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언제나 아픈 이야기- 6화
비 오는 밤, 두 사람의 관계는 더 깊어지지만, 마음의 거리는 여전히 멀다.
마일즈의 피할 수 없는 눈빛, 그리고 캡의 오래된 사랑 이야기는 그녀를 흔든다.
이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단지 스쳐 지나가는 열정일까.
코르빈이 우리 쪽으로 돌아보자, 나는 황급히 얼굴에서 미소를 지웠다.
“테이블로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별도의 부스로?”
우리는 둘 다 어깨를 으쓱했다.
“상관없어.” 마일즈가 대답했다.
관리자가 우리를 테이블로 안내하자, 코르빈과 이안이 앞장서 걷고, 마일즈는 거의 내 뒤에 바짝 붙어 따라왔다. 그는 내 허리에 손을 얹고 귀에 속삭였다.
“간호사들한테도 약한 편이지.”
그의 숨결이 닿은 귀를 어깨로 스치자, 목덜미 전체가 소름 돋았다. 자리에 다다르자 마일즈는 손을 거두며 적당한 거리를 두었다. 코르빈과 이안은 마주 앉았고, 마일즈는 이안 옆에 앉았다. 내 자리는 코르빈 옆, 마일즈와 정면으로 마주한 자리였다.
코르빈과 이안은 맥주를, 우리 둘은 탄산음료를 주문했다. 또 하나의 수수께끼. 몇 주 전만 해도 그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고 했지만,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마일즈는 만취 상태였고, 오늘도 기념할 일이 있으니 한 잔쯤은 시킬 줄 알았다.
음료가 나오자 이안이 건배를 제안했다.
“네가 우리를 능가한 것에.”
“게다가 이번이 처음도 아니지.” 코르빈이 말을 보탰다.
“내가 너희보다 두 배는 더 일하니까.” 마일즈가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우리랑 코르빈은 성생활 하느라 야근할 시간이 없거든.” 이안이 웃으며 맞섰다.
“내 여동생 앞에서 내 성생활 얘기는 금지다.” 코르빈이 끼어들었다.
“왜? 내가 네가 집에 잘 안 들어오는 거 모를 줄 알아?” 내가 받아쳤다.
“진심이야! 다른 얘기 하자.”
나는 기꺼이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너희 셋은 언제부터 친구였어?”
나는 모두에게 묻는 듯했지만, 사실 궁금한 건 오직 마일즈에 관한 것이었다.
“네 오빠랑은 비행학교에서 만났고, 마일즈랑은 아홉 살, 열 살쯤부터 친구였지.” 이안이 말했다.
“열한 살.” 마일즈가 바로잡았다. “우린 초등학교 5학년 때 만났어.”
이 대화가 ‘과거를 묻지 말 것’이라는 첫 번째 규칙에 어긋나는 건 아닌지 잠시 망설였지만, 마일즈가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잠시 뒤, 코르빈이 메뉴를 펼치며 중얼거렸다.
“아직도 네가 게이가 아니라는 게 믿기지 않아.”
마일즈가 메뉴를 들고는 코르빈을 노려보았다.
“아까 성생활 얘기 안 하기로 하지 않았나.”
“내 성생활 말이야. 넌 어차피 연애도 없잖아. 근데 진지하게, 왜 아무도 안 만나?”
마일즈는 어깨를 으쓱하며 손에 든 잔만 바라봤다.
“관계라는 건… 굳이 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
그 말에 내 가슴 어딘가가 산산이 부서졌고, 나는 다른 사람들이 그 파편 부서지는 소리를 듣지 않기를 바랐다.
“분명 엄청난 악녀였나 보네!” 코르빈이 비꼬듯 말했다.
나는 마일즈의 반응을 주시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이안은 헛기침을 했고, 늘 붙어 있던 그의 미소가 옅어졌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의 오래된 친구는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마일즈는 여자 만날 시간이 없어.” 이안이 억지로 웃으며 잔을 들어 올렸다. “그는 기록을 갈아치우고 회사 역사상 최연소 기장이 되느라 바쁘거든.”
우리는 암묵적으로 이해하고 잔을 부딪쳤다.
나는 마일즈가 이안에게 고맙다는 눈길을 보낸 것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코르빈은 눈치채지 못했다. 내 안의 호기심은 더욱 커졌고, 동시에 우리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스며들었다. 마일즈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어졌다.
…
밖으로 나왔을 때, 코르빈과 이안은 술집으로 향했고, 마일즈는 내 옆에 서서 조용히 말했다.
“나도 그냥 자고 싶어. 너랑 같이 가도 돼?”
그의 말 속에 담긴 ‘자다’라는 강조가 묘하게 달콤했다. 나조차도 알아챌 만큼.
우리는 병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로등 불빛이 우리를 무대 위에 세운 듯 비추었다.
“우린 꼭 무대 위에 선 것 같아.” 내가 말했다.
“<잉글리시 페이션트> 같네.” 마일즈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조종사와 간호사.”
나는 피식 웃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몇 방울이었으나 곧 빗줄기가 굵어졌다. 우리는 고개를 들어 빗방울을 맞으며 서 있었다. 차로 달려가지도 않고, 그냥 그 자리에.
그때 따뜻한 두 손이 내 뺨을 감싸더니 목덜미로 흘러내렸다. 숨이 막히고 무릎이 휘청였다. 마일즈의 몸이 비를 막아주었지만, 나는 여전히 얼굴을 하늘로 향한 채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비와 어둠, 그리고 그의 키스.
세상 모든 순간을 그래프로 그린다면, 지금이 정점일 것이다.
그의 젖은 입술은 차가웠고, 혀는 뜨거웠다. 심장이 폭발할 듯 뛰었다. 나는 그의 셔츠를 움켜쥐고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두 조각의 퍼즐처럼, 우리의 입술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마침내 숨이 막혀, 나는 그의 가슴에 이마를 묻었다. 그는 어깨를 감싸 안으며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빗줄기를 가르며, 우리는 달렸다. 우리는 쏟아지는 빗속을 헤치며 달렸다. 마일즈는 자신의 재킷을 내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마치 작은 지붕처럼 나를 비로부터 가려 주었다. 숨이 가빠지고, 발밑은 물웅덩이로 가득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머리칼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옷은 살갗에 달라붙어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웠다. 마일즈는 헐떡이며 문을 열어 주었고, 나는 차 안으로 몸을 미끄러뜨리듯 들어갔다.
차문이 닫히자, 빗소리가 금속 지붕 위로 쏟아져 내리며 세상을 차단했다. 좁은 공간 안에 고요와 긴장만이 남았다.
나는 손등으로 얼굴을 훑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고, 물방울이 턱끝에서 뚝뚝 떨어졌다. 불빛 아래에서 그의 눈동자는 짙은 밤처럼 깊고도 불안하게 빛났다.
마일즈가 천천히 몸을 기울였다.
“춥지 않아?”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깃든 떨림이 내 심장과 같은 리듬으로 울렸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전혀. 오히려…” 숨을 고르며, 나는 속삭였다. “지금이 제일 뜨거워.”
순간, 그의 웃음이 번졌다. 그러나 그 웃음은 곧 사라지고, 다시 입술이 내 입술을 찾아왔다. 이번에는 더 깊고, 더 절실하게.
빗소리가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와 우리의 숨결이 뒤섞였다. 차 안은 세상에서 고립된 또 하나의 무대 같았다. 우리는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달렸다. 마일즈는 자신의 재킷을 내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작은 지붕처럼 비를 막아 주었고, 나는 그의 팔에 이끌려 전속력으로 주차장까지 내달렸다.
숨이 가쁘게 차올랐을 때, 드디어 차에 도착했다. 우리는 이미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어 있었고, 머리칼에서는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옷은 몸에 달라붙어 한층 더 서늘한 감촉을 주었다.
마일즈가 급히 문을 열어 주었고, 나는 미끄러지듯 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도 곧이어 타자, 차문이 닫히며 세상이 갑자기 달라졌다. 바깥의 폭우는 차 지붕을 두드리며 북소리처럼 울렸고, 그 소리가 우리를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했다.
좁은 공간 안에서 숨결이 서로 부딪혔다. 나는 손등으로 얼굴의 물기를 훔치며 마일즈를 바라보았다. 젖은 머리칼이 그의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고, 턱끝에서는 여전히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가로등 불빛이 차창 너머로 스며들어 그의 눈동자를 깊고 어두운 밤처럼 빛나게 했다.
그가 몸을 조금 기울이며 낮게 물었다.
“춥지 않아?”
그 목소리에는 알 수 없는 떨림이 배어 있었고, 그것은 내 심장의 리듬과 맞닿아 울렸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속삭였다.
“전혀. 오히려… 지금이 가장 뜨거워.”
그 말에 그의 입술에 짧은 미소가 스쳤다. 그러나 곧 그 미소는 사라지고, 다시 그의 입술이 내 입술을 찾아왔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깊고, 더 절실하게.
비가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와 우리의 숨결이 섞였다. 차 안은 마치 세상과 단절된 또 하나의 무대 같았다. 그의 손이 내 허리를 감싸 당겼고, 나는 젖은 그의 셔츠를 움켜쥐며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마침내 숨이 막히자, 나는 그의 가슴에 이마를 묻었다. 그는 내 어깨를 감싸 안은 채 차 밖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낮게 웃으며 말했다.
“빨리 가자.”
그는 다시 내 위에 재킷을 씌우고, 우리를 이끌어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우리는 빗속을 가르며 달렸다. 어둠 속에서, 폭우 속에서,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우리 둘밖에 없는 듯했다. 뤼크는 내가 운전석에 올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차를 돌아 조수석에 앉았다. 문이 닫히자, 좁은 차 안에는 빗소리와 함께 우리의 거친 숨결만이 남았다. 나는 젖은 머리칼을 짜내듯 손으로 쓸어내렸고, 물방울이 목과 등에 흘러내렸다.
“완전히 흠뻑 젖었네.”
내가 웃으며 중얼거리자, 마일즈의 얼굴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번졌다. 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단번에 눈치챘다.
“변태.” 내가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네가 시작했잖아.” 그는 내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이리 와.”
차창 밖은 거센 비로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우리를 보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 나는 그의 품으로 몸을 기울였다. 마일즈는 시트를 젖히고 나를 끌어안았고, 그의 손길은 조심스럽지만 동시에 간절했다.
“차 안에서 이런 건 처음이야.” 그가 낮게 속삭였다.
“나도 그래. 하지만… 너라서 괜찮아.”
우리의 입술이 맞닿았다. 젖은 피부와 뜨거운 숨결이 뒤섞이며 차 안의 공기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그의 손길이 내 등을 타고 내려와 허리에 닿자, 몸이 저절로 떨렸다. 그 순간, 창밖의 빗소리조차 우리의 심장 박동을 따라 울리는 듯했다.
우리는 서로를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옷이 젖어 몸에 달라붙어 있었지만, 오히려 그 불편함이 우리를 더욱 솔직하게 만들었다. 마치 세상에서 둘만 남은 듯, 숨결 하나, 손길 하나에 모든 감각이 집중되었다.
“너 때문에…” 마일즈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떨렸으며, 그 떨림이 나를 더욱 흔들었다.
“알아.” 나는 눈을 감고 대답했다. “나도 그래.”
그의 입술이 다시 내 입술을 찾아왔고, 이번에는 한층 더 깊고 절실했다. 빗방울이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와 우리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겹쳐져, 작은 차 안은 거대한 무대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끝내 서로를 놓지 않았다. 마치 이 순간이 모든 것의 시작이자 절정인 듯, 뜨겁고도 조용히, 오직 둘만의 호흡으로 밤은 흘러갔다. 차 안에 남은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빗소리는 여전히 차 지붕을 두드렸지만, 이제 그것은 마치 우리를 덮어 주는 커튼 같았다. 세상과 단절된 공간, 오직 우리 둘만 남은 듯한 시간.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마일즈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그의 가슴이 크게 오르내리는 것이 느껴졌고, 그 박동이 내 심장과 맞아떨어졌다.
“이상해.” 내가 속삭였다.
“뭐가?” 그가 내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물었다.
“너랑 있으면… 세상이 조용해지는 것 같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일즈는 잠시 대답하지 않고 내 눈을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럼… 그건 좋은 거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아 올려 자신의 가슴에 얹었다. 심장의 박동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들려?”
“응.”
“너 때문에 이렇게 뛰는 거야.”
순간,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가슴속 깊이 차올랐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잠시 후, 마일즈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늘은… 그냥 너랑 같이 있고 싶어. 더도 덜도 말고, 그냥.”
그 말에, 나는 가볍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둘 다 가장 필요로 하던 대답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미 서로를 꽉 끌어안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느껴지는 건 그 이상이었다. 감정이 하나로 섞여, 같은 숨을 내쉬고 같은 떨림을 나누며, 똑같이 벅찬 순간을 함께했다.
조금씩 호흡이 가라앉고, 떨림도 잦아들었다. 우리는 힘주던 팔을 느슨하게 풀었고, 마일즈는 얼굴을 내 머리카락에 묻었다.
“졌네.” 그가 낮게 속삭였다.
나는 웃으며 장난스럽게 그의 목을 살짝 깨물었다.
“너 반칙 썼잖아! 손은 반칙이야!”
“손은 정정당당한 무기야.” 그는 웃음을 띤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도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재경기 하면 되지.”
“세 판 두 승제?” 내가 맞받아쳤다.
마일즈는 나를 조심스레 들어 올려 운전석 쪽에 앉혔고, 자신은 핸들 앞으로 몸을 옮겼다. 그는 내 옷가지를 건네주었고, 나는 급히 몸을 추스르며 옷을 챙겨 입었다. 마일즈 역시 셔츠를 걸치고 바지를 단정히 여몄다.
차를 시동 건 그는 뒤로 기어를 넣어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안전벨트 매.”
그가 장난스럽게 윙크하며 말했다.
우리는 간신히 엘리베이터에서 나왔을 뿐, 침대까지 갈 겨를도 없었다. 마일즈는 복도에서조차 나를 붙잡을 뻔했고,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걸 마다할 마음이 없었다.
결국 이번 라운드도 그가 이겼다. 가장 조용한 사람과 시합을 벌이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지 새삼 깨닫는다. 세 번째 라운드에서야 설욕할 수 있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곧 코르빈이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마일즈는 베개를 껴안은 채 엎드려 내게 날카롭게 시선을 던졌다. 나는 옷을 주워 입으며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오빠보다 먼저 집에 들어가야 쓸데없는 질문을 피할 수 있다.
“네 브래지어, 아마 복도에 그대로 있을걸.”
마일즈가 웃으며 말했다. “코르빈이 발견하기 전에 얼른 챙기는 게 좋을 거야.”
그 말에 나는 코를 찡그리며 대답했다.
“꼭 그럴 거야.”
나는 침대 위로 올라가 그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마일즈는 몸을 돌려 나를 끌어안고 짧은 입맞춤을 이어갔다.
“물어봐도 돼?”
그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망설임이 느껴졌다.
“왜… 우리 함께할 때, 내 눈을 보지 않는 거야?”
그의 눈동자가 순간 크게 흔들렸다. 몇 초 동안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등을 기대고 앉아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사람은 그런 순간에 가장 무방비해. 눈을 마주치면… 없는 감정까지 착각하게 돼. 그래서 잘못된 의미를 주고받기 쉬워. 네가 불편해?”
나는 고개를 저었지만, 가슴 속에서는 커다란 ‘응’이라는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아니, 그냥 궁금해서. 곧 익숙해질 거야.”
마일즈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끌어당겼고, 마지막 입맞춤을 건네며 속삭였다.
“잘 자, 테이트.”
나는 그의 시선을 등 뒤에 느끼며 방을 나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우리가 함께할 때는 눈을 피하면서도, 그 외의 시간에는 한순간도 눈길을 거두지 못한다.
복도에서 떨어진 속옷을 챙기고, 곧장 집으로 향하기는 싫어 1층으로 내려갔다. 혹시나 해서 프런트를 보니, 역시 캡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벌써 열한 시가 넘었는데도.
“혹시… 당신은 잠도 안 자나요?” 내가 다가가며 물었다.
“밤에는 사람들이 훨씬 더 흥미롭거든. 게다가 아침 일찍 뛰어다니는 바보들을 볼 필요도 없고.”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큰 소리였다. 캡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뭐야, 꼬마랑 다퉜어? 몇 시간 전만 해도 분위기 좋더구만. 그 아이 얼굴에서 웃음 비슷한 것도 봤는데.”
“괜찮아요. 우리 문제 없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결국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캡, 당신도 사랑해 본 적 있어요?”
늙은 그의 얼굴이 미소로 환해졌다.
“그럼. 그녀 이름은 완다였어.”
“결혼은 오래 하셨어요?”
“나? 결혼은 한 번도 안 했지. 완다는 했어. 남편이랑 거의 40년을 살았어. 남편이 죽을 때까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더 자세히 말해 주세요.”
캡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그 시절을 떠올리는 듯했다.
“완다는 내가 관리하던 아파트 단지에 살았어. 남편은 집에 있는 날이 한 달에 고작 보름 남짓이었지. 나는 서른, 그녀는 스물다섯. 그때부터 완다를 사랑했어. 하지만 그 시절, 이혼은 드문 일이었지. 특히 그녀 같은 가정에서 자란 여자는 더더욱. 그래서 25년 동안… 난 그녀를 있는 힘껏 사랑했어. 그녀 남편이 없는 그 보름 동안만.”
나는 말없이 캡을 바라봤다. 낯선 이에게 들려주기엔 너무도 진한 이야기였다. 이게 과연 사랑 이야기일까, 의문이 들 정도로.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 캡이 웃음을 잃지 않은 채 말했다. “비극처럼 들리지? 하지만 사랑은 늘 아름답게만 보이는 게 아니야. 가끔은 더 나아질 거라, 더 커질 거라 믿게 하지. 그런데 어느 순간 돌아보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있지. 그 과정에서 심장만 어딘가에 두고 온 채.”
나는 얼굴을 돌려 정면만 바라봤다. 그가 내 표정을 읽지 못하게.
혹시 나도 지금 똑같은 길을 걷고 있는 건 아닐까. 마일즈와의 관계가 언젠가 다른 무언가로 바뀌길, 더 나아지길 바라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돌리니, 캡은 이미 머리를 가슴에 떨군 채 깊이 잠들어 있었다. 입은 벌어진 채로, 평화로운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