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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노을이 선사하는 위로: 느리게 걷는 시간 속에서

느린 여름날, 고독이 선물한 포근한 안식

by 나리솔



붉은 노을이 선사하는 위로: 느리게 걷는 시간 속에서



하늘은 마치 하루의 마지막 편지를 쓰는 듯, 붉은 잉크가 번지듯 아름답게 물들어가고 있었어. 종일 서늘했던 공기, 그리고 묵직한 고민 같던 먹구름들은 저녁이 되어서야 비로소 가만히 걷히기 시작했지. 그 풍경 속에서, 우리 집 마당에 홀로 우뚝 선 키 큰 나무 위에서는 작은 희망의 노래처럼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어. 희미한 햇살은 하늘을 심술궂게 떠다니는 거대한 비구름을 뚫고, 포기하지 않는 작은 빛줄기처럼 자신만의 길을 찾아 애쓰는 것 같았어.

가을처럼 포근한 스웨터를 입고 거리를 걷는 이런 서늘한 날, 바쁘게 움직일 일은 별로 없지. 어쩌면 그게 더 자연스러운 것 같아. 따뜻한 담요 속에 쏙 들어가 책을 읽고, 향긋한 차를 마시며 나만의 세계로 빠져드는 시간. 뜨거운 여름날을 순식간에 가을처럼 아련하고 사색적인 계절로 바꿔버리는, 저 하늘 위 길게 드리운 먹구름 한 점이 정말 놀라웠어. 그 구름 한 조각이 가져다주는 고독과 평화는, 우리에게 잠시 멈춰 서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마법 같은 순간을 선물해 주는 것 같아.

오늘의 시간은 마치 게으른 고양이처럼 공간을 따라 천천히 기어가는 것 같았어. 우리를 더 오래 붙잡아 두려고 애쓰면서, 모두를 피곤하고 졸리게 만들어서 당장이라도 휴가를 내고 온종일 잠들고 싶게 말이야. 여름 아침은 보통 한낮에 찾아오기 마련인데, 오늘은 웬일인지 아침 여덟 시부터 눈이 번쩍 뜨여 일과를 시작했지 뭐야. 하지만 방 안에 놓인 침대는 정말 유혹적이었어. 포근한 부드러움과 흘러내리는 이불자락은, 낮 동안의 소란스러움으로부터 도망쳐 꿈의 세계로, 더 깊은 평온 속으로 달아날 수 있는 은밀한 안식처 같았어.

어쩌면 우리는 모두 그런 안식처를 찾아 헤매는 건 아닐까? 바쁜 일상 속에서도 이렇게 잠깐의 느림과 고요함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속 깊이 숨겨진 따뜻한 추억들을 꺼내어 보듬어 주는 시간 말이야. 오늘 하루가 그랬던 것처럼, 이 모든 순간들이 우리에게 소중한 힐링이 되었으면 좋겠다!



바람 끝에 매달린
붉은 잎 하나,
떨어지며 속삭인다.

“떠남도 결국은
다시 돌아올 길 위에 있다.”

저무는 햇살 속
고요히 서 있는 나무,
그 곁에 서서 나 또한
잠시 내 마음을 내려놓는다.

가을은 이렇게
조용히 말한다.
비워야 채워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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