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낸 나무 대신 묘목을 심어둔 벌목 지는 아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먹구름이 몰려오자 나는 조끼 주머니에서 노란 비옷을 꺼냈다. 덤불 사이를 걸어 다니며 낡아 방수 기능도 제 역할을 못했지만, 어쨌든 몸을 덮을 수 있었다. 픽업트럭에서 멀어질수록 위험에 대한 예감이 강해졌고, 해 지기 전까지는 도로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나는 어려움을 뚫고 나아가는 본능을 할머니 위니에게서 물려받았다. 그녀가 아직 소녀였을 때, 어머니 1960년대 초 독감에 걸렸다. 폭설이 가족을 세상과 끊어놓았고, 이웃들이 가슴까지 차오른 눈과 얼어붙은 계곡을 뚫고 오기 전에 엘런은 방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신발 밑창이 미끄러지며 나는 어린 나무에 매달렸지만, 그것까지 뽑아버린 채 경사면을 굴러내려 가 다른 묘목들을 짓눌렀다. 젖은 통나무에 부딪혀 멈출 때까지, 나는 여전히 뿌리 덩어리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 나무는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나무였다. 옆가지를 이룬 돌기들이 열다섯 해의 세월을 보여주고 있었다. 먹구름은 빗방울을 흩뿌리기 시작했고, 청바지는 금세 젖었다. 방수천에는 구슬 같은 빗방울이 매달려 반짝였다.
이 일에는 나약함을 내보일 자리가 없었다. 나는 언제나 거친 남자들의 세계에서 강한 태도를 다져왔다. 동생에게 뒤처지기 싫어, 영하 스무 도에서도 동네 아이들과 함께 거리 하키를 했다. 늘 가장 인기가 없는 골키퍼 자리를 맡았다. 무릎에 공이 세차게 날아들었고, 청바지 아래는 멍투성이였다.
어머니를 잃은 뒤에도 할머니 위니는 살아가기 위해 애썼다. 말을 타고 골짜기를 돌아다니며 우편과 밀가루를 집집마다 배달했다.
나는 주먹 안의 뿌리 덩어리를 응시했다. 번들거리는 부식토가 달라붙어 있었는데, 마치 닭똥처럼 보였다. 부식토란 숲의 낙엽층 아래, 광물질 토양 위에 낀 지방질의 검은 썩은 흙이다. 죽은 식물과 곤충, 들쥐 같은 작은 동물들이 묻혀 있는 천연 퇴비. 나무들은 위도 아래도 아닌, 바로 그 부식토에 뿌리를 내리길 좋아한다. 그곳에야말로 수많은 영양분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뿌리 끝이 노란 불빛처럼 반짝이며, 같은 빛깔의 균사가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처럼 뻗어 나와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조금 전 따낸 버섯을 꺼냈다. 한 손에는 노란 균사가 늘어진 뿌리, 다른 손에는 잘려나간 균사가 달린 버섯. 유심히 살펴보아도 둘의 차이를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이 버섯은 미세버섯처럼 죽은 것을 부수는 파괴자가 아니라, 뿌리의 친구일지도 몰랐다. 나는 늘 살아 있는 것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는 커다란 신호를 중시하지만, 세상은 늘 작은 것들이 더 중요한 힌트일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나는 낙엽층을 헤집었다. 노란 균사가 흙의 모든 입자를 덮고 있는 듯했다. 내 손바닥 아래로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가닥들이 퍼져 있었다. 가지처럼 뻗은 이 실들은 버섯의 자실체와 함께, 흙 속에 깔린 거대한 균사체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조끼 뒷주머니의 지퍼를 열어 물병을 꺼내, 뿌리 끝의 흙을 씻어냈다. 그렇게 화려한 버섯 무리를 본 적은 없었다. 노란색, 흰색, 분홍색 ― 각각의 색이 얇은 레이스처럼 뿌리 끝을 감싸고 있었다. 뿌리들은 영양분을 찾아 먼 곳, 불편한 곳까지 뻗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다양한 균사들이 뿌리 끝에서 나와 불타는 듯 색을 띠는 걸까? 버섯마다 고유한 색을 가진 걸까? 땅 속에서 각자 다른 기능을 맡고 있는 걸까?
나는 이 일을 사랑했다. 장엄한 공터를 오르며 느낀 전율은 곰과 유령에 대한 두려움마저 잠재웠다. 나는 균사로 뒤덮인 뿌리를 거목 곁에 내려두었다. 묘목들은 땅속 세계의 질감과 색을 보여주었다. 노란빛, 흰빛, 베이지빛은 내가 자라던 곳의 들장미를 떠올리게 했다. 흙은 책과 같았다. 한 장 한 장 색색의 페이지가 겹쳐지고, 그 모든 페이지는 숲이 먹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마침내 벌목지에 도착했을 때, 부슬비 사이로 스며든 빛이 눈부셔 나는 눈을 찌푸렸다. 이미 알던 광경이었지만, 가슴은 여전히 철렁 내려앉았다. 나무라곤 남아 있지 않았다. 땅 위로는 잘린 밑동만 흰 뼈처럼 솟아 있었다. 비와 바람에 시달리다 떨어져 나간 껍질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나는 잘려나간 팔다리 사이를 지나며, 버려진 고통을 온몸으로 느꼈다. 한 어린 나무 위에 덮인 가지를 들어 올리며, 예전 언덕 위 쓰레기 더미 속에서 꽃을 꺼내주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부모를 잃은 몇 그루 어린 전나무가 쓸쓸히 서 있었다. 성장 속도가 더딘 이들이 부모의 빈자리를 메우긴 어려워 보였다. 나는 가장 가까운 묘목의 꼭대기를 어루만졌다. 그나마 몇 그루의 흰 철쭉과 헉클베리 덤불은 살아남아 있었다. 나는 이제 원목 벌목과 미개지 개간이라는 업의 일부였다.
동료들은 다음 벌목 지를 계획하며, 제재소가 멈추지 않고 그들의 가정을 먹여 살릴 수 있길 바랐다. 나 역시 그 필요성을 이해했다. 그러나 톱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온 계곡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철쭉과 헉클베리 덤불 사이에 줄지어 심어진 묘목으로 다가갔다. 벌목지에 심긴 것은 푸른빛 가문비나무였다. 키는 발목에 겨우 닿았다. 잘려나간 아고소나무 대신 왜 같은 종이 아닌 가문비나무를 심었을까? 가문비는 목재 가치가 더 높았다. 치밀하고 썩음에 강해, 고급 원목으로 적합했다. 반면 아고소나무는 약하고 쉽게 부러졌다.
당국은 또한 묘목을 정원처럼 줄지어 심으라 권고했다. 흙 한 조각이라도 비지 않게. 그렇게 하면 숲은 더 많은 목재를 낼 거라 여겼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모든 빈틈을 메우고 모서리까지 채워 넣으면, 언젠가 다시 베어낼 때 더 큰 수확을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줄지어 심으면 개체 수를 세는 것도 편했다. 마치 할머니 위니가 정원에 작물을 줄 맞춰 심던 것처럼. 그러나 그녀는 해마다 흙을 갈아엎고 작물을 바꿔가며 키웠다.
내가 처음 살펴본 가문비 묘목은 간신히 살아 있었다. 바늘잎은 누렇게 변했고, 줄기는 볼품없었다. 이 험한 땅에서 어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줄지어 선 새 묘목들을 훑어보았다. 모두가 삶을 버티고 있었으나, 한 그루 한 그루가 슬픈 모습이었다. 왜 이토록 형편없을까? 반대로, 이 숲에서 자란 야생 가문비들은 어찌 그토록 건강한 걸까? 나는 현장 기록장을 꺼내어 방수 커버에 맺힌 바늘잎을 털어내고, 안경을 닦았다. 새로 심은 나무들이 숲에서 빼앗긴 것을 보충할 거라 했지만, 우리는 실패하고 있었다. 보고서에 뭐라고 적어야 할까? 회사에 다시 심으라고 권하고 싶었지만, 그런 비용은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을 터였다. 두려움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만족. 단, 죽은 묘목은 교체할 것.”
나는 묘목 위를 덮고 있던 껍질 조각을 치워 덤불로 던졌다. 종이로 봉투를 만들어 노랗게 변한 바늘잎을 담았다. 그 순간 나는 감사했다. 시끄러운 사무실과 지도 제작용 책상에서 벗어나, 이 작은 자리에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동료들은 원목 가격과 계약에 대해 떠들며 어떤 숲을 베어낼지 결정했지만, 나는 묘목의 문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마 이 노란 바늘의 증상을 책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잎의 황화는 원인이 다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