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문을 열고: 나의 새벽을 만나다

1 - 장 침묵이 시작되는 곳

by 나리솔



1 장 침묵이 시작되는 곳



이 이야기를 글로 풀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어떤 밤에는 글자들이 튀어나와 내 손끝을 아리게 하고, 어떤 낮에는 문장이 갈기갈기 찢겨나가 숨조차 쉴 수 없게 해. 기억은, 마치 보이지 않는 흉터처럼 내 존재 깊숙이 새겨져 지워지지 않아. 그 흔적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해지거나, 문득 날카로운 통증으로 되살아나 내 숨통을 조여오곤 하지.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해. '어쩌면 이건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 어딘가에서 아픔을 겪었을 다른 아이의 이야기일지도 몰라.'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며 잠시라도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어. 하지만 눈을 감는 순간, 거짓말처럼 나는 다시 그 작은 벽돌집에 서게 돼. 쿰쿰한 연기와 눅진한 습기,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삶의 피로가 켜켜이 배어 있던, 그 아리고 선명한 어린 시절 속으로 말이야.

우리 집은 마을의 가장 끝자락, 시간조차 비껴간 듯한 쓸쓸한 곳에 외로이 서 있었어. 낡은 벽돌집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여기저기 금이 가고, 창문들은 뒤틀려 겨울이면 뼈 속까지 스며드는 매서운 한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지. 아침에 눈을 뜨면, 하얀 입김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던 그 차가운 공기가 아직도 선명해. 우리는 집 안의 모든 이불을 끌어모아 몸을 덮었지만, 살을 에는 듯한 추위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끝내 몸을 파고들었어. 창문은 금세 김이 서리고, 기온이 더 내려가면 투명한 유리 위에 기이한 얼음꽃들이 아름답지만 차가운 문양을 만들었어. 어린 나는 그 얼음꽃 위에 작은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며, 잠시나마 온몸을 휘감은 추위를 잊으려 했지.

집 안에는 욕실도, 화장실도 없었어. 삶의 모든 불편함이 집 바깥에 존재했지. 겨울밤에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얼어붙은 길 위에서 비틀거리며 걸어가야 했고, 차가운 바람은 내 얼굴을 세차게 때렸어. 따뜻한 물로 몸을 씻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집 뒤편에 덩그러니 놓인 작은 목욕탕, 즉 아궁이에 장작을 지펴야만 따뜻해지는 ‘시골식 목욕실’이었지. 뻣뻣한 장작을 패고, 불을 붙여 물을 데우는 그 모든 벅찬 일들을 오직 엄마 혼자 감당했어. 나는 너무 어려 그 작은 손으로 도울 엄두조차 못 내고, 그저 어린 눈으로 엄마의 손이 도끼를 쥘 때마다 힘겹게 떨리는 것을 보았어. 그럼에도 엄마는 단 한 번도 힘듦이나 고통을 말하지 않았어. 그 모습은 내게 어린 마음에도 사무치게 불공평하게 느껴졌어. 세상의 모든 무게가 왜 고스란히 엄마의 여린 어깨 위에만 내려앉아야 했을까.

아버지는 집에 그림자처럼 존재했어. 그는 늘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밤늦게까지 자리를 비웠고, 때로는 며칠 동안 돌아오지 않는 날도 허다했어. 간혹 집으로 돌아오면 그는 큰 소리로 떠들었고, 온몸에서는 지독한 술 냄새가 났지. 그러면서도 가끔은 ‘선물’이라는 것을 내밀었어. 하지만 그것은 다른 아이들이 품에 안고 웃는 예쁜 인형이나 반짝이는 머리핀 같은 것이 아니었어. 어느 날 그가 툭 던지듯 내민 것은 묵직하고 차가운 작은 장난감 탱크였어. “넌 강해져야 한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벽에 세워놓고 작은 팔로 팔굽혀펴기를 시켰지. 나는 이유도 모른 채, 그의 무섭도록 단호한 시선 앞에서 엎드려야 했어. 그 순간,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하게만 느껴졌어. 다른 아이들의 손에는 웃는 얼굴의 인형이 있는데, 왜 내게는 딱딱한 탱크가 쥐어져 있어야 했을까. 그 작은 탱크는 내 유년의 순수함을 짓밟는 무거운 상징처럼 느껴졌지.

나는 분명 여린 소녀였지만, 나를 둘러싼 혹독한 환경은 끊임없이 나를 ‘남자아이’처럼 만들었어. 그 사실을 가장 크게, 그리고 가장 아프게 깨달은 건 끔찍하게도 내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던 날이었지. 머리가 심하게 가려워지자, 엄마는 잠시 내 머리를 살펴보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이가 있구나.”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엄마는 손에 가위와 이발기를 집어 들었어. 오랜 시간 길게 자라 있던 내 소중한 머리카락은 미련 없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내렸지. 나는 울음을 억지로 참으며 거울을 보았어. 거울 속에 비친 나 자신은, 내가 알던 소녀의 모습이 아니었어. 슬프게도, 내 머리에는 이가 없었어. 그저 며칠 동안 머리를 감지 못해 더러워져 있었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한참 후에야 알았어. 그러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지. 마을 사람들은 내 모습을 보고 수군거렸어. “남자애 같은데, 치마만 입었네.” 나는 분명 여자아이였지만, 사람들의 눈에 나는 더 이상 순수하고 보호받아야 할 ‘소녀’가 아니었던 거야. 그들은 나의 빛을 삼키는 어둠 속에 나를 가두고 싶어 했지.

그때 나는 깨달았어. 내게는 ‘어린 시절’이라는 것이, 누군가가 당연하게 누렸던 그 아름다운 유년의 시간이라는 것이 없었다는 사실을. 내 어린 날들은 추위와 배고픔, 끝없는 피로와 부모의 부재 속에서 무참히 빼앗겨 있었어. 그 작은 몸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엄마를 돕고, 혹독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것뿐이었지. 슬픔은 삭이고, 아픔은 삼키며,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 했어.

이 기억들은 언제나 무겁고, 때로는 나를 짓눌러. 하지만 나는 지금 그것을 글로 남기고 있어. 왜냐하면 그것이 피할 수 없는 나의 진실이기 때문이야. 그리고 바로 그 쓰라린 진실 위에서 나의 길이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알아. 침묵이 시작되었던 곳, 그곳에서 모든 기억은 마치 묵혀둔 샘물처럼 다시 솟아오르고, 그 기억이 깨어나는 순간, 나의 이야기는 비로소 비로소 목소리를 얻고, 내 삶은 진정한 새벽을 맞이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