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을 담음.
눈을 감으면 나는 다시 그곳에 있다.
90년대의 여름.
그 시절 여름은 달력이나 날짜로 시작되지 않았다.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냄새,
그리고 밤낮없이 울어대던 매미 소리가
여름의 시작을 알려주었다.
전화도, 메시지도 없던 시절.
약속하지 않아도 우리는 마당으로 나갔다.
그러면 이미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마당은 곧장 놀이터이자 작은 세상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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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숨바꼭질을 하며
벽 뒤와 나무 뒤에서 숨죽였다.
그 순간은 마치 목숨이 걸린 것처럼 진지했다.
술래잡기를 할 때면
맨발은 달궈진 아스팔트에 덴 듯 아팠지만,
웃음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아이들은 고무줄놀이를 하며
노랫소리를 맞추었고,
남자아이들이 어설프게 끼어들면
우리는 배꼽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분필로 땅에 칸을 그리고 사방치기,
종이 딱지를 모아 딱지치기,
작은 제기를 차 올리며 제기차기,
그리고 먼지 가득한 마당에서
팽이가 끝없이 돌았다.
그 단순한 놀이들이 하루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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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동전 하나로 충분했다.
아이스케키 하나를 사서
친구와 반으로 나누어 먹을 때의 달콤함.
골목에서 팔던 달고나는
숨을 죽이며 바늘로 모양을 따내던 순간이
온 세상을 걸고 하는 도전 같았다.
철판 위에서 구워주던 쫀드기의 냄새는
여름의 공기와 섞여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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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름방학의 진짜 시작은
시골 할머니 댁으로 가는 길에서였다.
논두렁 좁은 길을 맨발로 달리고,
개울가에서 올챙이를 손으로 잡았다.
잠자리채를 휘두르며 매미와 풀벌레를 쫓다가
온몸이 땀으로 젖어도 우리는 웃었다.
할머니는 늘 커다란 솥에 옥수수를 삶아 주셨다.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옥수수는
도시에서 먹던 어떤 과자보다 맛있었다.
감자와 고구마를 불에 구워 먹으며
입천장을 데인 기억마저 소중했다.
마당에는 닭이 뛰놀고,
멀리서 소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으며,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며 따라다녔다.
그 모든 풍경이 살아 있는 음악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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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우리는 마루에 누웠다.
선풍기도 없던 시절,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머리 위에는 끝없이 별이 흘렀다.
매미 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은하수를 바라보던 그 순간은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다.
가끔은 오일장에 가기도 했다.
생선 비린내, 채소의 싱그러움,
지글지글 부쳐지는 전 냄새,
그리고 왁자지껄한 사람들 소리.
그 속에서 나는 삶의 리듬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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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의 여름은 라디오와 함께였다.
누군가의 고백과 사연이 흘러나오고,
우리는 귀를 기울이며
혹시 내 이름이 나오지 않을까 설레었다.
좋아하는 노래는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했다.
지직거리는 소리조차 소중했고,
그 테이프는 나만의 보물이 되었다.
만화방에 가면 시간은 금세 흘렀다.
《슬램덩크》, 《세일러문》, 《드래곤볼》을 읽으며
더위도, 세상도 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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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여름은 길었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세상 같았다.
행복은 단순했다.
마당에서의 놀이,
친구와 나눈 아이스크림,
할머니의 삶은 옥수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
만화방에서 읽던 한 권의 만화책.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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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여름은 너무 짧다.
우리는 어른이 되었고,
일에 쫓기며 하루를 잊는다.
그러나 달고나 향기를 맡을 때,
삶은 옥수수 맛을 떠올릴 때,
나는 다시 그 여름으로 돌아간다.
90년대의 여름.
그리고 알게 된다.
그 여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