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만화경

15 - 아주 오래전, 풍요로운 삶을 누리던 부부가 있었어.

by 나리솔


15 - 아주 오래전, 풍요로운 삶을 누리던 부부가 있었어.



그들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그림처럼 완벽했지. 남편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업가로 매일 바쁘게 일하며 가정의 경제를 책임졌고, 아내는 고상한 취미와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며 넓고 아름다운 저택을 완벽하게 가꿨어. 집 안 곳곳에는 값비싼 예술품들이 놓여 있었고, 정원은 늘 화려한 꽃들로 가득했지. 모든 것이 질서 정연했고,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불만이나 부족함도 찾아볼 수 없었어. 그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아들도 있었지만, 아들은 이미 독립해 머나먼 타지에서 학업에 몰두하고 있었기에, 부부는 물리적으로는 서로에게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었어. 그들의 관계는 마치 오래된 명품 가구처럼 견고하고 익숙해 보였고, 그 누구도 그 사이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지.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핸드폰으로 정체불명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왔어. 낯선 목소리는 너무나 충격적인 한마디를 내뱉었지. "당신의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습니다." 남편은 귀를 의심했어. 스무 해를 함께한 아내가 그럴 리 없다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지. 아내가 다른 남자와 외도라니? 그들은 젊은 시절부터 함께 역경을 헤쳐왔고, 무수한 추억을 공유했으며,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냈어. 가정에 불행의 그림자 따위는 단 한 번도 드리운 적이 없었다고 그는 확신했어. 하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의 마음을 스멀스멀 파고들었고, 이성적인 판단과는 달리 몸은 이미 익숙한 길을 벗어나 알려준 주소로 향하고 있었지.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낯선 주소지에서 그는 충격적인 진실과 맞닥뜨렸어. 그곳은 초라한 방 하나짜리 월세 아파트였고, 그 안에서 그의 아내와 한 남자가 함께 있는 것을 보게 된 거야. 아내와 함께 있던 남자는, 말 그대로 평범하고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인상에, 값싼 옷차림을 하고 있었어. 두꺼운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은 순진해 보였고, 낡은 기타를 들고 있는 모습은 흡사 길거리 음악가 같았지. 남편은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애써 침착하게 문을 두드렸어.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로 "아랫집인데요, 위에서 물이 새는 것 같아서요"라고 말하자, 아무것도 모르는 채 해맑게 문을 열어주는 아내와 그 낯선 남자의 모습에 그는 엄청난 배신감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지.

그 순간, 오랜 세월 쌓아왔던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충격에 휩싸였어. 결국 그곳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어. 억누를 수 없는 분노와 실망감에 남편은 이성을 잃고 고함을 질렀고, 그 안경 쓴 남자를 당장이라도 때려죽일 것 같았지. 그런데 더욱 경악스러웠던 건, 아내가 그 낯선 남자를 필사적으로 감싸 안으며 남편에게 대항하는 모습이었어. 아내는 소리를 지르며 남편의 팔을 붙잡고, 심지어 손에 들고 있던 러시아 시인 예세닌의 시집으로 남편의 어깨를 내리치기까지 했지. 그야말로 아내에게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기 어린 모습이었어. 그 광경은 마치 한 편의 저질 막장 드라마처럼 추악하고 수치스러웠어.

모든 분노와 폭풍이 지나간 후, 남편은 비통함과 절망감에 휩싸여 침묵 속에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어. 그리고는 텅 빈 눈으로 아내를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지. "왜? 도대체… 왜 이 모든 것이 벌어진 거지? 무엇 때문에?" 그러자 아내는 그제야 봇물 터지듯 눈물을 쏟아내며 울먹였어. "그는… 그는 나와 대화해 줬어! 나랑 이야기를 나누어 줬단 말이야! 우린 매일 이야기를 나눴어!" 그 고통스러운 외침은 남편의 심장을 날카롭게 꿰뚫는 비수 같았어.

충격적인 고백은 계속 이어졌어. 알고 보니 그의 부유하고 품위 있는 아내는 그동안 은밀히 작은 아파트를 빌려 이 안경 쓴, 가난한 선생님을 만나고 있었던 거야. 그 만남의 목적은 단지 '대화'였어. 매일 바쁜 일상에 지쳐 아내와 진지한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었던 남편과는 달리, 이 선생님은 그녀의 말에 귀 기울여 주고, 그녀의 생각에 공감해 줬지. 학창 시절 꽤나 뛰어난 노래 실력을 가졌던 아내는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잊고 지냈던 젊은 시절의 열정을 다시 느꼈대. 두 사람은 시를 논하고, 인생의 의미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눴으며, 아내는 그동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자신의 감정들, 숨겨진 상처들, 그리고 삶의 애환을 그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고 해. 함께 따뜻한 차를 마시고, 때로는 특별한 날에는 글라스에 와인을 조금씩 따라 마시며 마음을 나누었지. 남편이 질색하던 재즈나 색소폰 음악을 들으며 자유롭게 영혼을 노래하고,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자신의 존재를 다시금 깨닫는 시간을 가졌던 거야. 비록 선생님에게도 아내와 세 아이가 있었지만, 이 만남은 철저하게 순수하고 플라토닉 한 관계였어. 인터넷을 통해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씩 그렇게 서로에게 필요한 '대화'라는 양식을 주고받으며 허전한 마음을 채워나가고 있었던 거지.

남편은 아내의 절규를 듣고 나서야 뒤늦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어. "내가 당신과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그의 마음속에서 수많은 대화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지만, 모두 짧고 건조한 정보 교환에 불과했어. '오늘 저녁은 뭐야?', '필요한 물건 어디에 있어?', '이번 주말엔 어디 갈까?', '이거 사 와야 해.'… 지난 1년간 아내와 나눈 말들은 업무 지시나 다름없었어. 그는 바쁘다는 핑계로 아내와의 정서적 교감을 등한시했고, 어느새 옆에 있는 아내를 자신을 귀찮게 하는 늙은 존재로 여기기까지 했어. 그리고 죄책감이 들 때마다 돈을 건네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그렇게 죄의식에서 벗어나려 애썼지. 아내는, 단지 대화를 원했을 뿐인데. 시를 읽고, 노래를 부르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아주 작은 자신만의 공간을 원했던 것뿐인데… 그는 그 흔한 '대화'마저도 아내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거야. 부유한 사람들에게 친구란 오히려 해가 될 뿐이라고 생각하며 아내의 인간관계마저도 단절시켰던 자신의 이기심이 떠올라 그는 엄청난 후회에 휩싸였어. 아들은 멀리 떨어져 있었으니, 아내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 대화의 안식처는, 아내에게 유일한 생명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의 가슴은 미어져 왔어.

결국 남편은 그 선생님을 더 이상 '라이벌'로 보지 않게 되었어. 그는 그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지. 모든 것을 좀 더 인간적인 방식으로 풀어가고 싶었어. 처음에는 선생님이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오게 하려 했지만, 선생님은 여전히 혼자 기타를 들고 찾아왔어. 그리고 매주 한 번, 아내와 선생님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읊었지. 남편은 선생님의 아이들과 아내에게 정원에서 직접 기른 꽃과 과일, 그리고 좋은 선물들을 아낌없이 전달해 주었어. 놀랍게도, 그들의 집안 분위기는 점차 바뀌기 시작했어.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고, 따뜻한 온기가 감돌기 시작했지. 드넓은 잔디밭에는 바비큐 그릴이 놓이고, 가족들과 친구들이 함께 모여 맛있는 음식을 구워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 그들은 이제 삶에 대해, 지나간 추억에 대해, 정치와 사회 현상에 대해, 그리고 세상 모든 것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어. 어색했던 관계는 자연스러운 우정으로 변했고, 이제 그들은 서로를 진정한 친구이자 가족처럼 여기며 살아가고 있어. 이들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야. 아직도 그들은, 서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밤새워 대화를 나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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