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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명예와 거짓된 명예

양심이 없는 명예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by 나리솔



참된 명예와 거짓된 명예



나는 정의(定義)를 좋아하지 않는다. 늘 준비되어 있지도 않다. 하지만 양심과 명예의 차이를 몇 가지로는 짚어낼 수 있다.

양심과 명예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양심은 언제나 영혼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며, 그것으로 사람이 정화된다. 양심은 “가슴을 갉아먹는다.” 양심은 거짓일 수 없다. 다만 때로는 억눌리거나, 혹은 드물게 지나치게 부풀려질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인간 내면의 진실과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명예에 대한 관념은 얼마든지 거짓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거짓된 명예가 사회에 막대한 해를 끼친다.

내가 말하는 것은 바로 이른바 **“군복의 명예”**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제 더 이상 “귀족적 명예” 같은 낯선 개념은 사라졌지만, “군복의 명예”는 여전히 무겁게 남아 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죽고 난 뒤에도, 훈장이 떼어진 군복만이 남아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더 이상 양심 어린 심장이 뛰고 있지 않다.

“군복의 명예”는 지도자들로 하여금 잘못된 계획을 끝까지 고집하게 하고, 명백히 실패한 사업을 억지로 이어 가게 하며, 문화재를 지키려는 이들과 싸우게 만든다. “우리 공사가 더 중요하다”는 식이다. 이와 같은 예시는 무수히 많다.

참된 명예는 언제나 양심과 함께한다.
거짓된 명예는 오히려 사막의 신기루이다. 도덕적 사막, 더 정확히 말하면 관료의 영혼이 남긴 황량한 허상일 뿐이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도 쉽게 그 신기루 속에서 살기를 택할까?
아마도 그것이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기루는 양심의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안락함을 준다. 하지만 양심이 없는 곳에는 참된 명예 또한 없다.




양심 없는 명예는 텅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명예 없는 양심은 끝없는 내적 고통이다.

그러나 이 둘이 하나로 만날 때, 비로소 인간이 의지할 수 있는 진정한 버팀목이 된다.

참된 명예란 언제나 진리를 향한 봉사이며, 때로는 그 진리를 위해 군복조차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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