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의 여름

자전적 에세이

by 나리솔

열네 살의 여름


이 이야기를 쓰는 것은 쉽지 않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늘 내 안에 살아 있고, 때로는 꿈처럼, 때로는 상처처럼 되살아난다. 나는 그것들을 잊을 수도, 지울 수도 없다. 그래서 이 글은 나에게 고백이자 증언이다.



나는 일곱 살이 되던 해부터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났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들판은 차갑고 고요했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풀잎에 맺힌 이슬은 신발을 적셨고, 어린 내 손에는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엄마는 앞장서 걸었고, 나는 묵묵히 그 뒤를 따랐다. 여름과 가을마다 학교는 방학이었지만, 나에게 방학은 휴식이 아니라 노동을 의미했다. 농장과 묘목장에서 딸기, 사과, 배를 따야 했고, 그것들을 장터에 내다 팔아야만 생활이 이어졌다.


우리 집은 작은 벽돌집이었다. 방은 좁고 어두웠고, 창문은 바람을 막아주지 못했다. 겨울이면 방 안에서도 숨결이 하얗게 흩날렸다. 욕실도, 화장실도 없었기에 우리는 집 밖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마을에는 가게가 하나뿐이었고, 생활은 늘 부족했다. 엄마 혼자 장작을 패서 불을 피워야 했기에 목욕은 일주일에 한 번뿐이었다. 나는 그것이 당연한 줄 알고 자랐다.


내 어린 시절에는 ‘소녀’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단 한 번도 인형이나 리본 같은 ‘여자아이의 장난감’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선물이라고 내민 것은 작은 장난감 탱크였다.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내게 벽에 대고 팔굽혀펴기를 시켰고, 나는 억지로 따라야 했다. 친구들이 예쁜 머리핀을 자랑할 때, 나는 남자아이처럼 강해져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머리가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려웠다. 엄마는 내 머리칼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가 있구나.”

그리고는 곧바로 내 머리카락을 모두 잘라버렸다.


나는 긴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였다. 바람에 흩날릴 때마다 작은 자존심이 되어주던 머리카락은 바닥에 무참히 흩어졌다. 거울 속에는 더 이상 내가 알던 내가 없었다. 사실 내 머리에는 이가 없었다. 단지 며칠 동안 머리를 감지 못해 더러워져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날 이후 사람들은 나를 보고 속삭였다.

“남자애 같은데, 치마만 입었네.”

나는 여자아이였지만, 세상은 나를 소녀로 보아주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늘 배고팠다. 밥 대신 감자 껍질을 먹는 날이 많았고, 어떤 날은 아무것도 없었다. 열한 살 무렵, 나는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종이를 씹어 삼킨 적도 있었다. 입안은 거칠었고 목은 막히는 듯했지만, 허기를 잠시라도 잊고 싶었다. 그러나 며칠 뒤, 배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팠고 결국 병원으로 실려 갔다. 위는 막혀 있었고, 담즙은 입으로 역류했다. 수술은 피할 수 없었다.


병실의 하얀 천장은 너무 넓었고, 침대는 차가웠다. 나는 방문이 열릴 때마다 혹시 엄마가 들어올까 눈을 떴다. 하지만 끝내 엄마는 오지 않았다. 엄마는 늘 새벽부터 밤까지 일했고, 아버지는 집에 거의 없었다. 그는 늘 친구들과 술에 취해 있었고, 우리 집에는 그가 남긴 공허함만 가득했다. 나는 부모가 없는 아이처럼 홀로 병실에 누워 있어야 했다.


한 달 뒤 퇴원 날, 아무도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았다. 돈이 없어 버스를 탈 수도 없었다. 나는 4시간 반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가을바람은 차가웠고, 발밑의 낙엽은 바스락거렸지만 그 소리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어린 소녀의 발걸음은 고독으로 젖어 있었다.


그리고 열네 살이 되던 해, 내 생일을 앞두고 비극이 찾아왔다.

나는 학교에 있었고, 엄마와 아버지는 장을 보러 나갔다. 아버지는 술에 취한 채 운전대를 잡았고, 결국 사고가 났다. 아버지는 몇 개의 상처만 입고 가볍게 끝났지만, 엄마는 크게 다쳤다. 처음에는 괜찮아 보였으나 몇 달 뒤, 뇌에서 종양이 발견되었다. 병은 빠르게 진행되었고, 엄마는 끝내 내 손을 잡은 채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나는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

아버지는 끝까지 책임지지 않았다. 엄마의 장례식에도, 그 이후의 삶에도 그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도망치듯 사라졌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내 어린 시절은 완전히 끝났다.

나는 단숨에 어른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나는 그 모든 시간 속에서 살아남았다.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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