데…


하지만, 우리는 다투었다.

예서가 경찰을 부르자고 했을 때 내가 동의한 게 원인이었다. 세진은 말도 안 된다며 소리쳤다. 그렇게 하면 조사받고, 벌점 받고, 면허도 잃을 수 있는데 어떻게 네가 그런 제안을 할 수 있냐고. 넌 나를 지켜야 한다고.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세진의 부주의 때문에 예서가 뇌진탕을 입었다는 거다. 이건 단순히 ‘두 번째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이 하필 예서였다’라는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 다쳤고, 그게 내 눈앞에 있는 예서라는 사실. 그래서 나는 도저히 눈 감아 줄 수 없었다.


결국 그 일로 크게 싸웠다. 민준 역시 자기 동생 편에 서지 않았다. 세진은 늘 모든 게 자기 뜻대로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연애가 아무리 소중해도, 최소한의 상식은 지켜야 한다.

그리고 이번 상황에서 나는 예서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게 내 진심이었으니까.


만약 내일 세진이 횡단보도에서 누군가를 치고도 똑같이 "봐달라"고 한다면?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예서는 전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지쳐 보이고, 아픈 기운이 역력했다. 눈 밑엔 짙은 그림자, 입술은 새하얗게 바래 있었다. 민준이 나한테 다 얘기해 주었다. 병원에 갔던 일, 회사에서 해고당한 일, 거의 의식을 잃을 뻔했다는 것까지.


나는 그냥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정말 그럴 수 없었다. 억지로 민준에게서 번호를 받아냈다. 나 스스로도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그래도 걸었다. 그러나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결국 주소까지 알아내어 찾아왔다. 우리가 사귀던 시절, 예서는 다른 집에 살고 있었다. 지금은 낯선 동네, 낯선 아파트. 그저 그녀가 무사한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도 문을 열지 않았다. 미칠 지경이었다. 거의 119를 부르려 했을 정도다. 문을 억지로 열어 보려 했지만, 문이 워낙 튼튼해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그녀가 나왔다.

하지만 내가 알던 그 예서와는 너무 달랐다.

언제나 밝게 웃던 그녀가 아니라, 너무도 창백하고 지쳐 있는 예서였다.


나는 본능처럼 그녀를 끌어안았다. 단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눈앞에서 무사히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의 돌덩이가 굴러떨어진 듯 안도감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녀의 부엌에 서서 주전자가 끓기를 기다리고 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온 걸까?


무슨 말을 하려고 온 걸까?

그저 무섭다고, 걱정돼서 찾아왔다고, 문 두드리며 그녀를 깨웠다고… 그 다음엔 뭐라고?


나는 정말 바보처럼 굴고 있는 게 아닐까.


너무 오래돼서 냄새도 이상한 티백에 뜨거운 물을 부어 두 잔의 차를 만든다. 하나를 그녀 앞에 밀어두면서도, 어쩐지 모든 게 낯설게 느껴졌다. 예서 역시 나만큼이나 어색해하는 게 눈에 보였다.


다섯 해가 지났음에도, 나는 아직도 그녀의 습관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녀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 입술을 꼭 깨물어 피가 배어나올 정도로 긴장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한때는 서로의 모든 것을 알았던 우리가 이제는 거의 낯선 사람이 되어버리다니.


나는 지금의 예서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꿈을 꾸는지,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생일에 어떤 선물을 받고 싶어 하는지… 스물두 살의 지금도 산타클로스를 믿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예전의 몇 가지 건조한 사실들만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무지를 어떻게든 메우고 싶어, 미친 듯이 갈망하는 나 자신을 깨달았다.


“내가… 진짜 민폐지?”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살짝 스쳤다.

그 말은 곧 내 추측이 맞다는 뜻이었다.

나의 존재가 지금, 그녀에게 불편함을 주고 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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