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화 이해관계의 충돌
2024년 5월 21일, 인천 HK 사무실
지훈은 세 번째로 소연을 불러들였다.
그러나 고집스러운 그녀는 서두르지 않았고, 지훈은 신경질적으로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새끼손가락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목을 조여 오는 듯한 흰색 넥타이를 어둔 녹색 셔츠 깃 아래에서 괜히 잡아당겼다.
아침에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 소연은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지만, 지훈은 곧장 자기 방으로 걸어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그런데 문서에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다시 그녀의 시선을 느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왜, 왜 하필 사무실에서 저런 표정을 짓는 거야? 근무 시간에?’
지훈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손바닥에 땀이 배어드는 걸 느꼈다.
“끔찍한… 넥타이.”
소연의 입술 모양을 읽어버린 순간, 지훈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요즘 그는 너무 자주 얼굴을 붉혔다. 마치 사춘기 소년처럼.
결국 그는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책상 위에 던졌다.
짜증과 함께.
하지만 소연은 오지 않았다.
그녀는 일부러 바쁜 일을 찾으며 지훈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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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깊은 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장소연…”
그는 다시 인터폰을 눌렀다.
“지금 당장 들어와.”
잠시 뒤, 문이 열리더니 소연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서류 뭉치를 안고 있었고, 표정은 무심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지훈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업무가 많았습니다.”
그녀는 간단히 대답하며 서류를 그의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지훈은 그녀를 노려보았다.
“내가 세 번이나 불렀다는 건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소연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우선순위가 있었습니다.”
그 순간, 지훈의 눈빛이 매섭게 흔들렸다.
“우선순위?”
“대표님이 원하시는 모든 일이 곧장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연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다.
사무실 안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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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늘 자기에게 맞서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장소연은 흔들림 없이 서 있었다.
“네가… 지금 나한테 반항하는 거야?”
그의 목소리는 낮고 서늘했지만, 안쪽에서는 묘한 동요가 일었다.
소연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아니요. 저는 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지훈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화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의 단호한 눈빛이, 오히려 이상하게 마음을 끌어당겼다.
억눌러야 할 감정이 치밀어 오르자, 그는 갑자기 시선을 돌렸다.
“…넌 가끔 선을 넘는다.”
소연은 조용히 서류를 정리하며 대답했다.
“선을 넘는 건 대표님 쪽일 때가 더 많습니다.”
그 말에 지훈은 잠시 숨이 막혔다.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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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 모서리에 손을 짚었다.
“장소연.”
그의 목소리는 낮게 깔렸지만, 억누른 감정이 묻어 있었다.
소연은 놀라지 않고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차분했으나, 그 속에는 분명한 도전이 담겨 있었다.
“대표님이 저를 불러내는 이유가 정확히 뭡니까?”
그녀가 물었다.
“업무 때문인가요, 아니면… 다른 이유입니까?”
지훈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그녀의 직설적인 질문은 예상 밖이었다.
그는 순간 대답하지 못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짜증과 혼란,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뒤섞였다.
결국 그는 시선을 피하며 낮게 중얼거렸다.
“…넌 네가 뭘 말하는지도 모르는군.”
소연은 서류를 정리해 안겨 들며 짧게 고개를 숙였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제 한계입니다.”
그녀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지훈은 뒷모습을 바라보며 손끝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잡고 싶었지만, 끝내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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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닫히자, 사무실은 고요해졌다.
지훈은 깊은 숨을 내쉬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책상 위에 던져둔 넥타이가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는 거지…’
그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눈을 감았다.
분명 화가 나야 하는 상황이었다.
비서가 상사에게 거역하고, 도전을 서슴지 않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왜—
왜 그의 가슴은 이렇게 요동치는가.
소연의 시선, 단호한 말투, 흔들리지 않는 태도.
모든 것이 그를 불편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이상하게 사로잡았다.
지훈은 스스로를 다그치듯 중얼거렸다.
“이건 감정이 아니다. 단순한 업무 충돌일 뿐이다.”
그러나 가슴 깊은 곳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속삭이고 있었다.
그녀가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고.
지훈은 고개를 숙이며 손끝으로 반지를 돌렸다.
아무리 부정해도, 이미 선은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