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괴롭더라도
나만 감내하면 되는데,
함께 슬픔을 나누자엔 죄책감이 드니까.
타인의 시선에
내가 안타까워 보이면
더욱 무너져 버릴 것 같으니까.
아무 모든 게 핑계일 수도 있다.
한 부분 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안 좋은 경말이 더욱 잦았기에
숨김에 더욱 익숙해졌을 것이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자에게 어울리는 방식이 있을 터인데,
나에겐 받은 척’이 가장 잘 어울렸다.
서투게 스며드는 가짜가
진짜인지 헷갈릴 때 두렵기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티 나지 않아
주위에선 행복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사실상 아니면서
사실상, 괜찮다.
슬픈 거, 괜찮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옛말의 근거를 빌려,
언젠가 나에게도 괜찮은 하루가 다가올 거라 믿는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뿐이다.
각자의 사연으로 주관에 사로잡히듯,
한 삶의 해방은 여정까지.
어두운 새벽의 상처를 치우고,
노란 초승달을 향해
엷비슷한 미소를 끝으로 하루가 저문다.
결국 삶은
견뎌내는 시간이 아니라
조용히 피어나는 순간들의 모음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상처가 내일의 빛을 가리더라도,
그 빛은 사라지지 않고
언제나 제 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러니 지금의 어둠 또한
별을 더 선명하게 보기 위한 길목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